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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739
한자 達西區- 文化遺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달서구
시대 선사/선사,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배성혁

[정의]

대구광역시 달서구의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주요한 문화유산.

[개설]

달서구에는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25건, 사적 1건, 대구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9건, 무형문화재 2건, 민속문화재 1건 등 모두 38건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보물 23건과 유형문화재 7건은 계명대학교의 구입소장품으로 순수한 달서구의 문화재로 보기는 어렵다. 지정문화재는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비지정문화재는 신석기시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는데, 청동기시대 주거지 260여 기, 지석묘와 석관·석곽묘 200여 기, 입석 7개소가 확인된 월배지역 선사유적이 대표적이다.

[국가지정문화재]

1. 보물

동인지문사육 권7~9[보물 제710-6호, 2001. 8. 3.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1355년(공민왕 4) 최해(崔瀣)[1288~1340]가 펴낸 시문집인 『동인지문』 가운데 사륙변려문만을 모아 놓은 것으로 권7~9의 1책이다.

금강경삼가해 권2[보물 제772-4호, 2001. 8. 3.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1482년(성종 13) 간행되었다. 불교의 주요 경전의 하나인 『금강경』에 대한 야부(冶父), 종경(宗鏡), 기화(己和) 등 3인의 해설을 번역한 것이다. 제2권의 1책이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1~12[보물 제1051-2호, 2001. 8. 3.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1482년(성종 13) 간행되었다. 중국 당나라의 시인 두보[712~770]의 시를 유윤겸, 조위 등이 한글로 번역하여 편찬한 것이다. 권11~12가 합철된 1책이다.

예념미타도량참법 권7[보물 제1320호, 2001. 8. 3.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1376년(우왕 2) 간행된 아미타불에게 지극한 마음을 갖고 여러 가지 지은 악업을 참회하는 법회의 절차를 수록한 1책이다.

무예제보번역속집[보물 제1321호, 2001. 8. 3.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1610년(광해군 2) 간행되었다. 광해군 대에 훈련도감의 도청(都廳)을 맡았던 최기남이 『무예제보속집』에 일본고(日本考)를 첨부하여 편찬한 것으로 국내 유일본이다.

화원 우배선 의병진 관련자료-군공책[보물 제1334-1호, 2002. 1. 2. 지정, 단양우씨열락당종중 소장]: 1592~1593년 사이에 간행되었다. 조선 후기 의병장이자 문신인 월곡 우배선[1569~1620] 장군의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과 관련된 자료들로 임진왜란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대장일람집[보물 제1335호, 2002. 1. 2.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송나라 진실(陳實)이 불교 경전인 『대장경』에서 중요한 내용을 뽑아서 엮은 1책으로 고려 초 13세기 중엽에 간행한 것이다.

번역명의집[보물 제1369호, 2003. 2. 3.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조선 초에 간행된 번역명의집은 처음 7권으로 편찬하였으나, 계명대학교 소장본은 14권으로 편찬되어 8권으로 제본되어 있으며 마지막 권말에는 소주 경덕사의 승려인 법운이 저자임을 밝히고 있다.

용비어천가 권8~10[보물 제1463-1호, 2006. 4. 28.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1447년(세종 29) 간행된 전10권 중 권8~10의 3권으로 글자체는 조선 초에 유행한 조맹부의 송설체(松雪體)로 판각한 것이며, 판심(版心)에는 조선 초의 형식인 흑구(黑口)에 내향흑어미(內向黑魚尾)가 있어 초간본으로 추정된다.

사마방목[보물 제1464호, 2006. 4. 28.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1501년(연산군 7) 간행되었으며, 당시 진사 시험에 합격한 문의공 김식(金湜)[1482~1520] 후손가에 전해져 온 것으로, 예조에서 직접 간행하여 반포한 초주갑인자본이다.

도은선생집[보물 제1465호, 2006. 4. 28.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1406년(태종 6) 간행된 고려 말 삼은의 한 사람인 도은 이숭인(李崇仁)의 5권 1책 시문집이며, 태종의 명으로 변계량(卞季良)이 편집하고 권근(權近)이 서문을 지어 시집 3권, 문집 2권으로 간행한 것이다.

진일유고[보물 제1466호, 2006. 4. 28.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1467년(세조 13) 간행된 조선 초 좌정언(左正言)을 역임한 진일재 성간(成侃)[1427~1456]의 4권 1책의 시문집이다, 형인 이조판서 성임(成任)이 글을 모으고 대제학을 역임한 동생 성현(成俔)이 편집하여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진주성도[보물 제1600호, 2008. 12. 22.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19세기 경상도 진주성의 전경을 회화적으로 묘사한 10폭 병풍이다. 진주 내성과 외성, 해자 등 진주성의 중요한 장면들과 성 바깥의 주요한 관아, 향교, 전답경치 등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삼봉선생집 권1[보물 제1702호, 2011. 2. 25.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여말선초의 학자이며 문신인 삼봉 정도전[1342~1398]의 시문집이다. 1465년(세조 11)에 중간된 안동판(安東版)과 1487년(성종 18)에 삼간된 강릉판(江陵版)의 합본으로 유일본이다.

수계선생비점맹호연집[보물 제1703호, 2011. 2. 25.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중국의 대표적인 시인인 맹호연(孟浩然)의 시집이다. 송말원초의 문인인 수계 유진옹(劉辰翁)이 비점을 찍고, 길안 사람 성팽(成彭)이 교정한 간행본을 저본으로 1445년(세종 27)에 남원도호부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다.

신간상명산법[보물 제1704호, 2011. 2. 25.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1373년 중국의 여릉이씨(廬陵李氏)가 경영하는 명경당(明經堂)에서 간행된 중국판을 저본으로 하여, 조선에서 1501~1544년에 을해자(乙亥字)로 인출한 2권 1책의 활자본이며, 완전한 국내 유일본이다.

초조본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38[보물 제1705호, 2011. 2. 25.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아비달마발지론』을 토대로 하여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이론들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11~12세기 경에 인출된 초조대장경 인본이며 공개된 국내 전본으로는 현재까지 유일하다.

초조본 집대승상론 권하[보물 제1706호, 2011. 2. 25.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대승불교의 요체를 집대성한 논서로 11~12세기 경에 제작되었으며 공개된 국내 전본으로는 현재까지 유일하다.

대방광불화엄경소[보물 제1707호, 2011. 2. 25.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고려 전기 승려 의천이 송나라에서 정원이 보내온 목판으로 인출한 120권 중에서 총 41권에 해당하는 불교 경전이다. 1087년(선종 4)에 송나라 상인 서전(徐戩) 등을 통하여 받은 것이다.

대구 보성선원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복장전적[보물 제1802호, 2013. 4. 29. 지정, 보성선원 소장]: 1647년(인조 25)에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조성하고 복장에 을해자본인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언해 권5와 목판본인 『금강반야바라밀경』, 『인천안목』, 『천태사교의집해』 권하 등을 봉안하였다. 전적이 봉안되었던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보물]은 국립대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익재난고 권6~7[보물 제1892호, 2016. 2. 22.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고려 말 대표적인 문신이며 학자인 익재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전 10권 시문집으로 초간본은 전하지 않는다. 세종의 명에 따라 1432년(세종 14)에 강원감영에서 『역옹패설』 등과 함께 간행한 중간본이다.

역옹패설[보물 제1893호, 2016. 2. 22.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고려 말의 대표적인 문신인 익재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시문 평론집 4권 1책본으로 초간본은 전하지 않는다. 세종의 명에 따라 1432년(세종 14)에 강원감영에서 『익재난고』 등과 함께 간행한 중간 목판본이다.

퇴계선생문집[보물 제1894호, 2016. 2. 22.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1600년(선조 33) 간행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초판본으로, 『퇴계선생문집』이 판각되던 시기에 초래된 여러 곡절과 오랜 진통 끝에 판각되면서 안게 된 제반 문제를 모두 보여 준다는 점에서 한국 문집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신한첩 곤[보물 제1946호, 2010. 1. 4.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효종과 비인 인선왕후, 현종과 비인 명성왕후, 숙종과 비인 인현왕후가 효종의 넷째 딸 숙휘공주와 남편 정제현에게 보낸 한글 어찰 35편을 1802년 정제현의 5세손 정진석이 첩으로 만든 것이다.

신편유취대동시림 권9~11, 31~39[보물 제2030호, 2019. 6. 26.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조선 중종 연간의 문신인 유희령(柳希齡)[1480~1552]이 고대로부터 당시까지의 우리나라 문인들의 시를 모은 70권의 시선집으로 1542년(중종 37) 경 금속활자인 병자자(丙子字)로 간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판본이다.

2. 사적

대구 진천동 입석[사적 제411호, 1998. 12. 23. 지정]: 1997년 경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한 청동기시대 기념물인 선돌 1기로 제의와 관련된 시설물로 추정된다. 선돌의 크기는 길이 150㎝, 너비 110㎝, 높이 210㎝ 정도이며, 표면에는 6개의 바위구멍[性穴]과 4개의 동심원무늬가 새겨져 있다. 선돌을 중심으로 축조된 기단은 장방형으로 길이 20~25m, 너비 10~12.5m 정도의 규모이며, 7~8단 정도 석축하여 원래 높이는 70㎝ 정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기단부에 접하여 돌널무덤 5기가 확인되었는데, 모두 뚜껑돌이 덮여 있었으나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대구광역시 지정문화재]

1. 유형문화재

대구읍지[유형문화재 제55호, 2010. 1. 20.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1768년(영조 44) 이후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읍지의 하나로 조선 영조·정조 연간의 대구의 역사, 산업, 문화, 행정 사례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허암유고[유형문화재 제70호, 2013. 10. 30. 지정, 달서구 소장]: 조선 전기의 문신인 정희량(鄭希良)[1469~1502]의 시집으로, 1511년 친구인 이우(李堣)[1469~1517]가 강원도관찰사로 재직 시 강릉부사 김사형(金士衡)과 함께 간행한 초간본이다.

대구 보성선원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복장불서[유형문화재 제77호, 2016. 3. 10. 지정, 보성선원 소장]: 본존불인 석가여래, 좌우 문수·보현보살상[보물 제1801호]에 봉안되었던 서적이다. 함께 복장되었던 발원문 등 복장전적은 보물 제1802호로 지정되어 있다. 불서는 불상 조성[1647]보다 앞선 1635년(인조 13) 이전에 인출되었다.

삼국사기[유형문화재 제79호, 2017. 1. 31.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조선시대 5차례 있었던 『삼국사기』 간행 중 마지막에 있었던 18세기의 현종실록자[1677년]로 간행한 책이며, 영조가 되는 연잉군(延礽君)[1694~1776]에게 하사한 내사기(內賜記)가 있어 분명한 간행 연도를 알 수 있다.

북정록[유형문화재 제80호, 2017. 1. 31.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신유(申瀏)[1619~1680]가 조선 효종 때 제2차 나선[Russian] 정벌의 조선군 사령관으로 참전했을 때인 1658년 4월 6일부터 8월 27일까지 115일간 기록한 원정일기의 원본이다.

삼경합부[유형문화재 제84호, 2019.01.30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 『금강반야바라밀경』, 『대방광불화엄경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 『관세음보살예문』 등의 3경을 합하여 1465년(세조 11)에 정난종의 글씨를 자본으로 삼아 만든 금속활자인 을유자로 찍은 15세기 후기의 인출본이다.

천사일로일기[유형문화재 제85호, 2019. 1. 30.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현존하는 몇 안 되는 조선시대 명나라와 청나라의 사신을 맞아들이던 관원의 일기(遠接使日記) 가운데 하나로, 중국 사행단이 1536년 2월 20일 압록강을 건너올 때부터 4월 8일 압록강을 건너갈 때까지 48일간의 기록이다.

사조선록 상[유형문화재 제86호, 2019. 1. 30.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명나라의 공용경(龔用卿)이 1537년(중종 32) 조선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출발에서 귀환까지 사행의 행적과 의식 수행 등 전 과정을 기록한 것 중 상권으로 1537년경 국내에서 금속활자인 갑진자로 찍은 것이다.

소수서원 관련 고문서[유형문화재 제87호, 2019. 1. 30.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에서 제정한 초창기 원규(院規) 가운데 물자 비축, 서책 점검과 관련된 문서 3종인 전답안(田畓案) 1책, 노비안(奴婢案) 3책, 서책록(書冊錄) 2책이다.

2. 무형문화재

영제시조[무형문화재 제6호, 1990. 5. 15. 지정]: 경상도를 중심으로 한 시조창으로 평시조와 사설시조가 가장 많고, 뚝뚝 끊어지게 불러서 경상도 특유의 액센트가 강하게 나타나며, 씩씩하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 1999년부터 김향교 선생이 전승 교육사가 되어 있다.

모필장[무형문화재 제15호, 2004. 6. 10. 지정]: 문방사우의 하나인 붓을 만드는 사람과 그 기술로 이인훈이 보유자이다. 할아버지로부터 삼대에 걸쳐 붓 제작을 가업으로 하고 있다.

3. 민속문화재

신당동석장승[민속문화재 제2호, 1986. 12. 5. 지정]: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이나 절의 입구에 세운 돌장승이다.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 옆에 위치한다. 네모난 돌기둥의 정상에는 모자 모양을 새기고, 얼굴에는 눈썹·눈·코·입을 새겼는데 입은 약간 웃는 듯한 해학적인 모습이며, 손에 여의주봉을 들고 있어 일반적인 장승과는 다른 모습이다.

[비지정문화재]

문헌 기록에 없는 달서구의 역사를 잘 보여 주는 유적들로 지표조사와 110여 차례 진행된 발굴 조사를 통하여 소개되어 있다. 구석기시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생활 유적들이며, 그중에서도 청동기시대의 대규모 분묘와 취락 및 제의 유적이 확인된 월배 지역 선사유적이 대표적이다.

1. 선사시대

월성동 777-2유적에서 좀돌날석기를 포함한 1만 여점의 석기가 출토된 석기 제작장이 조사된 바 있어서, 달서구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늦어도 후기 구석기시대 전후로 보인다. 신석기시대 유적은 5개소로 진천천 유역과 월배 선상지 일대의 유천동 248-1유적, 월성동 1275유적, 상인동 119-20유적, 진천동 576-8유적, 대천동 413유적에서 중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유구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그러나 생활유구는 유천동 248-1유적에서 주거지 2기와 야외노지, 구, 수혈, 주혈, 부석이 확인되고, 대천동 413유적에서 주거지 1기가 조사된 것이 전부이다.

청동기시대 유적은 대구 지역에서 가장 많은 수가 조사되었는데, 통칭하여 월배 지역 선사유적으로 불리고 있다. 조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제의 유적과 분묘, 생활 유적, 생산 유적 등 76개소가 확인되며, 월배 선상지 전역에 걸쳐 분포한다. 제의 유적으로는 입석 7개소가 있다. 월암동에는 입석Ⅰ~Ⅴ가 일정 간격을 보이며 세워져 있는데, 이 중 입석Ⅰ~Ⅲ은 발굴 조사되었다. 진천동 입석은 사적 제411호로 지정되었는데, 표면에는 6개의 바위구멍[性穴]과 4개의 동심원 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 외 상인동 입석이 있다. 분묘는 27개소에서 확인되었으며, 조사된 것은 고인돌, 돌널무덤, 돌덧널무덤 200여 기에 이른다. 고인돌 상석이 확인된 유적은 10개소, 하부 매장 구조가 확인된 유적은 20개소 정도이다. 돌널무덤과 돌덧널무덤 등 하부구조는 유적마다 1~68기가 확인되어 차이가 심한데, 주로 4~7기 정도 확인되는 유적이 많다. 대천동 511-2유적[68기], 상인동 128-8유적[12기], 상인동 98-1유적[12기], 월성동 지석묘 Ⅰ~Ⅳ, 진천동 지석묘 Ⅱ~Ⅳ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대천동 511-2유적에서는 크게 2개의 군집을 이루며 시기를 달리하는 68기의 분묘가 확인되었는데, 돌널무덤 19기, 돌덧널무덤 48기, 무시설 1기이다. 생활 유적은 55개소가 확인되었는데, 주거지 10기 이상이 확인되는 유적으로는 대천동 511-2유적[16기], 상인동 123-1유적[22기], 상인동 128-8유적[16기], 상인동 87유적[36기], 상인동 98-1유적[10기], 송현동 906-11유적[14기], 월성동 1275유적[17기], 월성동 498유적[10기], 월성동 600유적[10기], 월성동 777-2유적[16기], 월암동 363유적[14기]이 있으며, 전체 조사된 주거지는 260여 기이다. 특히 상인동월성동 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며, 주변에 돌덧널무덤군이 분포하는 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생산 유적은 전기에 해당하는 월성동 600유적에서 토기가마 1기가 조사된 바 있다.

초기 철기시대 유적은 3개소가 확인되었는데, 월성동 777-2유적에서는 나무널무덤 19기, 상인동 128-8유적에서는 나무널무덤 1기, 월성동 705유적에서는 나무널무덤 1기, 옹관묘 54기, 매납유구 3기 등이 확인된 바 있다. 이 유적들에서는 원형점토대토기나 흑도장경호, 두형토기, 검파두식 등 초기 철기시대 말기에 해당하는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2. 원삼국 및 삼국시대

원삼국 유적은 월성동 671-2유적에서 옹관묘 2기가 보고된 외에는 없다.

삼국시대 유적은 분묘와 생활 유적, 생산유적 등 22개소가 확인된다. 분묘는 월배 선상지 일대의 대곡동 유적, 상인동 128-8유적, 상인동 332-2유적, 상인동 332-4유적, 상인동 산1유적, 상인동고분군, 월성동 1300유적, 월성동 498유적, 월성동 585유적, 월성동고분군과 성서 궁산 자락의 신당동 분묘군, 신당동 산39유적, 죽전동 산78-1유적이 있다. 이 유적들에서는 석곽묘 1~8기, 석실묘 1~3기 정도가 각각 조사되었다. 생활 유적은 11개소로 월성동 600유적, 월성동 671-2유적, 신당동 분묘군, 신당동 산39유적 등에서 주거지 1~2기 정도가 확인될 뿐 나머지 유적에서는 수혈, 구, 도로 등의 단편적인 자료만 보인다. 다만, 대곡동 유적에서 고상가옥 57기, 수혈 67기, 구 27기 등이 확인되어 대규모 취락의 모습을 보여 준다. 생산 유적은 궁산 자락의 신당동 49유적에서 토기가마 2기와 점토채취장, 신당동 산39유적에서 토기가마 4기, 월배 선상지에 접한 도원동 토기요지에서 토기가마 6기가 조사된 바 있다.

3. 통일신라~고려시대

통일신라시대 유적은 분묘와 생산 유적, 건물지, 담장지, 주거지, 고상가옥, 수혈, 도로 등의 생활 유적이 알려져 있다. 분묘는 신당동 49유적, 월성동 1275유적, 월성동 1275유적, 월성동 1300유적, 진천동 508유적 등 5개소에서 확인되었다. 신당동 49유적에서는 석실분 2기와 돌덧널무덤 2기가 조사되고, 나머지 유적에서는 각각 돌방무덤 1기가 확인되었다. 생산유구는 대곡동 유적에서 기와가마 2기가 조사되었다. 생활 유적은 20개소가 조사되었는데, 이 중 대표적인 주거지는 대곡동 유적[15기], 월성동 566유적[7기], 월성동 600유적[9기], 유천동 103유적[15기], 진천동 508유적[5기], 진천동 716-6유적[13기]에서 확인되었는데, 3~4기씩 군을 이루며 일정 공간 이격되어 있고, 내부에는 부뚜막과 쪽구들을 갖춘 특징을 보인다. 나머지 유적에서는 건물지, 고상가옥, 주거지, 우물, 수혈, 구, 도로 등이 복합되어 나타난다.

고려시대 유적으로는 건축물과 분묘, 생활 유적, 생산 유적 등 18개소가 확인된다. 건축물로는 임휴사(臨休寺)는 신라 경명왕 5년(921)에 창건하였으며, 왕건견훤과의 공산 전투에서 패하여 도망갈 때 잠시 쉬어가 ‘임휴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하여진다. 분묘는 대곡동 150유적, 도원동 233-3유적, 상인동 1-40유적, 상인동 1-40유적, 상인동 1436-1유적, 신당동 49유적, 월성동 1275유적, 월성동 566유적, 용산동 세명학교 유적, 죽전동 산78-1유적에서 움무덤과 돌덧널무덤이 확인된 바 있다. 생산유적은 상인동 토기요지와 기와가마가 조사된 대곡동 150유적 및 대곡동 유적이 알려져 있다. 생활 유적은 6개소로 대곡동 유적, 대천동 511-2유적, 월성동 671-2유적, 월성동 739유적, 유천동 19-2유적, 진천동 716-6유적에서 건물지, 수혈, 집석, 구 등이 확인되었다.

4. 조선시대~근대

조선시대 유적은 유존하는 건조물과 자연유산, 그리고 발굴 조사를 통하여 밝혀진 생활 유적 등이 알려져 있다. 현존 건조물은 4개소로 신당동가선대부 김악소불망비[1818년], 월암동삼현유허비[1830년], 파호동이락서당[1766년]이 알려져 있다. 자연유산은 9건으로 대곡동 느티나무[250년], 대천동 회화나무[290년], 도원동 느티나무①[500년], 도원동 느티나무②[200년], 이곡동 팽나무[150년], 장기동 버드나무[200년], 진천동 느티나무[500년], 진천동 회화나무[150년], 호산동 소나무[300년]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발굴 유적 17개소는 분묘와 생산 유적, 생활 유적이다. 분묘는 3개소로 궁산 자락인 신당동 49유적[15기], 신당동 분묘군[11기], 신당동 산39유적[15기]에서 확인되었는데, 모두 토광묘이다. 생산 유적은 월성동 498유적에서 삼가마 1기가 조사되었다. 그 외 생활유적은 월배 선상지 일대인 상인동, 월성동 일대에서 조사되었는데, 건물지, 주거지, 수혈, 우물, 도로, 배수로 등 종류는 다양하나 유존 상태가 좋지 못하여 이 일대에 마을이 있었다는 것 외에 자세한 성격 파악은 어렵다.

근대의 유적은 1876년 개항 이후의 건축된 재실과 비로 일제강점기에 만든 것이다. 대곡동저존재[1920년], 이곡동의 용강사[1920년], 상인동인산정사[1905년], 호산동김해김씨 효부각[1909년]이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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