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7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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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寶聖禪院 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 - 腹藏遺物 |
영어공식명칭 | Daegu Boseong-seonwon Mokjoseokgayeoraesamjonjwasang Mit Bokjangyumul|The Wooden Seated Sakyamuni Buddha Triad and Excavated Relics from the Statue of Boseongseonwon Temple, Daegu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321[황금동 70]|달서구 송현로8안길 35[송현동 1952-1]|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의상봉길 1049[수월리 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병선 |
제작 시기/일시 | 1647년 - 대구 보성선원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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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발굴 시기/일시 | 2010년 - 대구 보성선원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 중 복장유물 발견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3년 4월 29일 - 대구 보성선원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 보물 제1801호로 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6월 29일 - 대구 보성선원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
현 소장처 | 보성선원 - 대구광역시 달서구 송현로8안길 35[송현동 1952-1] |
원소재지 | 견암사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 산1 |
출토|발견지 | 보성선원 - 대구광역시 달서구 송현로8안길 35[송현동 1952-1] |
복장 유물 소장처 | 국립대구박물관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321[황금동 70] |
성격 | 불상|복장유물 |
재질 | 목재 |
크기(높이) | 석가여래상 139.2㎝|문수보살상 136.5㎝|보현보살상 133.3㎝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선학원 보성선원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국립대구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불상 및 복장유물.
[개설]
대구 보성선원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大邱寶聖禪院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腹藏遺物)은 조선 후기인 1647년(인조 25)에 조성된 목조불상 석 점과 복장유물 열 건을 가리킨다. 2020년 현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송현동 1952-1에 있는 보성선원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복장유물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70에 있는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위탁 관리를 하고 있다.
대구 보성선원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은 조성 발원문에 따르면, 원래 경상남도 거창군 우두산 견암사(見巖寺)에 봉안되었던 불상이다. 한국전쟁 때 견암사가 폐사되면서 보성선원으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 불상에 금칠을 다시 하는 개금불사 과정에서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복장 안에 있던 복장유물이 다량 발견되어 삼존 불상과 함께 복장 후령통, 조성 발원문 등 조성 당시의 전모를 알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조성 발원문을 통하여 정확한 조성 시기, ‘거창 견암사’라는 봉안 사찰, 그리고 조성 주체, 제작자 등을 알 수 있게 되었다. 2013년에는 보물 제1801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형태]
대구 보성선원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 중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의 본존불은 석가여래이며 좌우에 문수보살상과 보현보살상이 있다. 불상 각각의 높이는 석가여래상 139.2㎝, 문수보살상 136.5㎝, 보현보살상 133.3㎝이다. 대구 보성선원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 중 삼존 불상은 상반신이 길고 어깨가 넓어 장대하면서도 안정된 신체 비례를 보이며 넓적하고 큰 방형 얼굴과 옅은 미소를 띤 자비로운 인상이 특징이다. 삼존 불상은 도상학적 차이에서 오는 손 모습이나 머리카락, 장식 표현을 제외하면 규격, 신체 비례, 옷주름 등은 서로 비슷하다.
본존불인 석가여래좌상은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세에 항마촉지인의 손 모습을 하였다. 넓적하게 각진 얼굴에 넓은 이마, 좌우가 긴 눈, 짧은 코, 가늘고 얇은 입과 짧은 턱을 표현하여 이목구비가 아래로 몰린 듯해 보인다. 전체적으로 근엄한 모습이지만 옅은 미소를 짓고 있다. 착의법은 변형 편단우견(偏袒右肩)[왼쪽 어깨에 옷을 걸치고 오른쪽 어깨는 드러내는 옷차림] 방식으로 대의를 걸치고 오른팔을 드러냈으며 밋밋한 가슴 아래에 연꽃 모양으로 주름 잡은 승각기(僧脚崎)[대의 안쪽에 입는 내의]를 표현하였는데 옷주름은 단순한 편이다.
좌우에 앉아 있는 보살상 역시 본존 불상과 신체 비례, 얼굴 표현 등은 비슷한데 머리에 봉황, 구름, 꽃, 화염보주 등이 장식된 크고 화려한 보관을 썼다. 정수리에는 상투 같은 높은 보계가 있으며 머리카락의 일부는 어깨 위에 드리워져 있다. 보살상들의 손은 위치만 서로 반대인데 양손을 모두 무릎 가까이에 두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모습이다. 착의법은 편삼 위에 대의를 걸친 변형 통견(通肩)[양어깨를 덮어 입는 옷차림] 방식이기에 본존 불상과 차별성은 있으나 옷주름 표현은 유사하다.
대구 보성선원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 중 복장유물은 원문(願文)을 비롯한 후령통 일괄[후령통, 오보병, 팔엽대홍련, 오방경, 오곡, 인삼, 황초폭자 등],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불조삼경(佛祖三經)』 등의 경책류, 다라니 등이 복장되었다. 발원문은 모든 중생이 함께 정법을 듣고 올바른 깨달음을 이루기를 발원한다는 목적을 밝히고 제작 시기, 시주자 명단, 증사(證師)·지전(持殿)·화원(畵員) 등 각기 소임을 맡은 승려를 기록하였다. 화원은 우두머리 조각승인 현욱(玄旭)을 비롯한 나흠(懶欽), 현감(玄鑑)이 참여하였다. 그리고 불상(佛像), 주불(主佛), 좌보처(左補處), 우보처(右補處), 면금(面金), 황금(黃金), 오금(烏金), 포(布), 공양(供養), 복장(腹藏) 등 시주 물목마다 시주한 사람의 이름이 따로 적혀 있어 시주자의 경제력에 따라 시주 내용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특징]
대구 보성선원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17세기를 대표하는 청허(靑虛)의 계보를 잇는 현욱이 으뜸 조각승으로 제작한 첫 작품이며, 대구 보성선원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통하여 청허 유파의 조각이 시기별로 어떻게 전승·발전되어 가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현욱 역시 17세기의 시대적인 특징인 대중적인 평담미와 종교성 속에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였으며, 대구 보성선원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그러한 경향이 잘 담겨 있는 불상으로 평가된다.
[의의와 평가]
각진 얼굴과 근엄하면서도 앳된 표정, 단순한 옷주름이 특징인 대구 보성선원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현재로서는 현욱이 주도하여 만든 유일한 작품으로 주목된다. 특히 강직한 조형성과 독창적인 얼굴 표정에서 현욱만의 특징이 확인되며, 17세기 경상도 지역 조각승 청허의 유파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대구 보성선원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은 원형 그대로 발견되어 복장 의례 연구에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