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7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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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楡川燒酒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음식물/음식물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유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영진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유천면에서 빚었던 증류 곡주.
[개설]
고려 시대부터 교통의 요충지였던 유천역과 유천원을 둘러싼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유호리와 내호리,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금산리 일대에서 양조된 증류주가 유천소주이다. 혀로 조금만 음미해도 화근내가 나는 미묘한 향기가 일품이고, 도수가 매우 높다. 많이 마셔도 뒤탈이 없는 순수 쌀 곡주로 고려 시대 때부터 이름난 민속주이다.
[연원 및 변천]
유천소주 는 유천역 혹은 유천원 마을에서 빚었던 술이라 하여 생긴 이름이다. 고려 시대 때부터 빚었던 술이라 전하는데 그 기록은 없다.
8·15 해방 전후까지 술을 제조하는 전통 기법이 이어져 왔다. 청도군 청도읍 유천리 주변 30리[약 11.79㎞] 이내의 100여 호가 소주 한말 내외를 생산하여 전국 각지로 거래하였으며, 한때 상권이 형성되어 소주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당시 공산품 생산이 전무했기 때문에 쌀로 만든 소주는 주민들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 되었다. 각 가정에서 밀주(密酒)로 증류·양조하던 유천소주는 해방 이후에 당국의 단속이 심해지자 생산이 위축되었다. 다만 허가 받은 유천소주 양조장이 설립되어 종업원 10여명으로 하루 30말 정도를 생산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66년 ‘전국 양곡 양조 금지령’에 의해 유천소주는 지금의 ‘금복주’ 회사에 합병되어 쌀로 빚은 증류 소주의 명맥은 끊어지고 말았다.
[만드는 법]
유천소주 제조 방법은 유천원 주막에서 옛날부터 전해져 왔는데 전통 기법은 불분명하다. 다만 일제 강점기 시대의 유천소주 양조법은 알려져 있다.
유천 소주 양조법은 우선 누룩을 고두밥에 고루 섞어 항아리에 넣은 뒤 18℃ 정도의 온실에서 약 1주일 동안 발효시킨다. 가마솥에 물을 붓고 발효시킨 술밥을 넣어 골고루 섞은 다음 솥 가운데에 항아리를 놓는다. 이 항아리 위에 움푹한 솥뚜껑을 덮고, 솥뚜껑에 물을 붓고 일정한 화력으로 계속 불을 지핀다. 이 때 솥 속에서 증발하는 증기가 솥뚜껑 안에 맺혀서 꼭지를 타고 항아리 속에 모아진 것이 유천소주이다.
보통 40∼50도의 주정 도수로 독특한 화근내가 난다. 숙취 후 깨어난 다음에도 부작용이 없는 순수한 증류 곡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