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242 |
---|---|
한자 | 具鴻 |
영어공식명칭 | Gu Hong |
이칭/별칭 | 구성두(具成斗),송은(松隱),문절(文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서변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구본욱 |
출생지 | 개성 - 북한 개성특별시 |
---|---|
거주|이주지 | 개성 - 북한 개성특별시 |
묘소|단소 | 구홍 묘소 - 북한 개성특별시 |
사당|배향지 | 표절사 -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로24길 22-37[동변동 234] |
성격 | 문관 |
성별 | 남성 |
본관 | 능성(綾城) |
대표 관직 | 문하좌시중 |
[정의]
조선 전기 대구 표절사에 배향된 문관.
[가계]
구홍(具鴻)[?~?]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호는 송은(松隱)이다. 할아버지는 전리판서 구영검(具榮儉)이며, 아버지는 소부윤을 지낸 구위(具褘)이다. 어머니는 경주박씨(慶州朴氏)이다.
[활동 사항]
구홍은 고려 우왕 때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역임하고 관직이 삼중대광(三重大匡)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에 이르렀다. 관직에 있을 때 충심으로 왕에게 간언하고 관료들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하여 애썼다. 학교를 세워 유학(儒學)을 진흥시킬 것을 주장하였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어은(漁隱) 이치(李致)·두문자(杜門子) 성사재(成思齊)·충재(忠齋) 최문한(崔文漢) 등과 교유하였다.
1392년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자 구홍은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 송산(松山)에 은거하였다. 이후 태조가 좌정승을 제수하며 세 차례나 불렀으나 응하지 않고 고려에 대한 절개를 지켰다. 두문동 72현 중의 한 사람이다.
[학문과 저술]
구홍의 저술로는 『송은선생실기(松隱先生實紀)』가 있다.
[묘소]
구홍의 묘소는 북한 개성특별시에 있다.
[상훈과 추모]
구홍은 태종(太宗)으로부터 문절(文節)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 표절사(表節祠)에 배향되었으며, 서변동에 재실인 모선당(慕先堂)이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