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0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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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新洞 |
영어공식명칭 | Daesin-dong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영권 |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에 속하는 법정동.
[개설]
대신동(大新洞)은 대구광역시 중구 법정동 57개 중 하나이다.
자연 마을로 금은방골목, 미싱골목, 미역말랭이[미역말랭이마당]가 있다. 금은방골목은 1960년대 서문시장 포목부가 활성화되면서 금은방이 많이 들어서 일대가 자연마을이 되었다. 미싱골목 역시 198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미역말랭이는 주로 포항 바닷가에서 수확한 미역을 말린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서문시장 남쪽으로 약 600여m 지점에 있었다고 한다.
[명칭 유래]
1920년대 초 서문 밖에 있었던 서문시장을 천왕당지 못을 메워 지금의 서문시장 자리로 옮기게 되자 큰장으로 불렸던 서문시장의 의미인 큰 대(大) 자와 새로 생겨난 마을이라는 의미의 새로울 신(新) 자를 빌려 ‘대신동’ 지명을 제정하였다.
[형성 및 변천]
본래 대구부 서상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전동과 후동 일부를 합쳐 신정(新町)이라 하였다.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1947년 ‘대신동(大新洞)’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49년 대구부에서 경상북도 대구시 대신동으로 변경되었다. 1953년 설치된 대구시 중부출장소·종로출장소가 1963년 대구시 중구로 승격되면서 대구시 중구 대신동이 되었다. 1975년 대신동 일부가 대구시 서구와 남구로 각각 편입되었다. 그리고 대신1동과 대신2동으로 행정동을 분할하였다. 행정구역 명칭 변경에 따라 1981년 대구직할시 중구 대신동이 되었다. 1993년 대신동 일부를 대구직할시 중구 시장북로와 동산동으로 편입시키고, 서성동 일부를 대신1동에 편입시켰다. 1995년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이 되었고, 1998년 대신1동과 대신2동을 합쳐 대신동으로 변경하였다. 대신동은 법정동명과 행정동명이 동일하다.
[자연환경]
북쪽에 달성토성, 동쪽에 동산, 남쪽에 낮은 구릉지가 있어 대신동 일대는 상대적으로 저지대였다. 특히 천왕당못은 지형적 특성상, 앞산에서 발원하는 달서천과 대구천으로 에워싸인 저지대에 발달한 못이며, 일제강점기 당시 무속 행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대신동 북동쪽은 달성토성과 경계를 이루는데, 달서천이 흘러가면서 성곽의 해자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현황]
대신동의 면적은 0.52㎢이며, 인구는 2021년 9월 30일 현재 총 2,786가구에 7,981명[남자 3,887명, 여자 4,094명, 외국인 제외]이다.
중구 달성동·남산4동·시장북로·동산동, 서구 비산동, 서구 내당동 등지와 경계를 이룬다. 북서쪽은 달성토성과 이웃한다. 서쪽은 달성로, 남쪽은 대구광역시의 동서 최대 간선도로인 달구벌대로와 지하철2호선[청라언덕역]이 지나고 있어 접근성이 좋다.
서문시장은 평양장, 강경장과 함께 전국 3대 장터에 속하였다. 대지 면적 2만 7062㎡[건물 총면적 6만 4902㎡]에 1지구·2지구·4지구·5지구·동산상가·건해산물상가 등 6개 지구로 구성된 서문시장은 2005년 12월 큰불이 나기도 하였다. 대화재 이후에도 몇 차례 화재가 일어나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였다. 2016년 6월에 개장한 서문시장 야시장은 많은 관광객이 찾는 대구의 주요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대신동의 교육기관으로는 사립학교인 계성중학교와 계성초등학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