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0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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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鳳洞 |
영어공식명칭 | Daebong-dong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영권 |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에 속하는 법정동.
[개설]
대봉동(大鳳洞)은 대구광역시 중구 법정동 57개 중 하나이다.
자연 마을로 두부촌, 육군관사 등이 있다. 두부촌은 대봉1동에 소규모 두부공장이 있었는데, 두부공장을 중심으로 일대에 마을이 형성되면서 자연스레 ‘두부촌’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 광복 후, 생계유지를 위해 시작했던 두부 제조·판매가 나중에 공장을 건립하여 규모가 커졌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 대봉교 일대 도로 신설과 토지의 고도화 이용에 따라 두부공장은 사라졌다. 육군관사 자연 마을은 대봉2동에 육균 관사가 들어서면서 일대가 자연스럽게 ‘육군관사’ 자연 마을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 장교들이 거주하였고, 광복 후에는 한국군 관사로 이용되었다. 현재 육균관사마을은 도시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되어 아파트가 신축될 예정이다.
[명칭 유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달성군 수성면의 대명동과 봉덕동이 대구부에 편입되면서 두 동의 일부를 합하여 대명(大明)과 봉덕(鳳德)의 앞 글자를 따 대봉정(大鳳町)으로 제정하였다. 1947년 일제 잔재 청산 일환으로 대봉정을 대봉동으로 고쳤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달성군 수성면의 대명동과 봉덕동이 대구부에 편입되면서 경상북도 대구부 대봉정으로 개설되었다. 1947년 일제 잔재 청산 일환으로 대봉정을 대봉동으로 고쳤다. 1949년 대구시로 편입되었다. 1951년 설치된 남부출장소가 1963년 남구로 승격되자 경상북도 대구시 남구로 편입되었다. 1980년 경상북도 대구시 남구 대봉동 일부를 남구 이천동으로 신설하고, 대봉1동과 대봉2동은 대구시 중구로 편입하였다. 행정구역 명칭 변경에 따라 1981년 대구직할시 중구 대봉동, 1995년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이 되었다. 대봉동은 법정동이고 행정동은 대봉1동, 대봉2동이다.
[자연환경]
대봉동 일대는 남쪽의 수도산으로부터 이어져 오는 약한 산줄기의 소규모 구릉지였다. 특히 대구천의 침식을 받아 형성된 하식애인 건들바위 일대가 소규모 구릉지의 모습을 보인다. 건들바위 일대의 작은 구릉지를 제외하면 대체로 신천과 대구천의 범람으로 형성된 범람지로 판단되며, 곳곳에 저습지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건들바위 아래로 흐르던 대구천 일대를 매립하고 복개하는 과정에서 미나리 밭으로 변하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흔적을 찾을 길 없다.
[현황]
대봉동의 면적은 0.84㎢이며, 인구는 2021년 9월 30일 현재 총 4,147가구에 총 9,169명[남자 4,930명, 여자 4,819명, 외국인 제외]이다.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2가·삼덕동3가·봉산동·남산동, 남구 대명동·이천동, 수성구 수성동1가와 경계를 이룬다. 북쪽은 대구 동서 최대 간선도로인 달구벌도로와 지하철 2호선[경대병원역]이 지나며, 동쪽은 신천이 남에서 북으로 흘러간다. 남쪽으로 명덕로와 지하철 3호선[대봉교역, 건들바위역], 서쪽으로 이천로가 지나고 있어 접근성이 좋다. ‘신천 수변 둔치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다.
주요 문화재로는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2호로 지정된 건들바위가 있다. 건들바위는 한때 서거정의 「대구십영(大丘十詠)」 중 제2영인 ‘입암조어(笠巖釣魚)’에 나오는 삿갓바위로 알려져 왔으나, 오류로 밝혀졌다. 건들바위 역시 ‘입암(立巖)’으로 전해오기는 하나 삿갓바위의 의미를 가지는 ‘입암(笠巖)’과는 한자어가 다른 선바위의 의미를 가진다. 조선시대 지명이 대구부 하수서면 동변입암리(東邊立巖里), 서변입암리(西邊立巖里)로 기록되어 있다. 대구천을 중심으로 동편과 서편의 마을 명칭을 정하였던 것이다.
대봉동의 북동부에 있는 방천시장과 인근의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은 전국적 유명세를 누리는 곳이다. 대봉동 북쪽에는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와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