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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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消防組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일수 |
설립 시기/일시 | 1907년 3월 1일 - 공설 대구소방조 창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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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09년 10월 21일 - 대구서부소방조와 대구동부소방조 양조 통합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39년 - 대구소방조가 대구경방단에 편입 |
해체 시기/일시 | 1945년 광복 이후 - 대구소방조 폐지 |
성격 | 소방기관 |
설립자 | 대구 일본인 거류민단 |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에 있었던 대구일본거류민단의 소방 단체.
[설립 목적]
대구소방조(大邱消防組)는 대구일본거류민단이 거류지(居留地)의 화재 방지 및 진압을 위하여 조직하였다.
[변천]
대구소방조의 역사는 1905년 7월, 8월부터 일본인들이 자경(自警)의 필요성을 느껴 대구서부소방조를 준비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대구서부소방조는 1905년 9월 4일 수압펌프 1대, 긴 쇠갈퀴, 물 운반 용구, 사다리 등 소방 장비를 갖추고 경종대(警鍾臺)는 달서교 옆에 세웠다. 1905년 9월 7일 서문시장에서 소방 점검을 겸한 소방 연습을 하였다. 대구서부소방조는 1906년 1월 4일 개소식을 거행하였다. 이후 사설 대구동부소방조가 출범하였다.
1907년 3월 1일 대구일본거류민단이 두 소방조 일체를 기부받아 대구일본거류민단 사무소에서 공설 대구소방조를 창립하고, 인력은 일본인 29명으로 구성하였다. 1909년 10월 21일 대구서부소방조와 대구동부소방조의 양조를 통합하였고, 1915년 5월 10일에는 상설 소방수 제도를 시행하였다. 대구소방조는 1939년 대구경방단에 편입되었다가 1945년 광복 이후 폐지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소방조는 1922년 6월 10일 대구부청에서 창립 15주년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1928년 4월에는 상설 소방수 인원을 27명으로 증원하고 의용 소방수도 100명을 두었으며 펌프 자동차, 수관 자동차 등의 근대식 소방 장비도 갖추었다.
대구소방조는 불을 끄다가 순직한 소방수를 위하여 대구 달성공원에 순직비를 세우고, 1930년 11월 22일 오전 9시 순직비 개막식을 거행한 뒤 10시부터는 동인정[현 중구 동인동] 공설운동장에서 대구부 내 각 소방 연합대 연습을 실시하였다. 1933년 7월 금호강이 범람하여 홍수가 발생하자 대구소방조가 출동하여 수해 복구 활동을 벌였다. 1935년 5월 1일 미나카이[三中井] 백화점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하였을 때는 소방 활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대구일본거류민단에 의하여 설립되어 일본인 중심으로 운영되었던 대구소방조는 화재 진압이라는 소방 본연의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식민지 지배 정책이 반영된 단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