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624 |
---|---|
한자 | 太弓商店 |
이칭/별칭 | 태궁상회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설립 시기/일시 | 1914년 - 태궁상점 설립 |
---|---|
성격 | 상회 |
설립자 | 서상일 |
[정의]
1914년 대구광역시에서 서상일이 설립한 잡화 상회.
[설립 목적]
태궁상점은 근대적 이윤 추구를 위하여 설립된 잡화 상회이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는 창구 역할을 담당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태궁상점은 1914년 대구의 남문 밖에서 곡물과 숯을 취급하였다. 그 뒤 태궁상점은 향산상회(香山商會)의 윤상태에게서 1,000원의 상업자금을 융통하여 제유 원료와 비료 등 각종 만주 특산물과 식염 등으로 취급 품목을 늘렸다. 영업장도 남문에서 서문시장이 있는 시장북로로 옮겼다.
태궁상점은 1917년에 주식회사로 전환을 꾀하였다. 이때는 달성친목회가 일제의 간섭으로 해산된 뒤였다. 태궁상점은 자본금을 크게 늘리고, 영업도 국외로 넓혀 만주의 조와 목재를 수입하는 무역업을 펼치고자 하였다. 이때 계몽운동가 홍주일(洪宙一)이 직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어 태궁상점의 서상일은 포항의 자산가 편동현(片東鉉), 성주의 자산가 배상연(裵相淵), 곡물상 한익동(韓翼東), 백산상회(白山商會)의 안희제와 자본 투자를 협의하였다. 그 밖에 서창규(徐昌圭), 엄진섭(嚴瑱燮), 문재천(文在千), 윤합병(尹翰炳) 등도 자본 투자를 약속하였다.
태궁상점은 백산상회가 주식회사로 전환할 때, 태궁상점의 주주들이 백산상회에 투자할 수 있도록 도왔다. 윤상태가 주식회사 백산상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주식 1,000주에 해당하는 1만 2,500원을 투자하였다. 그 뒤 윤상태는 다시 서상일로 하여금 자신이 약속한 투자 자본금을 나눌 자본가를 찾게 하였다. 그에 따라 배상연이 200주, 편동현이 100주, 서창규가 100주, 엄진섭이 50주, 문재천이 100주, 윤한병이 50주를 인수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태궁상점이 백산상회의 대구연락사무소로 알려지기까지 했다.
태궁상점은 3·1운동 이후에도 미곡 거래를 중심으로 영업을 계속하면서, 서상일의 미곡거래소 설립 활동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곡물상 조합 등에서 활동을 이어 갔다.
[의의와 평가]
태궁상점은 달성친목회 해산 이후 상점의 확대를 통하여 민족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칠 계획으로 경상도의 자본가와 연계망을 형성하였다. 그에 따라 태궁상점은 독립을 전망하는 경상도 자본가층의 거점 역할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