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10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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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選擧[達城郡] |
영어공식명칭 | election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경희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 군민들이 자치 단체장, 지방 의회 의원, 지역 국회 의원, 대통령 등을 투표 등의 방법으로 선출하는 행위.
[개설]
선거란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서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고 정치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행위이다. 현재 한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주요 선거는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대통령 선거, 국회 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국회 의원 선거, 「지방 자치법」에 따라 지방 의회 의원 및 지방 자치 단체의 장을 선출하는 지방 자치[광역 자치 단체와 기초 자치 단체] 선거 등이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지역의 선거도 이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대통령 선거]
1. 제1공화국의 대통령 선거
대통령 직접 선거는 건국 이후 지금까지 13차례 시행되었다. 초대 대통령은 간접 선거제를 채택해 국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하였으며 제2대 대통령 선거부터 직접 선거제를 도입하여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8·9·10·11대 대통령 선거는 간접 선거제로 치러졌다. 따라서 달성군민이 직접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것은 지금까지 13차례이다.
제2대 대통령 선거는 1952년 8월 5일 실시되었다. 이 선거의 전국 선거인 수는 960만 6870명이었으며 94.4%인 906만 7063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달성군에서는 유권자 6만 4857명 중 6만 167명이 참여해 93.0%의 투표율을 보였으며 이승만(李承晩)이 유효 투표 5만 3455표의 63.6%인 3만 3867표, 이시영(李始榮)이 21.7%인 1만 1575표, 조봉암(曺奉巖)은 10.8%인 5,754표를 얻었다.
제3대 대통령 선거는 1956년 5월 15일 실시되었다. 이승만, 신익희(申翼熙), 조봉암 세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 나섰지만 투표일을 열흘 앞두고 민주당(民主黨)신익희 후보가 선거 유세를 위해 호남 지방으로 가던 중 심장마비로 서거함으로써 이승만과 조봉암 양자 대결로 치러졌다. 이 선거의 전국 선거인 수는 960만 6870명으로 총인구 2152만 6374명의 44.6%를 차지했다. 전국적으로 94.4%가 선거에 참여함으로써 유례없이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지만 유효 투표율이 79.5%에 그쳐 무효표가 전례 없이 많았던 선거이기도 하다. 달성군의 선거인은 6만 4857명이었으며 6만 167명이 투표에 나서 92.8%의 투표율을 기록했으며 이승만보다는 조봉암을 지지함으로써 야당 지지의 성향을 드러냈다.
제4대 대통령 선거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조병옥(趙炳玉)이 신병 치료를 위해 미국에 갔다가 선거를 한 달 앞둔 2월 15일 사망하게 됨으로써 이승만이 단일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개표 결과 대통령 선거 투표율은 97%로 선거인 1119만 6490명 중 1086만 2272명이 투표에 참여했고 88.7%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달성군의 투표율은 97%로 집계되었으며 지지율은 90.2%로 나타났다. 제5대 부통령 선거의 투표율은 대통령 선거와 같은 97%로 집계 되었으며 유효 투표율은 96.9%로 나타났다. 달성군의 투표율도 전국 평균과 같은 97%로 집계되었으며 유효 투표율은 93.4%로 대통령 선거에 비해 다소 높았다. 이기붕(李起鵬)이 유효 투표의 79.2%에 해당하는 833만 7059표를 얻어 제5대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달성군에서의 득표율은 전국 평균보다 높은 91.3%였다.
2. 제2공화국의 대통령 선거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제4대 대통령과 제5대 부통령 선거에 대해 국회가 4월 26일 선거 무효를 결의함으로써 제4대 대통령 선거는 1960년 6월 15일자로 국회를 통과한 제3차 개정 헌법안에 따라 8월 12일 재실시하였다. 그리고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로서의 지위만 가지게 되었다. 선출 방식도 국회에서의 간접 선거로 바뀌었다.
3. 제3공화국의 대통령 선거
제5대 대통령 선거는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사 혁명 정부가 국회를 해산하고 구성한 국가 재건 최고 회의에서 만든 제3공화국 헌법이 1962년 12월 17일 국민 투표에 부쳐져 통과됨에 따라 1963년 10월 15일 실시되었다. 투표 결과 민주 공화당(民主共和黨)박정희(朴正熙) 후보가 전체 유효 투표자 1008만 1198명의 46.6%인 470만 2640명의 지지를 받아 454만 6614표를 얻은 민정당(民政黨)윤보선(尹潽善) 후보를 15만 6000여 표 차이로 간신히 누르고 당선했다. 전국 투표율은 85.0%였으며 달성군의 투표율은 84.2%로 나타났다. 달성군의 유효 투표율은 88.5%로 전국 평균 91.0%보다 다소 낮았다. 달성군에서의 후보별 지지율은 박정희 61.5%, 윤보선 29.3% 등으로 집계되어 박정희에 대한 지지도가 전국 평균보다 15% 높았다.
제6대 대통령 선거는 1966년 12월 14일 법률 제1848호로 개정·공포된 「대통령 선거법」에 따라 1967년 5월 3일 실시되었다. 대통령 후보 등록 마감 결과 7명이 등록했는데 민주 공화당에서는 당 총재이며 현직 대통령인 박정희를 후보로 내세웠다. 투표 결과 민주 공화당박정희 후보가 568만 8666표로 유효 투표의 51.4%를 얻어 당선이 확정되었고 윤보선 후보는 452만 6541표를 얻어 116만 2215표 차이로 낙선했다. 전국 투표율은 제5대 대통령 선거에 비해 다소 낮은 83.6%를 기록했지만 달성군의 투표율은 91.0%로 오히려 높아졌다. 후보자별로는 박정희 후보가 3만 4438표로 63.6%의 지지율을 보여 윤보선 후보의 1만 3852표, 25.6%의 지지율을 2배 이상 앞섰다. 나머지 후보들은 1,000여 표에서 2,000여 표를 얻는 데 그쳤다.
제7대 대통령 선거는 1971년 4월 27일 실시되었다. 투표 결과 전국 선거인 1555만 2236명 중 1241만 7824명이 선거에 참여해 79.8%의 투표율을 보였는데 이는 4년 전 실시된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 기록한 83.6%에 비해 다소 낮아진 수치이다. 달성군의 투표율도 86.3%로 나타났다. 제6대 대통령 선거의 투표율은 91.0%였다. 개표 결과 박정희 후보가 유효 투표의 53.2%인 634만 2828표를 얻어 45.3%, 539만 5900표를 획득한 김대중(金大中) 후보를 94만 6928표 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달성군에서는 유효 투표 5만 3670표 중 4만 1578표가 박정희 후보에게 기표해 77.5%란 압도적 지지율을 보였다. 이는 전국 지지율 53.2%에 비해 20% 이상 높은 비율이다.
4. 제4공화국의 대통령 선거
제8대 대통령 선거는 1972년 12월 23일 통일 주체 국민 회의(統一主體國民會議)에서 간접 선거로 실시되어 단일 후보로 나선 박정희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제9대 대통령도 1978년 5월 18일 실시된 선거에서 단일 후보로 나선 박정희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10대 대통령 선거는 박정희 대통령의 유고로 제9대 대통령을 선출한 지 불과 1년여 만인 1979년 12월 6일 실시되었다. 곽상훈(郭尙勳) 대의원 등 827명이 최규하(崔圭夏) 권한 대행을 단일 후보로 추천했고 찬성 2,465표, 무효 84표로 제10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5. 제5공화국의 대통령 선거
최규하 대통령은 1980년 8월 16일 “이 땅에 평화적 정권 교체의 시범을 보여주기 위해” 대통령직을 하야했고 후임 대통령을 선출할 때까지 박충훈(朴忠勳) 국무총리 서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게 되었다. 통일 주체 국민 회의는 각 지역별로 집회를 소집하여 전두환(全斗煥)을 제11대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전두환은 8월 22일 대장으로 전역했고 8월 27일 잠실 체육관에서 개최된 제11대 대통령 선출을 위한 통일 주체 국민 회의 집회에서 단독 입후보하여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제12대 대통령 선거는 1981년 2월 25일 실시되었다. 대통령 선거인 5,278명 중 구속 중인 4명과 일기불순으로 참석하지 못한 섬 지역 선거인 2명 등 6명의 기권자를 제외한 5,272명의 선거인이 참여해 투표한 결과 전두환민주 정의당 후보 4,755표, 유치송(柳致松)민주 한국당(民主韓國黨) 후보 404표, 김종철(金鍾哲)한국 국민당(韓國國民黨) 후보 85표, 김의택(金義澤)민권당(民權黨) 후보 26표, 무효 1표로 나타나 전두환 후보가 90.2%의 압도적 다수표를 얻어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6. 제6공화국의 대통령 선거
제13대 대통령 선거는 제5공화국 말기인 1987년 10월 27일 실시된 국민 투표로 확정한 새 헌법에 따라 1987년 12월 26일 국민의 직접 선거로 치러졌다. 선거 결과 투표율은 전체 유권자 2587만 3624명 중 2306만 6419명이 참가해 89.2%를 기록했고 민정당노태우(盧泰愚) 후보가 828만 2738로 유효 투표의 36.6%를 얻어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김영삼(金泳三) 후보와 김대중 후보는 각각 28.0%, 27.0%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달성군에서의 투표율은 92.7%로 전국 평균보다 다소 높았다.
그렇지만 이 선거에서는 각 시도별로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표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지역 편중 현상이 부각되었다. 특히 노태우와 김대중 후보의 지지표는 대구·경북에서는 190만 8398표 대 6만 9587표로 나타난 반면 광주·전남에서는 14만 2172표 대 176만 7544표로 나타났으며 지지율도 대구에서는 70.7% 대 2.6%, 경상북도에서는 66.4% 대 2.4%로 나타난 반면 광주에서는 4.8% 대 94.4%, 전라남도에서는 8.2% 대 90.3%로 나타나, 지역별 후보 선호도가 뚜렷하게 대비되었다. 김영삼 후보와 김종필(金鐘必) 후보도 각각 연고지인 부산·경남 지역과 충청남도 지역에서 지지표가 쏟아졌다. 달성군의 개표 결과는 노태우 후보 3만 8225표 대 김대중 후보 1,052표, 지지율에서는 77.5% 대 2.1%로 나타나 노태우 후보에 대해서는 경상북도 평균보다 높은 지지를 보인 반면 김대중 후보에 대해서는 평균보다 훨씬 낮은 지지를 보이고 있다.
1992년 12월 18일 치러진 제14대 대통령 선거는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후 제3공화국 - 제4공화국 - 제5공화국으로 이어진 산업화 권위주의 체제와 군부 중심의 집권 세력을 청산하고 ‘문민정부’를 탄생시켰다는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선거이다. 뿐만 아니라 이 선거는 1970년 신민당(新民黨) 대통령 후보 경선 이래 20여 년간 야당의 지배 세력을 구축해 오고 있던 김영삼 - 김대중의 양 김 구도가 청산되는 획기적 결과를 만들어낸 선거이기도 하다.
한국 야당을 이끌어 오던 양 김 중 김영삼은 1990년 1월 22일 민주 정의당 총재인 노태우 대통령, 신민주 공화당(新民主共和黨) 총재 김종필과 자신이 이끌고 있던 민주당을 합당하기로 합의한 후 당명을 민주 자유당(民主自由黨)으로 정한 후 대표 최고 위원으로 추대되었고,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그렇지만 야당인 민주당 후보로 선거를 치렀던 김대중 후보는 선거 다음 날인 12월 19일 낙선이 확실해진 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따라서 5·16 쿠데타 이후 양 김 구도 아래 박정희 지배 체제에 맞서 군정 종식을 주장하던 야당 입장에서는 동시에 두 지도자를 잃고 리더 그룹을 재편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셈이다. 투표에는 유권자 2942만 2658명 중 2409만 6636명이 참여해 81.9%의 투표율을 나타냈다. 달성군에서는 유권자 7만 4284명 중 5만 6288명이 투표에 나서 전국 평균보다 낮은 75.8%의 참여율을 나타냈다. 개표 결과 김영삼 후보가 997만 7332표, 유효 투표자 42.0%의 지지를 얻어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달성군의 개표 결과는 김영삼이 3만 3671표로 60.8%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1997년 12월 18일 실시된 제15대 대통령 선거는 한국 정치사상 처음으로 선거에 의해 여당과 야당 간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 선거에는 제14대 대통령 선거 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김대중이 1995년 새정치 국민 회의를 창당하고 대통령 후보가 되었으며 이후 자유 민주 연합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김종필 총재와 협상을 통해, 대통령 선거에서의 김종필 후보 사퇴, 당선 후 공동 정권 구성이라는 대선 공조 체제에 합의함으로써 승리를 이끌어 냈다.
제15대 대통령 선거에는 총 유권자 3229만 416명 중 2604만 2633명이 투표에 나서 80.7%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달성군에서는 총 유권자 9만 3652명 중 7만 3577명이 투표해 78.5%의 참여율을 보였다. 개표 결과 김대중 후보가 1032만 6275표, 유효 투표자 40.3%의 지지를 얻어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회창(李會昌) 후보는 993만 5718표로 38.7%의 지지를 얻었고 이인제(李仁濟) 후보가 492만 5591표[19.2%], 권영길(權永吉) 후보 30만 6026표[1.2%], 신정일(申正一) 후보 6만 1056표[0.2%], 김한식(金漢植) 후보 4만 8717표[1.9%], 허경영(許京寧) 후보 3만 9055표[1.5%]를 기록했다.
김대중 후보는 특히 광주와 전라남도, 전라북도에서 각각 97.3%, 94.6%, 92.3%라는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대구와 부산, 울산, 경상남북도에서는 이회창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대구에서의 지지율이 72.6%를 기록했을 뿐 다른 지역에서의 지지율은 51%에서 62% 정도에 머물러 호남 지방의 김대중 지지 양상과는 구분된다. 달성군에서는 이회창이 4만 7516표를 얻어 68.7%의 지지율로 1위를 기록했다. 이인제는 1만 1942표로 17.3%, 김대중은 1만 591표로 15.3%의 지지를 얻었다. 권영길, 허경영, 김한식, 신정일 후보는 각각 1,364표, 121표, 97표, 485표를 얻는 데 불과했다.
제16대 대통령 선거는 2002년 12월 19일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는 여당인 새천년 민주당과 제1야당인 한나라당이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국민 참여 경선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정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에까지 국민의 참여를 확대하는 획기적인 방식이 도입되었다. 투표에는 유권자 3499만 1529명 중 2478만 4963명이 참여, 70.8%의 투표율을 나타냈는데 이는 역대 대통령 선거 중 가장 낮은 수치이다. 달성군에서는 전체 유권자 10만 971명 중 7만 7876명이 투표에 나서 71.4%의 투표율을 보였다. 개표 결과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유효 투표의 48.9%인 1201만 4277표를 얻어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회창 후보는 46.6%인 1144만 3297표로 낙선했다. 그렇지만 달성군민의 이회창 후보 지지율은 74.2%, 노무현 후보 지지율은 20.6%로 나타났다.
제17대 대통령 선거는 2007년 12월 19일 국민의 직접 선거로 치러졌으며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은 제16대 대통령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국민 참여 경선 방식을 도입했다. 투표에는 총 선거인 3765만 3518명 중 2373만 2854명이 참여해 투표율이 정부 수립 이래 당시까지 직접 선거로 치러진 11차례의 대통령 선거 가운데 최저인 63.0%로 나타났다. 개표 결과 이명박(李明博)이 1149만 2389표, 48.7%의 득표율로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달성군의 선거인 수는 11만 8818명이었으며 7만 9321명이 투표에 참여해 66.8%의 투표율을 보였다. 달성군민의 이명박 지지율은 67.7%, 정동영(鄭東泳) 후보 지지율은 6.8%로 나타났다.
제18대 대통령 선거는 2012년 12월 19일 실시되었다. 선거 방식은 제17대 대통령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국민 직접 선거로 치러졌고 2012년 4월 11일 실시된 제19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도입된 재외 국민 투표가 실시됨으로써 1971년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에 재외 국민이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선거 사상 처음으로 선상(船上) 투표가 시행되었다.
투표에는 총 유권자 4050만 7842명 중 3072만 1459명이 참여하여 75.8%의 투표율을 기록했는데 이는 제17대 대통령 선거의 63.0%에 비하면 12.8%나 높은 수치이다. 달성군에서는 유권자 14만 2838명 중 11만 4413명이 참여해 80.1%의 투표율을 보임으로써 전국 평균보다 높은 참여도를 나타냈다. 개표 결과 박근혜(朴槿惠) 후보가 1577만 3128표[득표율 51.55%]를 얻어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게 되었다. 달성군에서의 지지율은 이보다 훨씬 높은 80.87%에 달했다. 박근혜 후보는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처음으로 과반수 득표를 달성했다. 문재인(文在寅)은 1469만 2632표를 얻어 48.02%의 득표율로 2위를 기록했다. 달성군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9만 2161표[80.9%]를 얻어 문재인 후보의 2만 1290표[18.7%]를 압도적으로 눌렀다.
[국회 의원 선거]
1. 제1공화국의 국회 의원 선거
제1대 국회 의원 선거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전인 1948년 5월 10일 실시되었다. 제헌 국회 의원 선거에서 달성군은 경상북도 제4선거구로 지정되었다. 총 5명의 후보가 입후보하였는데 이들은 유도회 3명, 무소속 2명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후보자가 적었으며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大韓獨立促成國民會)나 한국 민주당 등 전국적으로 다수 출마자를 낸 정당·단체 소속 인사가 없었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과 구별된다. 유효 투표자는 총 3만 7195명이었으며 투표 결과 유도회김우식(金禹植) 후보가 1만 1804표, 31.7%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김우식은 1946년 결성된 유도회 경북 지부 결성식에서 지부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한 바 있는 우익 인사이다.
제2대 국회 의원 선거는 1950년 5월 30일 실시되었다. 이 선거는 한시법으로 제정되었던 미군정 법령에 의한 국회 의원 선거법이 폐지되고 제헌 국회의 의결을 거쳐 1950년 4월 12일 법률 제121호로 공포된 「국회 의원 선거법」에 의해 시행된 대한민국 정부의 첫 선거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 경상북도 제6선거구로 편성된 달성군에서는 19명이나 되는 후보자들이 난립했는데 이 중 12명이 무소속이었다. 입후보자 중에는 제헌 의원인 김우식, 제헌 의원 선거에 입후보했다가 차점과 3위로 낙선한 권오훈(權五勳), 박노익도 포함되어 있었다. 투표 결과 무소속 권오훈 후보가 유효 투표 4만 8271표 중 16.9%인 8,172표를 획득해 당선되었다.
그런데 제2대 국회 의원 선거가 치러진 지 한 달도 채 못 지난 시점에 6·25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31일 저녁, 달성군 출신 권오훈 의원이 대구 시내 남산동 길에서 소속 불명의 미군 몇 명이 쏜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1952년 2월 5일 보궐 선거가 실시되었다. 달성군 보궐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는 당초 7명이었지만 2명이 도중에 사퇴해 5명이 경쟁했다. 경상북도 경산 출신으로 광복 후 대한 독립 촉성회 국민회 대회의장과 초대 심계원장[고시 위원장]을 역임하고 신탁 통치 반대 투쟁 위원회 경상북도 지부장으로 활동했던 배은희(裵恩希) 목사가 대한 국민당(大韓國民黨) 후보로 출마해 경상북도 입법 의원과 제헌 국회 의원을 역임한 민주 국민당(民主國民黨) 후보 서상일(徐相日)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총 유효 투표 4만 2202표 중 48.1%인 2만 304표를 얻었다.
제3대 국회 의원 선거는 휴전 협정이 체결된 이듬해에 실시되었다. 달성군에서는 제2대 보궐 선거에서 대한 국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던 배은희가 자유당 후보로, 6·25 전쟁 시기 경상북도 도지사를 역임했던 변호사 출신 조재천(曺在千)이 민주당 후보로, 제2대 국회 의원 선거와 보궐 선거에 출마했던 양기석은 독립 노동당, 달성 광산 노총 위원장 김영환은 대한 노동 총연맹 후보로 나섰다. 그리고 김두권, 박준규(朴浚圭), 최한익, 구자권, 고계식 등 5명이 무소속으로 입후보해 총 9명의 후보자가 경쟁했다. 개표 결과 민주 국민당 후보 조재천이 유효 투표 5만 2951표 중 40.5%인 2만 1446표를 얻어 달성군의 제3대 국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제4대 국회 의원 선거를 위한 선거법 개정을 둘러싸고 여당과 야당은 1957년 9월 18일부터 협상을 시작했고 11월 9일까지 80여 회에 걸친 회동 결과 「민의원 의원 선거법」과 「참의원 의원 선거법」 법안이 완성되었다. 그렇지만 참의원 선거는 사정상 실시되지 못했다. 민의원 선거는 1958년 1월 25일 법률 제470호로 공포된 선거법에 따라 5월 2일 실시되었다. 달성군에서는 자유당 공천을 받은 김성곤(金成坤)과 민주당 공천을 받은 박준규, 2명만 입후보했다. 선거 결과는 유효 투표 3만 2323표의 72.8%인 2만 3518표를 얻은 자유당김성곤의 압승으로 끝났다.
2. 제2공화국의 국회 의원 선거
재5대 국회 의원 선거는 제2공화국 헌법에 따라 7월 29일 민의원과 참의원 선거로 실시되었다. 달성군에서는 제4대 민의원 선거에서 낙선했던 민주당박준규와 사회대중당(社會大衆黨) 후보 곽병진(郭柄鎭), 2명만 경쟁에 나서 박준규가 유효 투표 2만 9079표 중 71.6%인 2만 835표를 획득해 제5대 국회 의원[민의원]이 되었다.
3. 제3공화국의 국회 의원 선거
제6대 국회 의원 선거에는 달성군과 고령군이 하나의 선거구로 되어 투표가 진행되었으며 총 6명이 입후보 했다. 개표 결과 민주 공화당김성곤이 당선되었는데 달성군 주민들은 김성곤에게 유효 투표 6만 8988표 중 4만 4674표, 64.8%의 지지율을 보여 주었다.
제7대 국회 의원 선거는 1966년 12월 14일 법률 제1849호로 개정, 공포된 「국회 의원 선거법」에 따라 1967년 6월 8일 실시되었다. 달성군은 제6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처럼 고령군과 함께 경북 제8선거구로 편성되었고 총 4명이 입후보했다. 개표 결과 민주 공화당김성곤이 당선했으며 달성군 주민들은 유효 투표 5만 5801표 중 4만 2070표, 75.4%의 지지율을 보였다.
제8대 국회 의원 선거는 1969년 1월 23일과 1970년 12월 22일 개정된 선거법에 의해 1971년 5월 25일 실시되었다. 개표 결과 민주 공화당김성곤이 제8대 국회 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달성군 주민의 지지율은 유효 투표 5만 604표 중 3만 6133표, 71.4%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제8대 국회 의원에 당선됨으로써 4선 의원이 된 김성곤은 이른바 ‘항명 파동(抗命波動)’으로 탈당할 수밖에 없게 됨으로써 의원직을 잃었다. 이에 따라 달성·고령 선거구는 1971년 12월 14일 보궐 선거를 실시했다. 보궐 선거에는 총 5명이 입후보했는데 민주 공화당은 지역 출신으로 제5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아 당선된 후 민주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겨 서울에서 제6대와 제7대 국회 의원을 지내고 제8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박준규를 후보로 내세웠다. 신민당과 민중당에서는 제8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와 같이 현해봉(玄海鳳)과 박종철(朴種喆), 국민당은 전세덕(全世德), 통일 사회당은 김명철(金明哲)을 각각 공천했다. 투표에는 유권자 9만 6887명 중 7만 3624명이 참여해 76.0%의 투표율을 보였으며 박준규가 유효 투표 7만 1127표 중 4만 4738표를 얻어 62.9%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달성군에서의 득표율은 61.8%로 고령군보다 오히려 낮았다.
4. 제4공화국의 국회 의원 선거
제9대 국회 의원 선거는 1972년 11월 21일 국민 투표로 확정된 「유신 헌법」의 규정에 의해 1972년 12월 30일 법률 제2404호로 공포된 새 국회 의원 선거법에 따라 1973년 2월 27일 실시되었다. 제9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달성군은 경산군과 고령군을 합한 중선거구로 개편되어 경상북도 제7선거구가 되었고 총 7명의 후보자가 등록했다. 민주 공화당에서는 제8대 국회 의원 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박준규를 공천했고 신민당에서는 곽태진 전 의원과 제8대 전국구 국회 의원 이상조(李相祚)를 복수 공천하였다. 10·17 유신 직전에 창당된 민주 통일당에서는 경산군 출신 제8대 국회 의원 이형우(李亨雨)를 후보로 내세웠다. 김문조(金文祚), 박주현(朴柱炫), 조성기(曺聖基)는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이들 중 박주현은 경상북도 경산군에서 공화당 소속으로 제7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바 있다. 달성·경산·고령군에서는 총 유권자 18만 2754명 중 13만 9236명이 투표에 참여해 전국 평균보다 다소 높은 76.2%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개표 결과 민주 공화당박준규와 무소속 박주현이 각각 3만 4559표, 2만 9709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제10대 국회 의원 선거는 1977년 12월 31일 법률 제3093호로 공포된 「국회 의원 선거법」에 의거해 1978년 12월 12일 실시되었다. 달성군은 제9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와 같이 경산군, 고령군과 합쳐서 경북 제8선거구로 편성되었다. 민주 공화당박준규, 신민당김종기(金鍾基), 무소속 나학진(羅學鎭), 무소속 박주현, 무소속 이재현(李載睍)이 후보로 등록했는데 나학진이 등록 무효가 되는 바람에 4명이 경합했다. 유권자 21만 502명 중 16만 4909명이 투표에 참여해 78.3%의 참여율을 보였으며 박준규와 김종기가 각각 5만 7526표와 4만 7617표를 얻어 제10대 국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5. 제5공화국의 국회 의원 선거
제11대 국회 의원 선거는 제5공화국이 출범한 직후인 1981년 3월 25일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 달성군은 고령군, 성주군과 합하여 경북 제10선거구로 편성되었고 민주 정의당김종기, 민주 한국당최운지(崔雲芝), 민주 사회당배의석(裴義錫), 안민당배재연(裴在演), 신정당이길용(李吉容), 무소속 이용택(李龍宅)의 6명이 입후보했다. 투표에는 유권자 17만 1939명 중 14만 2897명이 참여해 83.1%의 참여율을 보였고 달성군은 유권자 9만 5241명의 83.5%인 7만 9558명이 참여했다. 개표 결과 민주 정의당김종기와 무소속 이용택이 각각 4만 1495표와 4만 3217표, 29.3%와 30.5%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제12대 국회 의원 선거는 1984년 7월 25일 법률 제3731호로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1985년 2월 12일 실시되었으며 이후 전개되는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 선거에서도 달성군은 고령군, 성주군과 함께 경북 제7선거구로 편성되었다. 민주 정의당김종기, 신한 민주당임차문(林且文), 민주 한국당김창환(金昌煥), 무소속 이용택이 후보로 나섰고 투표에는 유권자 12만 8204명 중 11만 1336명이 참여해 86.8%의 참여율을 보여주었다. 달성군에서는 유권자 5만 3453명 중 90.7%인 4만 8457명이 참여해 유례없는 참여율을 기록했다. 개표 결과 김종기와 이용택이 후보가 각각 유효 투표[10만 9311표]의 40.8%인 4만 4571표, 27.4%인 2만 9919표를 얻어 제12대 국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6. 제6공화국의 국회 의원 선거
제13대 국회 의원 선거는 1988년 2월 25일 제6공화국이 출범하고 난 뒤 3월 17일 법률 제4003호로 공포된 「국회 의원 선거법」에 따라 4월 26일 실시되었다. 달성군은 고령군과 합해 하나의 선거구로 편성되었다. 민주 정의당이용택(李龍澤), 통일 민주당배영수(裴泳壽), 신민주 공화당구자춘(具滋春)이 후보로 나섰으며 투표에는 유권자 8만 6315명 중 7만 1352명이 참여해 82.6%의 투표율을 기록해 전국 평균 75.8%보다 상당히 높은 참여율을 보였다. 달성군에서는 유권자 5만 7706명의 81.7%인 4만 7229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개표 결과 예상을 뒤엎고 신민주 공화당구자춘 후보가 유효 투표의 50.9%인 3만 5818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달성군에서의 득표율은 52.6%였다.
제14대 국회 의원 선거는 1991년 12월 31일 법률 제4462호로 개정된 「국회 의원 선거법」에 따라 1992년 3월 24일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도 달성군은 고령군과 함께 한 선거구로 편성되었고 민주 자유당구자춘, 민주당김창문, 통일 국민당이용택, 무소속 김문조(金文祚)가 후보로 등록했다. 투표에는 선거인 9만 9587명 중 7만 3657명이 참여하여 74.0%의 투표율을 보였다. 달성군의 투표율은 이보다 다소 낮은 72.1%로 선거인 7만 1901명 중 5만 1876명이 참여했다. 개표 결과 민주 자유당구자춘이 유효 투표 7만 2483표의 41.6%인 3만 147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달성군에서의 득표율은 42.4%로 고령군의 39.8%보다 다소 높았다.
제15대 국회 의원 선거는 정치 개혁을 위해 1994년 3월 16일 공포된 「공직 선거 및 선거 부정 방지법[통합 선거법]」에 따라 1996년 4월 11일 실시되었다. 달성군은 고령군과 분리된 독립 선거구가 되었으며 신한국당김석원(金錫元), 새정치 국민 회의이원철(李源鐵), 자유 민주 연합의 김정훈(金政薰), 3명의 후보가 등록했다. 개표 결과 김석원이 유효 투표의 62.7%인 3만 1958표를 얻어 당선했다. 달성군의 투표율은 63.9%로 유권자 8만 3838명 중 5만 3538명이 참여했다. 제15대 국회 의원으로 당선된 신한국당김석원 의원이 1998년 2월 17일 돌연 정치 활동을 중단하고 쌍용 양회 회장으로 그룹 경영에 되돌아간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1998년 4월 2일 제15대 국회 의원 보궐 선거가 실시되었다. 한나라당에서는 박근혜를 후보로 내세웠고 새정치 국민 회의에서는 지역 출신 행정가인 엄삼탁(嚴三鐸)을 후보로 공천했다. 선거 결과 박근혜가 유효 투표의 62.5%인 3만 4271표를 얻어 엄삼탁을 1만 4000여 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제16대 국회 의원 선거는 2000년 4월 13일 실시되었다. 달성군에서는 15대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서와 같이 한나라당박근혜 후보와 새정치 국민 회의엄삼탁 후보가 경합했다. 투표에는 선거인 9만 8776명 중 6만 2738명이 참여해 전국 평균보다 6.2% 높은 63.5%의 참여율을 보였다. 개표 결과 박근혜 후보가 유효 투표의 61.4%인 3만 7805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박근혜는 2002년 2월 28일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 미래 연합을 창당하고 당 대표가 되었다가 11월 19일 한나라당에 복당하였다.
제17대 국회 의원 선거는 2004년 4월 15일 실시되었는데 선거 사상 처음으로 정당별 비례 대표제를 채택하여 투표자가 지역구 후보에 1표, 정당에 1표씩 투표하는 1인 2표제를 채택하였다. 정당별 비례 대표제는 후보자에게만 투표하던 이전의 비례 대표제와는 달리 정당별 전국 득표 비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되, 전국 득표율의 3% 이상을 획득한 정당에 한해 자격을 부여하도록 했다. 달성군에서는 한나라당박근혜, 열린 우리당윤용희(尹龍熙), 민주 노동당허경도(許慶道)가 후보로 나섰고 투표에는 선거인 11만 1889명 중 6만 5633명이 참여해 역대 국회 의원 선거 사상 가장 낮은 58.7%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개표 결과 박근혜 후보가 유효 투표의 70.0%인 4만 5298표를 얻어 1만 5014표를 기록한 차점자 윤용희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이기고 당선했다.
제18대 국회 의원 선거는 2008년 2월 21일 국회가 제정한 「정치 관계 특별법」에 따라 2008년 4월 9일 실시되었다. 달성군에서는 한나라당박근혜, 민주 노동당노윤조(盧潤祚), 통일 가정당임정헌(林正憲) 후보가 경쟁했다. 투표에는 선거인 12만 1397명 중 5만 7416명만 참여해 제17대 총선 투표율 58.7%보다 11.4%나 낮은 47.3%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개표 결과 박근혜 후보가 유효 투표의 88.6%인 5만 149표를 획득, 광주광역시 동구박주선 당선자[88.7%]에 이어 전국 두 번째로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렇지만 비례 대표를 뽑기 위한 정당별 투표에서의 한나라당 지지율은 50.4%에 그쳤다.
제19대 국회 의원 선거는 대한민국의 재외 국민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최초의 선거로 2012년 4월 11일 실시되었다. 또한 각종 보궐 선거, 세종시 시장 선거, 교육감 선거도 동시에 치러졌다. 선거 방식은 1인 2표제로 제18대 국회 의원 선거와 동일하지만 299석이던 국회 의원 의석이 1석 더 늘어나 총 300명[지역구 246, 비례 대표 54명]을 선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국외 부재자 선거와 재외 국민 선거가 실시되었는데 재외 국민은 비례 대표만 뽑을 수 있도록 했다. 달성군에서는 새누리당이종진(李鐘鎭), 민주 통합당김진향, 무소속 구성재, 3명이 경합했고 선거인 13만 9951명 중 7만 3268명이 투표에 참여하여 지난 선거 때보다 다소 높은 52.4%의 투표율을 보였다. 개표 결과 이종진이 유효 투표의 55.6%인 4만 276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지방 자치 선거]
지방 자치 선거는 1991년 3월 26일 시·군·구 등 기초 자치 단체의 의회 의원 선거가 실시됨으로써 중단된 지 30년 만에 재개되었다. 그리고 1995년 6월 27일 실시된 지방 선거는 광역·기초 단체장 선거와 지방 의회 및 광역 의회 의원 선거가 동시에 치러진 제1차 4대 동시 지방 선거로 한국 지방 정치 역사에 중요한 전기를 만들었다. 달성군은 1995년 1월 1일 대구직할시가 대구광역시로 변경되면서 3월 1일자로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달성군은 1991년 실시된 지방 선거에서는 경상북도 선거구였지만 1995년 선거에서는 대구광역시 선거구로 편성되었다. 현재 달성군에서의 지방 자치 선거는 기초 의회[달성군 의회] 의원 선거, 기초 자치 단체장[달성군수] 선거, 광역 의회[대구광역시 의회] 의원 선거, 광역 자치 단체장[대구광역시장] 선거 및 교육 위원, 교육감 선거 등이 동시에 시행되고 있다.
1. 초대 달성군 의회 의원 및 제4대 경상북도 의회 의원 선거
초대 달성군 의회 의원 및 제4대 경상북도 의회 의원 선거 시 달성군에서는 9개 선거구에서 10명의 의원을 선출했는데 25명이 등록해 2.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투표에는 유권자 6만 6774명 중 4만 4805명이 참여하여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은 67.1%의 투표율을 보여주었다. 투표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구지면으로 76.7%나 되었고 가장 낮은 지역은 화원면으로 58.8%였다.
개정된 「지방 자치 단체장 선거법」에 따라 광역 자치 단체인 시·도 의회 의원 선거는 6월 20일 실시되었다. 경상북도 도 의회 의원 선거에는 87명 정원에 229명이 입후보하여 2.6대 1의 경쟁률을 보였으며 총 선거인 180만 4859명 중 121만 2668명이 투표에 참여하여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은 68.7%의 투표율을 보였다. 달성군은 3개 선거구에서 3명을 선출했다. 제1선거구[가창면, 다사면, 하빈면]에서는 민주 자유당정재택, 무소속의 이성구와 이정재가 입후보 했고 정재택이 당선되었다. 제2선거구[화원면, 옥포면, 논공면]에서는 민주 자유당하영태, 신민당윤옥임, 무소속 박경호(朴慶鎬)가 경합해 박경호가 당선되었다. 제3선거구[현풍면, 유가면, 구지면]에서는 민주 자유당권정덕과 무소속 채수목이 겨루어 채수목이 당선되었다. 투표에는 유권자 6만 9299명의 74.7%인 5만 1792명이 선거에 참여했다.
2. 제1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
1) 민선 1기 대구광역시 시장 선거: 민선 1기 대구광역시장 선거에는 현직 대구광역시장인 민주 자유당조해녕(曺海寧), 전직 대구시장을 지낸 자유 민주 연합이의익(李義翊), 대통령 경제 수석과 국회 의원을 지낸 무소속 문희갑(文熹甲), 무소속 안유호(安有浩), 청와대 정무 비서관을 지낸 무소속 이해봉(李海鳳) 등 5명이 후보로 나섰다. 개표 결과 무소속 문희갑 후보가 유효 투표의 36.8%인 38만 3272표를 얻어 초대 민선 대구광역시 시장에 당선되었다. 달성군에서의 득표율은 이보다 13.0%나 높은 49.8%로 유효 투표 5만 6438표 중 2만 8091표를 얻었다.
2) 민선 1기 달성군수 선거: 달성군수 선거에는 민주 자유당하영태(夏榮兌), 무소속 양시영(楊始榮), 무소속 윤석준이 후보로 등록했으며 투표 결과 무소속 양시영 후보가 2만 1898표로 유효 투표의 39.0%를 얻어 당선했다. 민주 자유당하영태 후보는 1만 8482표, 무소속 윤석준 후보는 1만 5807표를 각각 획득했다.
3) 제2대 대구광역시 의회 의원 선거: 대구광역시 의회 의원의 정원은 지역구 37명, 비례 대표 4명 등 총 41명이었다. 지역구 선거에는 124명이 입후보하여 평균 3.4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개표 결과 민주 자유당 10명[지역구 8, 비례 대표 2], 자유 민주 연합 8명[지역구 7, 비례 대표 1], 민주당 1명[비례 대표], 비례 1석, 무소속 22명이 당선했다. 달성군에서는 3개 선거구에서 각각 1명씩, 3명의 광역시 의회 의원을 선출했다. 선거구는 하빈·다사·가창면이 제1선거구, 화원·옥포·논공면이 제2선거구, 현풍·유가·구지면이 제3선거구로 편성되었다. 제1선거구에는 민주 자유당송태준, 자유 민주 연합정재택, 무소속 이성구 후보가 경합했고 자유 민주 연합정재택 후보가 유효 투표의 46.7%인 6,277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제2선거구는 민주 자유당이철웅 후보와 자유 민주 연합서보강 후보의 양자 대결이었는데 개표 결과 자유 민주 연합서보강 후보가 유효 투표의 58.2%인 1만 5983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제3선거구에서도 민주 자유당권정덕 후보와 자유 민주 연합이현근 후보의 양자 대결이 벌어졌는데 개표 결과 민주 자유당권정덕 후보가 유효 투표의 57.9%인 8,375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제1선거구에서 당선된 정재택은 제2대 대구광역시 의회 개회 후 후반기 부의장으로 선출되었다.
4) 제2대 달성군 의회 의원 선거: 달성군 의회 의원 선거는 군내 9개 읍·면 선거구에서 각각 1명씩, 총 10명의 의원을 선출하도록 했다. 선거에는 화원읍 4명, 가창면 3명, 다사면 3명, 하빈면 2명, 옥포면 3명, 논공면 3명, 현풍면 2명, 유가면 3명, 구지면 4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3. 제2회 전국 4대 동시 지방 선거
1) 민선 2기 대구광역시장 선거: 민선 2기 대구광역시장 선거에는 한나라당문희갑, 자유 민주 연합이의익, 국민 신당유성환의 3명이 후보로 등록하였고 선거 결과는 예측한 대로 한나라당문희갑 후보가 유효 투표 79만 2067표의 72.0%인 57만 167표를 얻어 압승했다. 문희갑 후보는 달성군에서도 유효 투표의 72.5%인 3만 7202표를 얻어 이의익 후보의 9,730표, 유성환 후보의 4,401표를 압도했다.
2) 민선 2기 달성군수 선거: 달성군수 선거에는 3명이 후보로 등록했다. 한나라당은 전 경상북도 의회 의원 박경호를 공천했고 전 경상북도 의회 의원 서보강(徐甫康)과 초대 민선 군수 양시영은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선거 결과 박경호 후보가 유효 투표의 46.3%인 2만 3685표를 득표하여 민선 2기 달성군수로 당선되었다.
3) 제3대 대구광역시 의회 의원 선거: 제2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 대구광역시 의회 의원 정수는 선거법이 개정됨에 따라 지난 선거 때보다 8명이 줄어든 29명[지역구 26, 비례 대표 3]으로 정해졌다. 달성군의 선거구도 세 곳에서 두 곳으로 줄어들었다. 선거에는 총 79명이 후보로 등록해 3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달성군은 제1선거구와 제2선거구에서 각각 1명씩 2명의 의원을 선출하기로 되었다. 제1선거구는 화원읍, 다사읍, 가창면, 하빈면으로 편성되었고 제2선거구는 논공면, 옥포면, 현풍면, 유가면, 구지면의 5개 면으로 편성되었다. 제1선거구에서는 한나라당정태일과 자유 민주 연합정재택이 겨루었다. 그리고 제2선거구에서는 한나라당박성태, 무소속 권정덕과 김정식 3명이 경쟁했다. 개표 결과 제1선거구에서는 한나라당정태일이 유효 투표 2만 7422표의 62.6%인 1만 7169표를 얻어 당선했고, 제2선거구에서는 한나라당박성태가 유효 투표 2만 2960표의 42.9%인 9,844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4) 제3대 달성군 의회 의원 선거: 개정된 선거법에 의해 군 의회 의원 수가 10명에서 9명으로 조정됨에 따라 9개 읍·면에서 각 1명씩 9명의 의원을 선출하게 되었다. 선거에는 총 18명의 후보가 출마했는데 논공읍, 옥포면, 현풍면에서는 각각 1명의 후보만 등록함으로써 무투표로 당선되었다. 화원읍에서는 3명, 다사읍은 2명, 가창면 3명, 하빈면 2명, 유가면 2명, 구지면에서는 3명의 후보가 경쟁했고 논공읍김판조, 옥포면서병호, 현풍면이현근, 화원읍이경식, 다사읍도기태, 가창면이정재, 하빈면박노설, 유가면정규봉, 구지면이팔호가 군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4. 제3회 전국 4대 동시 지방 선거
1) 민선 3기 대구광역시장 선거: 대구광역시장 선거는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조해녕 전 대구시장과 남구청장을 역임했던 무소속 이재용(李在庸) 후보 간의 대결이었다. 선거 결과 한나라당조해녕 후보가 유효 투표 74만 339표의 61.2%인 45만 2943표를 득표해 민선 제3대 대구광역시 시장에 당선되었다. 이재용 후보는 유효 투표의 38.8%인 28만 7396표를 얻었다. 달성군에서도 조해녕 후보는 유효 투표 5만 3611표의 62.3%인 3만 3397표를 얻어 37.7%, 2만 214표를 얻은 이재용 후보를 크게 앞질렀다.
2) 민선 3기 달성군수 선거: 달성군수 선거에는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은 박경호 현 군수와 무소속 김건수, 두 사람이 경합했는데 박경호 후보가 유효 투표 5만 3453표의 76.8%인 4만 1071표를 득표해 23.2%, 1만 2382표를 얻은 김건수 후보를 누르고 당선했다.
3) 제4대 대구광역시 의회 의원 선거: 달성군은 지난 선거에서와 같이 2개 선거구에서 각각 1명씩 2명의 광역 의원을 선출했다. 제1선거구에서는 한나라당정태일 후보, 무소속 오재식 후보, 무소속 이중흥 후보가 출마하여 정태일이 유효 투표 2만 922표의 62.5%인 1만 8155표를 획득해 각각 6,171표, 4,696표를 얻은 무소속 두 후보를 거뜬히 누르고 당선되었다. 달성군 제2선거구에서는 한나라당박성태, 무소속 제갈종규, 무소속 최종태, 민주 노동당김명한이 후보로 등록하였다. 개표 결과 박성태 후보가 유효 투표 2만 3812표의 48.6%인 1만 1582표를 얻어 당선했다. 제갈종규 후보는 5,373표, 최종태 후보는 4,004표, 김명한 후보는 2,853표를 각각 얻었다.
4) 제4대 달성군 의회 의원 선거: 달성군 의회 의원 정수는 “한 선거구에서 인구가 2만 명을 넘으면 의원 1명을 추가로 더 선출할 수 있다.”는 선거법 규정에 따라 9명에서 11명으로 늘어났다. 화원읍과 다사읍이 유입 인구의 증가로 인구 2만 명을 넘게 되어 각각 2명의 기초 의원을 선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선거에는 9개 읍·면에서 32명의 후보가 등록하여 평균 2.9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개표 결과 화원읍 제1선거구 표명찬, 제2선거구 정종태, 다사읍 제1선거구 이근선, 제2선거구 도원길, 가창면배도순, 하빈면박노설, 옥포면김삼도, 논공읍김판조, 현풍면유판호, 유가면성증도, 구지면방종영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5. 제4회 전국 4대 지방 동시 선거
1) 민선 4기 대구광역시장 선거: 열린 우리당이재용, 한나라당김범일(金範鎰), 민주 노동당이연재, 국민 중심당박승국, 무소속 백승홍의 6명이 경합했다. 결과는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김범일의 압승으로 유효 투표 90만 6681표의 70.2%인 63만 6057표를 득표했다. 달성군에서는 유효 투표 6만 3087표의 64.5%인 4만 708표를 얻었다. 여당 후보인 이재용은 22.0%인 1만 3867표를 얻는데 그쳤다.
2) 민선 4기 달성군수 선거: 달성군수 선거에는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은 이종진과 무소속 김문오, 석창순, 양시영, 표명찬 등 5명이 경합했다. 개표 결과 이종진 후보가 유효 투표의 과반수인 50.6%의 지지를 얻어 민선 4기 달성군수로 당선되었다.
3) 제5대 대구광역시 의회 의원 선거: 달성군은 지난 선거에서와 같이 2개 선거구에서 각각 1명씩 2명의 광역 의원을 선출했다. 제1선거구에서는 한나라당전성배 후보, 무소속 서보강 후보가 출마하여 전성배가 유효 투표 3만 7579표의 72.5%인 2만 7260표를 획득해 1만 319표를 얻은 서보강 후보를 압도적 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달성군 제2선거구에서는 한나라당김영식, 무소속 박성태가 후보로 등록하였다. 박성태는 유효 투표 2만 4989표의 50.4%인 1만 2597표를 얻은 김영식 후보에게 195표 차이로 패배해 낙선했다. 정당에 투표하도록 한 광역 의원 비례 대표 선거에서는 유효 투표 6만 2576표 중 열린 우리당이 8,326표[13.3%], 한나라당 4만 5009표[71.9%] 민주 노동당 8,224표[13.1%], 국민 중심당 1,017표[1.6%]씩 나눠 가졌다.
4) 제5대 달성군 의회 의원 선거: 의원 정수가 11명에서 8명으로 줄어들었다. 따라서 9개 읍·면 11개 선거구에서 각각 1명씩 선출하던 방식이 3개 선거구에서 7명의 지역구 의원을 선출하고 1명의 비례 대표 의원을 더 선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선거구는 화원읍과 가창면을 묶은 달성군 가 선거구, 다사읍과 하빈면을 묶은 달성군 나 선거구, 논공읍·옥포면·현풍면·유가면·구지면을 묶은 달성군 다 선거구로 구분되었고 가 선거구와 나 선거구에서는 각각 2명, 다 선거구에서는 3명의 의원을 선출하게 되었다.
2명을 선출하는 달성군 가 선거구에서는 열린 우리당도상식, 한나라당김기석, 한나라당정종태, 민주 노동당배도순, 무소속 박명환, 무소속 표종권, 무소속 하용하 등 7명이 입후보해 3.5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개표 결과 한나라당 후보인 김기석과 정종태가 각각 유효 투표의 36.6%, 16.8%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달성군 나 선거구에서는 한나라당김순호, 한나라당채명지, 무소속 도기태, 무소속 도원길, 무소속 여문학, 무소속 이근선, 무소속 이진호의 7명이 출마해서 역시 3.5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개표 결과 이곳에서도 한나라당 후보인 김순호와 채명지가 각각 26.4%, 29.9%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3명을 선출하는 다 선거구에서는 열린 우리당김만식, 한나라당서정우, 한나라당송성열, 한나라당이석원, 민주 노동당노윤조, 무소속 김삼도, 무소속 김영덕, 무소속 김한구, 무소속 방종영, 무소속 백만석, 무소속 유판호, 무소속 윤태만, 무소속 이현근 등 13명이 후보자로 나서 4.3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개표 결과 한나라당서정우와 이석원, 무소속 방종영이 각각 20.5%, 13.4%, 10.1%의 득표율로 당선 되었는데 이로써 달성군 의회 지역구 의석은 한나라당이 6석, 무소속이 1석을 차지했다. 비례 대표는 한나라당정명자 후보에게 돌아갔다.
6. 제5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
1) 민선 5기 대구광역시장 선거: 대구광역시장 선거에는 한나라당김범일, 민주당이승천, 진보 신당조명래의 3명이 경합했다. 결과는 현역 시장인 김범일의 압승으로 유효 투표 86만 8175표의 72.9%인 63만 3118표를 얻었다. 달성군에서는 김범일 후보가 유효 투표 6만 5800표의 72.6%를 득표해 각각 16.7%와 10.7%를 얻는데 그친 이승천 후보와 조명래 후보를 압도적 표 차이로 이겼다.
2) 민선 5기 달성군수 선거: 달성군수 선거에는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은 이석원, 국민 참여당김건수, 무소속 김문오의 3명이 경합했다. 개표 결과 김문오 후보가 유효 투표 6만 6448표의 47.2%인 3만 1378표를 획득해 2만 9351표[44.2%]를 얻은 이석원 후보를 2,000여 표차로 누르고 민선 5기 달성군수로 당선되었다.
3) 제5대 대구광역시 의회 의원 선거: 달성군에서 선출하는 대구광역시 의회 의원 수는 지난 선거에서와 같이 2명이었다. 화원읍과 다사읍, 가창면, 하빈면으로 편성된 제1선거구에서는 한나라당김대성 후보와 무소속 박명환 후보가 출마해 김대성이 유효 투표의 53.8%인 2만 3242표를 획득해 당선되었다. 논공면과 옥포면, 현풍면, 유가면, 구지면으로 편성된 달성군 제2선거구에서는 한나라당김영식 후보, 국민 참여당서정진 후보, 무소속 박성태 후보가 겨루었는데 박성태가 유효 투표의 55.7%인 1만 2518표를 득표해 각각 8만 61표[35.9%], 1,886표[8.4%]를 얻은 데 그친 김영식과 서정진을 누르고 당선했다.
4) 제6대 달성군 의회 의원 선거: 2명을 선출하는 달성군 가 선거구에서는 한나라당김기석, 한나라당조성제, 민주당도상석, 무소속 하용하가 후보자로 등록했고 하용하와 김기석이 각각 유효 투표의 34.2%, 30.0%를 득표함으로써 당선되었다. 역시 2명을 선출하는 달성군 나 선거구에서는 한나라당정수헌, 한나라당채명지, 무소속 김순호, 무소속 도기태가 출마해 정수헌과 채명지가 각각 유효 투표의 35.8%, 29.0%를 득표해 당선했다. 3명을 선출하는 달성군 다 선거구에는 한나라당의 송송열, 서정삼, 배사돌 3명과 민주당김민식, 민주 노동당이진환, 국민 참여당이대곤, 무소속 김길수가 후보로 등록했다. 개표 결과 송성열, 김길수, 배사돌이 각각 유효 투표의 29.0%, 20.1%, 16.7%를 득표해 당선되었다. 비례 대표로는 한나라당김옥순 후보가 선출되었다.
5) 대구광역시 교육감 및 대구광역시 교육 위원 선거: 이 선거에서는 대구광역시 교육감 및 교육 위원 선거도 동시에 실시되었다. 교육 위원 선거에서 달성군은 수성구와 함께 제5선거구로 편성되었다. 교육감 선거에는 전 가톨릭 대학교 사범 대학장 김선응, 한국 진로 진단 연구소 대표 박노열, 전 영남 대학교 총장 우동기(禹東琦), 전 이곡 중학교 교감 도기호, 경북 외국어 대학교 교수 김용락, 교육 평론가 정만진, 전 포산 중고등학교 교장 유영웅, 경북 대학교 교수 신평, 전 한국 외국어 대학 교수 윤종건 등 9명이 후보로 등록했다. 달성군 유효 투표의 28.5%를 득표한 우동기 후보가 교육감으로 당선되었다. 대구 제5선거구 교육 의원 선거에는 경북 대학교 교수 이상규, 대구 달성 교육청 교육장 윤충기, 대구시 교육 위원회 부위원장 백춘실 3명이 경합했고 이상규가 유효 투표 21만 8923표의 49.4%인 10만 8047표를 얻어 당선했다. 달성군에서는 50.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7. 제6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
1) 민선 6기 대구광역시장 선거: 대구광역시장 선거에는 새누리당권영진(權泳臻), 새정치 민주 연합김부겸(金富謙), 통합 진보당송영우, 정의당이원준, 무소속 이정숙 등 5명이 경합했다. 결과는 권영진 후보가 유효 투표 105만 2638표의 55.95%인 58만 1175표를 얻어 당선했다. 달성군에서는 권영진 후보가 유효 투표 7만 3713표의 58,56%인 4만 2465표를 얻었다.
2) 민선 6기 달성군수 선거: 달성군수 선거는 민선 5기 군수인 김문수 후보가 무투표 당선됨으로써 재선 군수가 되었다.
3) 제6대 대구광역시 의회 의원 선거: 달성군에서 선출하는 대구광역시 의회 의원 수는 지난 선거에서와 같이 2명이었다. 화원읍과 다사읍, 가창면, 하빈면으로 편성된 제1선거구에서는 새누리당조성제 후보와 무소속 박명환 후보가 출마해 조성제가 유효 투표의 58.96%인 2만 9889표를 획득해 당선되었다. 논공면과 옥포면, 현풍면, 유가면, 구지면으로 편성된 달성군 제2선거구에서는 새누리당최재훈 후보가 무투표 당선되었다.
4) 제7대 달성군 의회 의원 선거: 2명을 선출하는 달성군 가 선거구에서는 새누리당하중환, 새누리당하용하, 새정치 민주 연합도일용, 무소속 전제곤이 후보자로 등록했고 하중환과 하용하가 각각 유효 투표의 37.13%, 29.55%를 득표함으로써 당선되었다. 역시 2명을 선출하는 달성군 나 선거구에서는 새누리당구자학, 새누리당채명지, 무소속 도형수, 무소속 고희선이 출마해 구자학과 채명지가 각각 유효 투표의 43.22%, 26.39%를 득표해 당선되었다. 3명을 선출하는 달성군 다 선거구에는 새누리당김상영, 새누리당송용득, 새누리당김성택, 통합 진보당김대용, 무소속 신성발, 무소속 이대곤, 무소속 엄윤탁이 후보로 등록했다. 개표 결과 김상영, 송용득, 김성택이 각각 유효 투표의 32.47%, 11.82%, 19,18%를 득표해 당선되었다.
5) 대구광역시 교육감 선거: 교육감 선거에는 우동기, 정만진, 송인영이 후보로 등록했으며 유효 투표의 58.47%인 59만 5097표를 획득한 우동기 후보가 당선되었다. 달성군에서의 특표율은 57.89%였다.
[선거 관련 기관]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주요 선거 관련 기관으로는 달성군 선거 관리 위원회가 있다. 선거 관리 위원회는 「헌법」 제114조의 규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 기관으로서 선거와 국민 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과 정치 자금에 관한 사무를 처리한다. 2015년 말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선거인 수는 15만 979명이며 달성군 선거 관리 위원회는 9개 읍·면 55개 투표구를 관리한다. 관할 선거구는 국회 의원 선거구 1개[달성군 선거구], 광역 의원인 시 의원 선거구 2개[달성군 제1선거구: 화원읍·다사읍·가창면·하빈면, 달성군 제2선거구: 논공읍·옥포면·현풍면·유가면·구지면], 기초 의원인 구 의원 선거구 3개[가 선거구: 화원읍·가창면, 나 선거구: 다사읍·하빈면, 다 선거구: 논공읍·옥포면·현풍면·유가면·구지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