항목 ID | GC400017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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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道南洞 有華堂 |
이칭/별칭 | 국동서실(菊洞書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도남길 193-16[도남동 362]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도성탁 |
건립 시기/일시 | 1864년 - 대구 도남동 유화당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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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16년 - 대구 도남동 유화당 보수 |
현 소재지 | 대구 도남동 유화당 - 대구광역시 북구 도남길 193-16[도남동 362] |
성격 | 서사(書舍) |
양식 | 홑처마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1칸 반 |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도남동에 있는 개항기 인천이씨 쌍명재공파 국동파 문중의 서사.
[개설]
대구 도남동 유화당(大邱 道南洞 有華堂)은 1,600년대 중후반 대구광역시 북구 도남동에 세거지를 마련한 인천 이씨 쌍명재공파(雙明齋公派) 국동파(菊洞派) 문중의 서사(書舍)이다. 현재 건물은 1864년(고종 1) 건립되었다. 1916년 대대적인 보수가 있었으며, 별칭으로 ‘국동서실(菊洞書室)’이라고 불리었다. 건물은 정면 4칸·측면 1칸 반·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전면으로 반 칸 툇간이 있으며, 좌우 각 1칸은 방, 가운데 2칸은 대청이다. 대구 도남동 유화당은 6·25전쟁 당시 상주 경찰서가 임시 상주하였고, 바로 옆 인천이씨의 종택에는 육군 부대가 상주한 내력이 있다. 또한 근래에 발굴된 「유화당계안(有華堂契案)」에는 전국에 걸쳐 무려 885명이 넘는 인물이 등재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유화당’이란 국화가 가득한 집이라는 뜻이다. 이씨 집안의 주손들은 국화 밭을 조성하고 가꾸는 등 국화 사랑이 유별났다. 가을에는 지역의 선비들을 초대하여 범국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대구 도남동 유화당의 대문은 대구 유일의 ‘솟을대문형 정려각’이다.
[위치]
대구 도남동 유화당은 대구광역시 북구 도남동 362번지에 있다.
[변천]
대구 도남동 유화당은 1864년 건립되어 1916년 보수하였다.
[형태]
대구 도남동 유화당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의의와 평가]
대구 도남동 유화당은 대구광역시 북구 중 칠곡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고택 중의 하나이다. 또한 대구 도남동 유화당 계안에는 885명의 인물이 등재되어 대구·경북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알려졌음을 알 수 있다. 유화당의 주손들은 국화를 가꾸고 사랑하여 선비들과 함께 국화주에 국화를 띄워 마시는 범국회를 개최하여 왔다. 선비의 풍류 문화의 상징인 범국회는 새롭게 조명되어 재현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구 도남동 유화당에서 발견된 내방가사인 「학지가」도 조명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