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875 |
---|---|
한자 | 南平文氏 |
분야 | 성씨·인물/ 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강래업 |
본관 | 남평 문씨 본관 -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면 |
---|---|
입향지 | 남평 문씨 입향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구미리 |
세거|집성지 | 남평 문씨 집성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구미리|월곡리 |
성씨 시조 | 문다성(文多省) |
입향 시조 | 문영세(文永世) |
[정의]
문다성(文多省)을 시조로 하고 문영세(文永世)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연원]
문다성(文多省)은 신라 제20대 왕인 자비 마립간 때의 인물로, 남평현[현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면] 출신이었다. 신라 지증왕과 진흥왕, 진지왕 대에 걸쳐 고위 관직을 지내고 남평 백(南平伯)에 봉해져 남평 문씨(南平文氏)의 시조가 되었다.
남평 문씨는 고려 숙종 때 좌승선(左承宣)을 지낸 문익(文翼)을 중시조로 삼고 있는데, 중국에서 목화씨를 들여온 12세 문익점(文益漸)이 문중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입향 경위]
청도의 남평 문씨(南平文氏)는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문영세(文永世)가 풍산에서 청도군 청도읍 구미리로 이주하여 정착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영세의 증손자 대에 이르러 월곡리 두구리 마을과 거연리 박월 마을 등으로 이거하였는데, 특히 월곡리 두구리 마을은 청도의 유일한 남평 문씨 집성촌이다.
[현황]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청도군 내 남평 문씨는 196가구 506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농공 단지 조성과 이농 현상으로 인하여 2012년 현재 그 수가 많이 감소하였다. 청도읍 구미리에 5∼6가구, 청도읍 월곡리 두구리에 20여 가구, 거연리 박월 마을에 5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관련 유적]
청도읍 월곡리 두구리 마을에 화산재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