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02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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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十詠 砧山晩照 |
영어공식명칭 | Chimsanmanjo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전영권 |
[정의]
15세기 대구의 아름다운 풍광을 칠언절구 한시 십 수로 지은 서거정의 「대구십영」 중 제10영.
[개설]
대구가 고향인 조선 전기 학자 서거정이 대구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난 10곳[금호강, 건들바위, 제일중, 경상감영, 성당못, 도동 측백수림, 동화사, 팔달교, 팔공산, 침산공원]을 칠언절구 한시로 읊었다.
10영 「침산만조(砧山晩照)[침산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 한시 원문은 다음과 같다.
“수자서류산진두(水自西流山盡頭), 침만창취속청추(砧巒蒼翠屬淸秋), 만풍하처용성급(晩風何處舂聲急), 일임사양도객추(一任斜陽搗客愁).”
한시 해석은 다음과 같다.
“물은 서쪽으로 흘러 산머리에 이르고. 침산은 비취빛의 맑은 가을빛을 띠고 있네. 저녁 바람에 급히 나는 방아소리 그 어디인가. 석양의 나그네 근심도 찧도록 맡겨 볼까나.”
[해설]
대구십영 중 마지막 한시다. 침산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느끼는 나그네의 감흥을 적나라하게 펼쳐 보이는 매우 서정적인 시다. 시상의 소재는 금호강의 물, 침산, 가을, 방아소리, 석양, 나그네의 시름 등으로서, 다소 외롭게 느껴질 수 있는 그러한 시어다. 침산은 생긴 모습이 다듬잇돌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침산은 신천이 금호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있어 풍수에서는 수구막이 산이라 판단하여 중요하게 여긴다. 침산은 작은 구릉지임에도 불구하고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유명세를 가지는 탓에 이름도 많다. 봉우리가 다섯 개여서 ‘오봉산’, 1906년 대구읍성을 허물게 한 장본인인 경북관찰사서리 겸 대구군수 박중양 소유의 땅이라 해서 ‘박작대기산’ 등으로도 불렸다. 지금도 일대에 사는 어르신들은 ‘박작대기산’으로 부른다. 조선시대 여귀[제사를 받지 못하는 귀신이나 나쁜 돌림병을 옮기는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여제단이 있어 소중한 장소로 인식되어 왔다. 주변 고층의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침산에서 내려다보는 대구의 전경과 특히 침산만조는 아직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