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A0305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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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마을/마을 이야기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교항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용 |
[정의]
다리목마을 토박이 부녀회장 김숙이
[6.25 전쟁의 기억과 가족 해체의 아픔]
1948년생인 김숙이는 3살 때 6.25 전쟁을 맞았다. 국군과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은 1950년 8월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온 인민군을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다리목마을은 낙동강 기슭에 위치하여 피아 공방전의 범위에 포함되었다. 마을 사람들의 기억에 의하면, 한때는 인민군이 도강하여 마을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아군이 이를 격퇴하는 과정에서 마을이 온통 불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약 한 달 동안 피난길에 들어야만 했다. 그녀의 가족들도 인근 금계산과 대방산 사이의 선녀골로 피난을 갔다. 피난 도중 먹을거리가 부족해지자 일부 피난민들은 몰래 마을로 들어가 식량을 조달해오곤 했다. 그녀의 아버지도 식량을 가져오다가 마을 옆 광개들에서 인민군에 의해 변을 당했다.
한 달 후 피난길에서 되돌아왔지만, 마을은 온통 불타 성한 가옥이 없을 정도였다. 마가들에는 미군용 낙하산이 널브러져 있기도 했다. 아버지의 사망으로 어머니도 곧바로 재혼했으므로 3명의 자매들은 졸지에 고아가 되고 말았다. 6.25 전란의 아픔이 어린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남겨졌다. 이후 그녀는 큰아버지 댁에 얹혀 양육되었다.
[결혼 후 부산에서의 객지 생활 7년 살이]
그녀의 큰아버지는 다리목마을에서 한약방을 경영하여 제법 부유한 편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초등학교도 못 다닌 채로 성장하여 21세에 이웃마을 신당리(新塘里) 김해 김씨 가문으로 시집갔다. 남편은 여섯 살 위로 6남 1녀 7남매 중 장남이었다. 신랑은 당시 부산에서 공장에 다니고 있었으므로 농촌을 벗어난다는 생각에 맏며느리도 마다않았다. 성장 과정에서 너무 힘들게 농사일을 했기 때문이었다.
21세 결혼 후 그녀는 남편을 따라 부산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남편은 로프(rope)공장에서 월급 2,800원을 받고 일했다. 쌀 한 말이 3,000원이었으므로 두 식구의 생활조차도 힘들었다. 그리 하여 결혼 10일 만에 광안리 기사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하여 월 6,000원을 벌었다. 이후에는 남편이 다니던 로프 공장에서도 일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자 그만두고 아이를 엎고 다니면서 이번에는 간장 행상을 시작했다. 이런 생활을 7년 동안 하고난 후 시아버지 사망으로 부산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되돌아왔다.
[참외 농사와 부녀회 활동]
그녀는 귀향 후 시어머니를 봉양하며 30여 년 동안 남편과 함께 참외 농사를 지었다. 그 동안 2남 1녀의 자녀도 키워냈다. 참외 농사는 올해 39세인 막내아들이 4세 되던 해에 시작해서 7, 8년 전까지 계속했다고 한다.
그녀는 다리목마을 부녀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그녀가 40대 초반이던 무렵 마을 부녀회가 처음으로 조직되었는데, 70여 명의 회원들은 매월 1,000원씩 회비를 내어 기금을 적립해나갔다. 58세 때는 3년 동안 부녀회장을 맡아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마을 내에서는 명절날 생선 판매 등으로 부녀회 기금을 불려나가면서 자체 야유회를 추진하고, 노인 관광이나 경로잔치를 지원하였다. 다리목마을 부녀회는 이팝나무 숲에서 격년제로 개최하는 경로잔치 때마다 청년회와 더불어 음식 준비를 비롯한 일체의 행사를 맡아 나왔다.
[부녀회장의 봉사 활동은 마을 밖에까지]
그녀는 부녀회장 재임 시 옥포면[현 옥포읍] 단위의 대외적인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생활 곤란 가구를 지원하기 위한 ‘사랑의 쌀독’ 행사에서는 부인회장 자격으로 쌀 반 가마 분량을 쾌척하였다. 독거노인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사랑의 집수리’ 봉사 활동가로도 참여하여 관내 12개 마을을 다니면서 벽지 바르기와 청소 작업 등에 참여했다. 다리목마을에도 대상 가구를 추천함으로써 가장 먼저 집수리 지원을 받도록 해주었다. 이 외에도 매년 김장철마다 ‘김치나누기’ 행사에도 참여하여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도와왔다.
그녀는 이와 같은 적극적인 봉사 활동을 인정받아 마을 사람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하다. 부녀회장 재직 시 동민들과 부녀회로부터 받은 표창장과 감사패는 그 표징이기도 하다. “서로 도우면서 사는 보람도 적지 않다”면서 크게 웃는 그녀의 모습이 한층 행복해 보인다.
[정보 제공자]
김숙이(여, 1948년생, 대구 광역시 달성군 옥포면[현 옥포읍] 교항리 다리목마을 전 부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