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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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元井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윤제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마을들이 곰티재를 향하여 가는 국도 20호선 좌우로 길게 늘어져 있으며 청도천 건너에 있는 큰 마을이다.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원당동 일부와 정촌동을 병합하여 원정동이라 하였다. 정촌과 원당, 원대밭, 광대정, 통안, 흑석, 모강, 능곡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정촌(井村)은 샘이 있는 마을이라 해서 마을 이름을 정촌이라고 했다고 한다. 마을 가운데에 가뭄과 장마에 변함없이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어서 주변 마을 사람들이 이 샘을 이용하였다. 원당(元堂)은 정촌보다는 높은 위치에 자리한 마을이며, 옛날부터 사람이 거주하였으며 이 마을에서 오래되었다고 해서 원당이라고 한다.
광대정 마을은 원당보다 아랫마을이나 지금은 구분이 별로 되지 않는 동네이다. 넓은 들 가운데 정자가 있어 넓고 큰 정자라 해서 광대정이라고 하며 이곳에서 여러 가지 행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통안은 윗통안과 아랫통안으로 불리고 있는데 윗통안은 통처럼 생긴 마을이라고 해서 통안이라고 했고, 아랫통안은 마을 앞을 지나가는 산골 물을 막기 위해서 돌로 만든 둑을 쌓았는데, 둑이 높아 통같이 생겨서 통안이라고 했다고 한다.
흑석은 선사 시대 유물인 고인돌이 늘어져 있기 때문에 흑석이다. 지금은 경지 정리와 도로 확장, 거주지 확대 등 생활에 장애가 된다고 해서 없애버린 것이 많지만 아직도 9기의 고인들이 흩어져 있다. 능곡은 1600년대에 옮겨진 남쪽 봉수대가 있는 골짜기이다. 모강은 원정천과 청도천이 마주치는 곳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지금은 바로 강과는 인접하지 않으나 모퉁이에 강과 마주했기 때문에 모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 내종도면이었다가 다시 용산면으로 바뀌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원당동 일부와 정촌동을 병합하여 원정동이라 하고 대성면에 편입하였다. 1940년 대성면이 청도면으로 개명되면서 청도면 원정동이 되었으며, 1947년 청도면이 청도읍으로 승격되면서 청도읍 원정리가 되었다. 1988년 원정동에서 원정리로 개명하였다.
원정리에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은 고인돌이 있는 것으로 알 수 있으며 윗통안에는 언제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절터가 남아 있고 고려 때의 무덤이 있으며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토기를 도굴해 갔다고 한다. 아랫통안 끝부분 모퉁이 돌에 계성(桂城)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으나 무엇 때문에 새겨놓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장연 노씨의 중시조 노정승의 묘가 있는 모강은 노정승들이라고 한다.
[자연 환경]
용각산 지맥이 흘러 내려와 석을산을 이루고 남진하여 유천에 이르는 중간에 형성된 마을이다. 골짜기를 따라 길쭉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마을은 동서로 트여 있고 남북은 산으로 막혀 있다. 원정천이 운산리에서 발원하여 부야리와 원정리를 거쳐 청도천에 이른다.
[현황]
2012년 6월 현재 면적은 5.99㎡이며, 총 321가구에 1,029명[남자 494명, 여자 53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청도읍 부야리, 서쪽은 청도읍 송읍리·고수리, 남쪽은 청도읍 구미리·월곡리·매전면 송원리, 북쪽은 청도읍 무등리·안인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행정리는 원정 1리부터 원정 3리까지 있다. 자연 마을로 정촌과 원당, 원정, 원대밭, 광대정, 통안, 흑석, 모강, 능곡이 있다.
경작지는 원정천을 가운데로 두고 형성되었으나 최근에는 공장이 많이 들어서 경작지를 많이 잠식하고 있다. 석을산 자락 비탈에 일군 밭은 대부분 복숭아와 감을 재배하고 있다. 국도 20호선이 원정리 중앙을 가로 질러 경주와 연결되고 있다. 송원리에서 원정리로 이어지는 도로가 개통 직전에 있다. 마을 중앙에 능금 협동조합 경매장이 있어 농산물을 직거래할 수 있다. 교육 기관으로는 중앙 초등학교가 있다.
원정리 남쪽 산 정상에는 제3 공화국 때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하기 위하여 원정리 뒷산에 명진원을 만들어 격리 수용하였고, 목욕탕과 이발소 등 편의 시설을 갖추었으나 지금은 당시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거나 후손들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서 비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는 청도군 쓰레기 하치장으로 수용하고 있다.
원정리에 있는 문화재로는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89호로 지정된 이운룡 장군 영정이 있다. 또한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99칸 집으로 유명한 박이수 가옥에 구한말 전라 좌수영 수군절도사를 지내고 흥선 대원군의 책사였던 박유붕의 휘장이 있다. 6·25 전쟁 때 부호들이 피해를 입었지만, 이 집은 지역민들의 보호 속에 피해를 보지 않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집으로 피난했다고 한다. 옛 기록에는 원정리 마을 어귀에 커다란 석불상이 있었다고 하나, 언제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