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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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州韓氏 |
분야 | 성씨·인물/ 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래업 |
입향 시기/일시 | 1613년 - 청주 한씨 한계오 청도 입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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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청주 한씨 본관 - 충청북도 청주시 |
입향지 | 청주 한씨 입향지 -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사전리 |
세거|집성지 | 청주 한씨 세거지 -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사전리 |
성씨 시조 | 한란 |
입향 시조 | 한계오 |
[정의]
한란(韓蘭)을 시조로 하고 한계오(韓繼五)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연원]
한씨(韓氏)는 기자 조선에 연원을 두고 있다. 위만에게 밀려 마한으로 온 준왕(準王)[기자(箕子)의 40대손]의 8세손인 원왕(元王)은 3형제를 두었는데, 둘째 아들인 우량(友諒)이 신라의 상당(上黨)으로 옮겨 한씨라 칭하였다고 전한다.
우량의 32세손이자 청주 한씨(淸州韓氏) 시조인 한란(韓蘭)은 고려 태조(太祖)가 후백제의 견훤(甄萱)을 정벌하기 위해 청주를 지날 때 군량미를 조달한 공으로 개국벽상공신에 책봉되고 삼중대광태위(三重大匡太尉)에 올랐다. 한란이 청주 방정리에 세거하였기 때문에, 후손들은 청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입향 경위]
벼슬에서 물러나 경기도 광주에 머물던 한계오(韓繼五)가 평생을 조용히 수양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1613년 청도군 금천면 사전리에 정착한 뒤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황]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청도군 내에 117가구 318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1996년 발행된 『마을 지명 유래지』에는 금천면 사전리에 12가구의 청주 한씨가 거주한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