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8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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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陽洪氏 |
분야 | 성씨·인물/ 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래업 |
본관 | 남양 홍씨 본관 - 경기도 수원시|화성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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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남양 홍씨 입향지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방음리 |
세거|집성지 | 남양 홍씨 집성지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방음리 |
성씨 시조 | 홍은열 |
입향 시조 | 홍시원 |
[정의]
홍은열(洪殷悅)을 시조로 하고 홍시원(洪時源)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연원]
원 시조 홍천하(洪天河)는 중국의 강남 휘주 사람으로 태학사였다. 640년(고구려 영류왕 23) 당 태종이 사신 8명을 파견할 때 그중의 한 사람으로 평양에 들어온 뒤, 은수포의 당관으로 옮겨 고구려 문화 진흥에 많은 공을 세웠다. 왕이 홍천하가 사는 곳을 당성(唐城)이라 하고 관적으로 삼게 하였다. 그 후 세계가 실전되었고, 고려 시대 당성이 남양으로 개칭되어 본관을 남양으로 하여 고려 개국공신 홍은열(洪殷悅)을 우리나라 남양 홍씨(南陽洪氏)의 시조로 삼았다. 17개 파로 나뉘었는데, 그 중 남양군파·문정공파·판중추공파·익산군파·예사공파·중랑공파 등 6개 파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입향 경위]
홍시원이 18세기 중엽 경기도 파주 적성에서 밀양시 산내면 시례(時禮)를 거처 말음촌(末音村)[현 청도군 운문면 방음리]에 입향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5년 운문댐 수몰 전 40여 가구가 방음리에 거주하고 있었으나 운문면 대천리, 대구, 부산 등지로 이주하고 현재 몇몇 가구가 남아 있다.
[현황]
2000년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도군 전역에 109가구 283명이 거주하고 있다.
[관련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