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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허비. 가정목은양선생유허비(稼亭牧隱兩先生遺墟碑)는 이곡(李穀)[1298~1351]과 이색(李穡)[1328~1396]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이곡의 본관은 한산(韓山), 호는 가정으로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이자 이색의 아버지이다. 신흥사대부로 1332년 원나라의 과거에 급제하였고, 예문관 검열·밀직부사·정당 문학 등의 벼슬을 지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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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각리리에 분포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적. 각리리 유적(角里里遺蹟)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총 48기의 유구가 분포하고 있다. 한국철도시설공단 영남본부의 포항~삼척 철도 노반 건설공사 7공구 사업으로 인해 기호문화재연구원이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발굴 조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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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 출신 학자 이현일의 개항기 시문집 책판. 1909년 중간된 이현일(李玄逸)[1627~1704]의 『갈암선생문집(葛庵先生文集)』 책판이다. 문집 572장, 별집 133장, 부록 74장으로 전체 781장에서 2장이 결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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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신도비. 갈암이선생신도비(葛庵李先生神道碑)는 이현일(李玄逸)[1627~1704]의 사적(事蹟)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이현일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익승(翼昇), 호는 갈암이다. 조선 후기 영남학파의 거두로 이황(李滉)-김성일(金誠一)-장흥효(張興孝)로 이어지는 퇴계학통을 계승하였다. 저서로는 『갈암집(葛庵集)』과 편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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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부에서 작성된 조선 후기 계안 자료. 17세기 후반 경상북도 영해부 인량리 출신의 사족 인사들이 상부상조를 통한 결속력 강화를 위해 결성한 계(契) 조직의 규정과 좌목을 엮어 놓은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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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편찬한 경상도 영덕현과 영해도호부의 읍지. 1832년 편찬한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 수록된 영덕현(盈德縣)과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의 읍지이다. 『경상도읍지』는 모두 20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영덕읍지(盈德邑誌)」는 권8-3, 「영해부읍지(寧海府邑誌)」는 권10-3에 각각 수록되어 있다. 일본 덴리대학 이마나시문고에는 1786년 편찬한 영덕현과 영해부 읍지를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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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에서 발생한 조선 후기 향전 관련 자료. 1840년(헌종 6) 영해 지역에서 신·구향(新舊鄕) 간의 향전(鄕戰)이 발생하였다. 당시 구향 중 한 사람이 구향의 입장에서 사건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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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지역의 초기 국가 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 말기까지 역사. 영덕 지역에서 역사 기록을 통해 확인되는 진한(辰韓) 소국(小國)의 존재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고고학적 연구 성과를 통해 영덕읍과 지품면에 이르는 오십천(五十川) 상류 유역, 송천(松川)과 영해평야가 만나는 병곡면 사천리 일대에는 초기 국가 단계의 정치체제가 등장하였으리라 짐작된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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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 지역의 918년부터 1392년까지의 역사. 고려 시대 영덕 지역은 크게 영덕군(盈德郡)과 예주(禮州) 지역으로 구분된다. 영덕군은 지금의 영덕읍·강구면·남정면·달산면·지품면 일대, 예주는 지금의 영해면·창수면·병곡면·축산면 일대에 각각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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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에 있는 지은 지 오래된 가옥. 고택은 대개 우리의 오랜 전통적 생활양식과 의식구조, 기술, 장인에 의해 지은 목조기와집을 뜻한다. 즉, 근대 이전의 고유한 평면 및 구조 형태로 지은 우리네 살림집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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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정자. 관어대(觀魚臺)는 영덕군 영해면에 있는 상대산(上臺山)[183m] 정상에 있다. 상대산은 성황당산(城隍堂山)이라고도 불린다. 상대산 정상에 올라서면 서쪽은 바위 절벽이 있고, 동쪽으로 동해가 펼쳐져 있다. 북쪽은 백사장을 끼고 울진군 후포면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경상북도 포항 호미곶을 바라볼 수 있다. 현재의 관어대는 2015년 건립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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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괴시리 고분군(槐市里古墳群)은 영덕 지역의 대표적인 고총(高塚) 고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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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거주한 영양남씨 12인의 조선 후기 시문집. 『괴장세고(槐庄世稿)』는 괴시리에 거주한 남붕익 등 영양남씨 12인의 유고를 모아 놓은 것이다. 후손 남곤수(南崑壽)[1789~1847]가 편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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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해 출신의 학자. 권경(權璟)[1604~1666]은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출신의 학자이다. 문집으로 『대은집(臺隱集)』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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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권대규(權大規)[1676~1747]는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출신의 문신이다. 1715년(숙종 41) 문과에 급제한 후 삼례도찰방(參禮道察訪)·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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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권대림(權大臨)[1659~1723]은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출신의 문신으로 1687년(숙종 13)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자인현감(慈仁縣監)·만경현감(萬頃縣監)·보령현감(保寧縣監)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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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권득여(權得輿)[1636~1717]는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출신의 학자로 1682년(숙종 8)에 진사에 입격하였으나,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향리에서 학문 연구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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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권만두(權萬斗)[1674~1753]는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출신의 문신으로 1717년(숙종 43) 문과에 등과(登科)하였으며, 장수현감(長水縣監) 등을 지냈다. 1728년(영조 4) 무신란(戊申亂)이 일어났을 때 군사를 일으켜 정희량(鄭希亮) 부대를 토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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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권상길(權尙吉)[1610~1674]은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출신의 학자이다. 1635년(인조 13) 생원시에 입격했으며, 이듬해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화의(和議)를 반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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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권상임(權尙任)[1622~1700]은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출신의 문신으로 현종 시기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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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권상정(權尙精)[1644~1725]은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출신의 학자로 인산서원(仁山書院) 창건을 주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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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권응주(權應周)[1539~1610]는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출신으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곽재우(郭再祐)[1552~1617]의 진중(陣中)으로 달려가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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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해에 정착한 충신. 권책(權策)[1444~?]은 경상도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출신의 충신이다. 권책의 두 형인 권저(權箸)와 권서(權署)가 단종 복위에 가담하여 화를 당하자, 권책은 13살의 어린 나이로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로 유배를 갔다. 이후 영덕 지역 안동권씨(安東權氏) 부정공파(副正公派)의 입향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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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김덕오(金德五)[1680~1748]는 『주역』과 수학에 조예가 깊었다. 1723년(경종 3) 영해 출신의 동년배인 박용상(朴龍相)·백시승(白始升)과 함께 진사시에 입격한 후 영좌삼경(嶺左三庚)이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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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군 출신의 학자. 김도장(金道章)[1628~1721]은 일찍이 학문과 행의가 높았으며, 어머니를 효로써 봉양하고 동생과 자녀들의 교육에 정성을 다하여 고을에 명성이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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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무신. 김선겸(金善兼)[?~?]은 1737년(영조 13)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755년 나주에서 일어난 벽서사건(壁書事件)을 무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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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김성하(金成夏)[?~?]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기성(器成), 호는 서암(棲庵)이다. 부친은 교위 김대원(金大元)이며, 형은 김기하(金器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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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수안김씨 가문의 영덕 입향조. 김수(金綏)[?~?]는 문과에 급제한 관인(官人)으로 수안김씨(遂安金氏) 가문의 영덕 입향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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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김수문(金秀文)[1432~1511]은 1472년(성종 3) 문과에 급제하였다.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으며, 향리에서는 효행으로 명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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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김시양(金時讓)[1581~1643]의 자는 자중(子中), 호는 하담(荷潭),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본관은 안동이다. 초명은 김시언(金時言)이다. 증조부는 김언묵(金彦默)이며 조부는 김석(金錫)이다. 아버지는 비안현감을 지낸 김인갑(金仁甲)이며, 어머니는 홍이곤(洪以坤)의 딸 남양홍씨(南陽洪氏)로 1581년(선조 14) 충청북도 괴산군에서 출생하였다. 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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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김요(金饒)[?~?]는 홍건적(紅巾賊)의 침입 때 공민왕(恭愍王)[재위 1351~1374]을 호종(扈從)한 공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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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김응청(金應淸)[1466~1546]은 진사시에 입격한 후 1518년 현량과(賢良科)로 선발되어 관직에 올랐다. 이듬해 기묘사화가 일어나 진산(珍山)에 유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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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무신. 김익중(金益重)[1678~1740]은 1721년(경종 1) 무과에 급제했으며, 양무원종공신(揚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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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김정구(金鼎九)[1680~1724]는 1723년(경종 3) 문과에 급제했으며, 남학훈도(南學訓導)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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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야성김씨의 시조. 김취린(金就磷)[?~?]은 거란족을 토벌한 공으로 야성군(野城君)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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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김택(金澤)[?~?]은 진사시에 입격하였으며, 영해향교의 대유(大儒)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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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김하구(金夏九)[1676~1762]는 1719년(숙종 45)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해남현감(海南縣監)·부호군(副護軍)·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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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남경룡(南景龍)[1725~1795]은 1783년(정조 7)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예조정랑(禮曹正郎)·함경도도사(咸鏡道都事)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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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경택(南景宅)[1725~1799]은 1765년(영조 41) 진사시에 장원으로 입격하였으며, 유고로 「진사공일고(進士公逸稿)」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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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경훈(南慶薰)[1572~1612]은 진사시에 입격했으며, 임진왜란 때 곽재우(郭再祐)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광산서원(光山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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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고(南皐)[1807~1879]는 류치명(柳致明)의 문인으로 1840년(헌종 6)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문집으로 『시암집(時庵集)』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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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공수(南公壽)[1793~1875]는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괴시리(槐市里)[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치도(穉道), 호는 영은(瀛隱)이다. 아버지는 남일운(南一運)[남경원(南景元)], 어머니는 박평(朴玶)의 딸 무안박씨(務安朴氏), 할아버지는 남식만(南式萬), 증조할아버지는 생원(生員)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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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남구명(南九明)[1661~1719]은 1693년(숙종 19)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제주판관(濟州判官)·순천부사(順天府使)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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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국주(南國柱)[1690~1759]는 경사(經史)에 조예가 깊었으며, 문집으로 『봉주집(鳳洲集)』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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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남국한(南國翰)[1667~1730]은 1699년(숙종 25)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자인현감(慈仁縣監)을 지냈다. 유고로 「와유당일고(臥遊堂逸稿)」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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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남기만(南基萬)[1730~1796]은 1774년(영조 50)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지내며 정조에게 시폐를 구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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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기형(南紀衡)[1700~1756]은 1740년(영조 16) 생원시에 입격했으며, 유고로 「생원공일고(生員公逸稿)」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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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길(南佶)[1595~1654]은 진사시에 입격하였으며, 광산서원(光山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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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남노명(南老明)[1642~1721]은 1684년(숙종 10)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거창현감(居昌縣監) 재임 중 선정을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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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대만(南大萬)[1721~1797]은 1756년(영조 32) 생원시에 입격했으며, 유고로 「인와유집(忍窩遺集)」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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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명흠(南命欽)[1676~1740]은 1723년(경종 3) 진사시에 입격하였으며, 유고로 「진사공일고(進士公逸稿)」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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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학자. 남몽양(南夢陽)[1771~1850]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응길(應吉), 호는 야은(野隱)이다. 남필대(南必大)의 7대손으로, 아버지는 증(贈) 좌승지(左承旨) 남경렬(南景烈),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조순도(趙純道)의 딸 증(贈) 숙부인(淑夫人) 한양조씨(漢陽趙氏)인데, 숙부 남경희(南景熙)와 안상침(安尙沉)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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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남붕익(南鵬翼)[1641~1687]은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괴시리(槐市里)[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자거(子擧), 호는 입천(卄川)·회수(晦叟)이다. 아버지는 사재감참봉(司宰監參奉)을 지낸 남두원(南斗遠), 어머니는 주부(主簿)를 지낸 오경직(吳敬直)의 딸 낙안오씨(樂安吳氏), 조부는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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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남산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2기. 남산리 고인돌군에서는 2기의 고인돌이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우리나라 선사시대 무덤으로 지석묘(支石墓)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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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학자. 남상소(南尙召)[1634~1709]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주보(周輔), 호는 광계(光溪)이다. 아버지는 진사(進士) 남길(南佶), 어머니는 첨정(僉正)을 지낸 신효남(申孝南)의 딸 영해신씨(寧海申氏), 조부는 진사 남경훈(南慶薰), 증조부는 군기시판관(軍器寺判官)을 지낸 남의록(南義祿)이며, 부인은 장용견(張龍見)의 딸 인동장씨(仁同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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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상운(南相運)[1759~1814]은 1792년(정조 16) 생원시에 입격하였으며, 유고로 「호와유고(濠窩遺稿)」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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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상주(南尙周)[1626~1688]는 영덕 출신의 처사형(處士型) 학자로서, 유고로 「한계유고(閒溪遺稿)」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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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영덕군청에 있는 조선 후기부터 한말까지 세워진 비석군. 남석리 비석군(南石里碑石群)은 조선시대 및 대한제국기 영덕 현령을 비롯하여 경상좌도 암행어사, 영덕군수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비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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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남수(南須)[1395~1477]는 영해의 영양남씨 입향조로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용담현령(龍潭縣令)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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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의병. 남승정(南承鄭)[?~?]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郭再祐)[1552~1627]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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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의병. 남의록(南義祿)[1551~1620]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며,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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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제명(南濟明)[1668~1751]은 영덕 지역의 처사형 학자로 『수약당집(守約堂集)』을 비롯해 여러 저술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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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준명(南峻明)[1659~1718]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덕서(德瑞), 호는 석천(石川)이다. 아버지는 남상규(南尙圭), 어머니는 오이건(吳以建)의 딸 함양오씨(咸陽吳氏), 조부는 남숙(南俶), 증조부는 진사(進士) 남경훈(南慶薰), 부인은 류균해(柳均海)의 딸 전주류씨(全州柳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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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준형(南峻衡)[1703~1778]은 1753년(영조 29) 생원시에 입격하였으며, 유고로 「괴정유고(槐亭遺稿)」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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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진만(南震萬)[1697~1773]은 진사시에 입격했으며, 유고로 『심안당유고(審安堂遺稿)』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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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필대(南必大)[1608~1666]는 학행으로 천거되어 태릉참봉(泰陵參奉)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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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필명(南弼明)[1660~1732]은 학문과 효성으로 명성이 있었으며, 출계(出系)하여 영양남씨 종통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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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남하명(南夏明)[1658~1715]은 1693년(숙종 19)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삼례도찰방(參禮道察訪)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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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휘만(南彙萬)[1725~1777]은 1777년(정조 1) 생원시에 입격하였으며, 유고로 「생원공일고(生員公逸稿)」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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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에 세워진, 사방을 넓게 볼 수 있는 다락 구조의 건축물. 누정(樓亭)은 누각과 정자를 합친 명칭으로, 정루(亭樓)라고도 한다. 일부 문헌에서 누(樓)·정(亭)을 비롯하여 당(堂)·대(臺)·각(閣)·헌(軒) 등을 포함하여 서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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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 편찬된 경상도 영해도호부의 읍지. 『단양부지(丹陽府誌)』는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의 읍지로서 1813년경에 편찬되었다. 생진(生進) 편에 1840년에 진사시에 합격한 남고(南皐)가 수록된 것으로 보아 일부 내용이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단양부지』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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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과 영해 지역 유교문화의 전개 양상과 관련된 이야기. 조선시대 영덕현(盈德縣)과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는 고려 이래로 동해안을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궁마지향(弓馬之鄕)’으로 일컬을 만큼 무향(武鄕)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래서 여말선초에는 영덕·영해 지역에서 무과 급제자가 많이 배출되었고, 영덕·영해 지역에 정착한 주요 가문의 입향조(入鄕祖)나 현조(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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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안동권씨 부정공파 대은종택 소장 조선 후기 전적. 대은종택소장 전적(臺隱宗宅所藏典籍)은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영해 안동권씨 부정공파 대은종택에서 소장하고 있는 전적(典籍)을 총칭하는 말이다. 대은종택에는 고서 122종, 고문서 4점 등이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되어 보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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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덕곡리 일원에 분포한 삼국시대와 조선시대의 유적. 덕곡리 유적은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에 있는 영덕여자중·고등학교 뒤쪽의 서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상에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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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9년 경상북도 영덕군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 덕원소도호부(德原小都護府)는 1259년(고종 46) 예주(禮州)의 읍격(邑格)을 높여 설치한 지방행정구역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을 중심으로 창수면·병곡면·축산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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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류자영(柳自榮)[?~?]은 1624년(인조 2) 천거를 받아 군자감직장(軍資監直長)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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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문계창[?~1522]은 문과에 급제하여 거창현감(居昌縣監)·창원부사(昌原府使)·풍기군수(豐基郡守)·제주목사(濟州牧使) 등의 관직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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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출신의 고려 말 선승 나옹 혜근의 삶에 관한 이야기.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물 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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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박감(朴瑊)[1256~1338]은 고려 후기 관인으로 벼슬이 복야(僕射)[고려시대에 상서성에 속한 정이품 벼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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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효자. 박경보(朴景輔)[1485~1570]는 효행으로 이름이 높아 명종 연간 통정대부(通政大夫)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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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학자. 박기봉(朴岐鳳)[1643~1712]은 이현일(李玄逸)의 문인이며, 유고로 『해은유고(海隱遺稿)』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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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박담(朴潭)[1655~1694]은 이휘일(李徽逸)[1619~1672]·이현일(李玄逸)[1627~1704]의 문인(門人)이며, 문집으로 『우계집(迂溪集)』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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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박돈복(朴敦復)[1584~1647]은 문과 급제 후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김해부사(金海府使) 등의 관직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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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박선(朴璿)[1596~1669]은 영덕 출신의 학자로 문집으로 『도와집(陶窩集)』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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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박세통(朴世通)[1187~1263]은 1217년(고종 4) 거란유종(契丹遺種)의 침입을 방어하였으며, 관직은 병부상서(兵部尙書)에 올랐다. 용왕의 음덕으로 3대가 음덕을 받았다는 설화가 고향 영해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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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덕 출신의 장군 및 재상. 박송비(朴松庇)[?~1278]는 경상도 예주(禮州)[영해(寧海)] 출신으로 1258년(고종 45) 집정 최의(崔竩)를 제거하는 데 공을 세웠다. 위사공신(衛社功臣)에 녹훈되었으며, 관직은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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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박숙(朴潚)[1665~1748]은 이현일(李玄逸)·이재(李栽) 부자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문집으로 『농와집(農窩集)』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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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박신지(朴身之)[1629~1705]는 1675년(숙종 1) 문과 급제 후 예조정랑(禮曹正郎)·울산도호부사(蔚山都護府使)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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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박용상(朴龍相)[1680~1739]은 1721년(경종 1)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문집으로 『기헌집(畸軒集)』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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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무신. 박유(朴瑜)[1573~1618]는 1594년(선조 27) 무과에 급제했으며, 장기현감(長鬐縣監)·거제현령(巨濟縣令)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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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박응천(朴應天)[1561~1603]은 지역의 문풍과 교화에 힘쓴 향유(鄕儒)로서 운계서원(雲溪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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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무신. 박의장(朴毅長)[1555~1615]은 무신으로서 임진왜란 때 여러 공을 세웠으며, 관직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慶尙左道兵馬節度使)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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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박정걸(朴廷杰)[1683~1746]은 이현일(李玄逸)·이재(李栽)의 문인이며, 문집으로 『남포집(南浦集)』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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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무신. 박종문(朴宗文)[1428~1467]은 무과 급제 후 제주통판(濟州通判), 함길도도사(咸吉道都事) 등의 관직을 지냈으며, 이시애(李施愛)의 난 때 순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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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안박씨 영덕 입향조. 박지몽(朴之蒙)[1445~?]은 무안박씨(務安朴氏) 영덕 입향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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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박태주(朴泰胄)[1666~1731]는 1699년(숙종 25) 생원시에 입격한 향유(鄕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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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박홍무(朴洪茂)[1227~1285]는 고려 후기에 시중(侍中)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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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무신. 박홍장(朴弘長)[1558~1598]은 1580년(선조 13) 무과에 급제했으며, 대구부사(大丘府使)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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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덕에 정착한 분성배씨 입향조. 배담(裵湛)[1386~1462]은 영덕 지역의 분성배씨(盆城裵氏) 입향조로서 무과 급제 후 영덕현령(盈德縣令)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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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덕 지역에 정착한 문신. 백견(白堅)[?~?]은 고려 충숙왕(忠肅王)[재위 1294~1339] 대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대흥백씨(大興白氏) 영덕 입향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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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백돈(白暾)[1647~1717]은 이휘일(李徽逸)·이현일(李玄逸)의 문인(門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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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백동현(白東賢)[1597~1668]은 이명준(李命俊)의 문인으로 『예회기람(禮會己覽)』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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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백득인(白得仁)[1570~1627]은 장수현감(長水縣監)을 지냈으며 선정을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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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무신. 백몽표(白夢彪)[1566~1627]는 임진왜란 때 영해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무과에 급제하였고, 관직은 도총부경력(都摠府經歷)에 이르렀다. 익사원종공신(翼社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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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백문보(白文寶)[1303~1374]는 고려 충숙왕(忠肅王) 연간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밀직제학(密直提學)·정당문학(政堂文學)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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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백민수(白民秀)[1558~1621]는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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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효자. 백사복(白思復)[1745~1795]의 본관은 대흥(大興), 자는 성초(性初)이다. 아버지는 백광욱(白光頊), 어머니는 이유당(李維堂)의 딸 진성이씨(眞城李氏), 조부는 백시웅(白時雄), 증조부는 백세경(白世經)이며, 부인은 조석형(趙錫衡)의 딸 증(贈) 영인(令人) 한양조씨(漢陽趙氏)이다.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재종숙 윤화(白潤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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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백사윤(白思潤)[1697~1766]은 1741년(영조 17)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삼례찰방(參禮察訪)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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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백세흥(白世興)[1630~1699]은 1675년(숙종 1) 문과에 급제했으며, 강진현감(康津縣監)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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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백수렴(白受廉)[?~1622]은 가학(家學)을 통해 학문을 익혔지만 수령과 함께 학제를 논의할 만큼 학식이 뛰어났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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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백시승(白始升)[1680~1758]은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문장·서법·그림에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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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백원발(白源發)[1597~1671]은 유고로 「양몽재유고(養蒙齋逸稿)」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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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해 출신의 문신. 백원진(白源進)[?~?]은 문과 급제 후 김천도찰방(金泉道察訪)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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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의병. 백인경(白仁鏡)[?~?]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백현룡(白見龍)[1543~1622]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錄勳)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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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백인국(白仁國)[1530~1613]은 학행으로 천거되어 진잠(鎭岑)·진보(眞寶)·평해(平海)·연일(延日)·김해(金海)의 교수(敎授)를 지냈다. 임진왜란 때 영해(寧海)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단산서원(丹山書院)을 짓고 후진 양성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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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무신. 백중립(白中立)[1563~1655]은 1594년(선조 27)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정유재란 때 화왕산성(火旺山城)[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산322]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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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백진(白瑨)[?~?]은 홍건적(紅巾賊)의 침입 때 적군을 물리쳤으며, 관직은 사헌부판사(司憲府判事)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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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군 출신의 학자. 백진흥(白震興)[1632~1701]은 1660년(현종 1) 진사시에 입격했으며, 유고로 『구암유고(寠庵逸稿)』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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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해 출신의 무신. 백충언(白忠彦)[1538~1609]은 임진왜란 당시 국왕을 호종한 공으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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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백표[1605~1684]는 백현룡(白見龍)의 문인으로 1646년(인조 24)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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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백해운(白海運)[1804~1879]은 1831년(순조 31) 문과에 급제했으며, 관직은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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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백현룡(白見龍)[1543~1622]은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 생원시에 입격했으며 문집으로 『성헌일집(惺軒逸集)』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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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벌영리에 분포한 삼국시대와 조선시대 유적. 벌영리 유적은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벌영리에 자리한다. 국도 제7호선 ‘영덕휴게소’를 지나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다 보면 좌측에 ‘영해벌영주유소’가 나타난다. 이 주유소 북쪽의 북동으로 뻗어 내린 능선 정상부와 사면부에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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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신도비. 1677년(숙종 3) 건립된 조선 후기 무신 박의장(朴毅長)[1555~1615]의 신도비이다. 박의장의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사강(士剛)이다. 김언기(金彦機)의 문인으로 경사(經史)에도 밝았다. 1577년(선조 10) 무과에 급제해 주부(主簿)가 되었고, 1592년 임진왜란 때 경주판관으로 있으면서 경주성의 탈환에 큰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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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봉산리 양설령(兩雪嶺)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터. 봉산리 성터는 삼국시대 건립된 산성으로 달로산성(達老山城)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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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영덕 지역에 설치된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시설. 봉수(烽燧)는 불과 연기를 이용해 외적의 침입과 같은 긴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설치한 전통 시대 통신 시설이다. 낮에는 연기를 올리므로 ‘봉(烽)’, 밤에는 횃불을 통해 통신하므로 ‘수(燧)’라고 한다. 조선 전기 영덕군을 구성했던 영덕현(盈德縣)과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에는 모두 네 곳에 봉수대가 운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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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영덕 지역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구역. 향(鄕)·소(所)·부곡(部曲)·장(莊)·처(處) 등 고려 시대 부곡제(部曲制) 영역은 지방제도하에서 주(州)·부(府)·군(郡)·현(縣) 등의 하부구조였다. 이 가운데 향·부곡은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 지역으로 고대부터 존재하였지만, 수공업 생산 등을 담당했던 소를 비롯한 장·처 등은 고려 시대 이후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파악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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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해 출신의 문신 권만두가 사례의 중요한 부분만을 뽑아 편찬한 책. 『사례집요(四禮輯要)』는 권만두(權萬斗)[1674~1753]가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여러 학자들의 변설(辨說)을 붙여 관혼상제의 상례(常例)와 변례(變例)를 모아 편찬한 책이다. 6권 2책으로 국립중앙도서관,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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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지역의 석기, 청동기, 초기 철기 시대를 포괄하는 역사. 선사 시대(先史時代)는 문자(文字)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기 이전의 시대를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구석기 시대(舊石器時代), 신석기 시대(新石器 時代), 청동기 시대(靑銅器時代), 초기 철기 시대(鐵器時代) 역사가 포함된다. 문자 기록이 없는 만큼 고고학적 연구 방법을 통해 생활 및 시대상에 접근하며,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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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선정비. 선정비(善政碑)는 해당 고을을 통치한 지방관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지방민들이 세우는 것으로 영해면 행정복지센터 비석군에는 영해부사 10기, 영해군수 2기, 영해면장 2기, 미상 1기 등 총 15기의 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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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속곡리에 있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적. 속곡리 유적은 현재 지품면 속곡리에 있는 ‘속곡저수지’ 수면 아래에 있었다. 원지형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 오십천으로 유입되는 신안천에 의해 형성된 하안단구면의 말단부에 해당되었으며, 서쪽의 심밭골로 이어지는 비교적 완만한 지형이었다고 한다. 주변은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이어지는 높이 500~600m 내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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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의병. 신경제(申經濟)[1555~1614]는 정유재란 때 의병을 일으켜 화왕산성(火旺山城)을 방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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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신규년(申虬年)[1544~1592]의 본관은 평산(平山)[영해(寧海)], 자는 덕수(德叟), 호는 풍림(楓林)이다. 아버지는 선략장군(宣略將軍) 신응룡(申應龍), 어머니는 허충량(許忠良)의 딸 김해허씨(金海許氏), 조부는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신종회(申從澮), 증조부는 수의부위(修義副尉) 신명령(申命齡)이며, 부인은 통정대부(通政大夫)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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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신길휘(申吉暉)[1604~1663]는 진사시에 입격하였으며, 문집으로 『유헌집(幽軒集)』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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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신대원(申大元)[1777~1831]은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시강원필선(侍講院弼善)을 지냈다. 1830년(순조 30) 사간원정언으로 있으면서 노론 벽파(僻派) 인사를 두둔한 신의학(愼宜學)을 탄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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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신득청(申得淸)[1332~1392]은 공민왕 때 과거에 합격한 문신으로 「역대전리가(歷代轉理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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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신망규(申望奎)[1641~1701]는 영덕 출신의 처사(處士)로 「송와일고(松窩逸稿)」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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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신미년에 일어난 영해동학란에 대해 기록한 일기. 1871년(고종 8) 3월 10일 이필제(李弼濟)의 봉기로 일어난 영해동학란(寧海東學亂)에 관해 향촌 양반의 입장에서 기록한 일기로, 1책 25쪽의 필사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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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무신. 신영남(申英男)[?~?]은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이괄(李适)[1587~1624]의 난 때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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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문신. 신옥(申沃)[?~?]은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1467~1555]·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문인(門人)으로 진사시에 입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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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신용희(申用羲)[1315~1382]는 1333년(충숙왕 복위 2) 과거에 급제했으며, 정당문학(政堂文學)[고려시대 첨의부의 종2품 관직]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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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신의제(申義濟)[?~?]의 본관은 평산(平山)[영해(寧海)], 자는 시보(時普), 호는 삼우정(三友亭)이다. 신득청(申得淸)의 7대손으로, 생부는 증(贈) 장예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 신봉상(申鳳祥), 어머니는 충순위(忠順衛) 장세양(張世讓)의 딸 순천장씨(順天張氏)이다. 백부인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신인상(申麟祥)과 백모인 참봉(參奉)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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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신이겸(申履謙)[1606~1661]은 윤선도(尹善道)의 문인으로 1633년(인조 11)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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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신이경(申履慶)[1609~1681]은 이명준(李命俊)의 문하로 1646년(인조 24)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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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학자. 신재형(申在衡)[1649~1697]의 본관은 평산(平山)[영해(寧海)], 자는 백흠(伯欽), 호는 쌍청당(雙淸堂)이다. 아버지는 신성구(申聖龜), 어머니는 이구(李榘)의 딸 영천이씨(永川李氏), 조부는 진사(進士) 신길휘(申吉暉), 증조부는 장악원정(掌樂院正)을 지낸 신활(申活), 부인은 남유건(南有鍵)의 딸 영양남씨(英陽南氏)와 류균해(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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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문신. 신종부(申從溥)[1503~1575]는 1540년(중종 35)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한성판관(漢城判官)·거제현령(巨濟縣令)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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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신지립(申智立)[1587~1678]은 병자호란 후 절의를 지키고자 은둔하였으며, 유고로 『삼익당유고(三益堂遺稿)』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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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신평리에 있는 초기 철기시대 유적. 병곡면 신평리 마을 남쪽에는 영해면에서 신평리를 거쳐 서쪽의 사천리로 통하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는데, 신평리에서 조금 가다 보면 국도 제7호선 아래로 굴다리가 나타난다. 이 부근 도로의 남북쪽에서 신평리 유적이 확인되었다. 신평리 유적은 발굴 조사 후 학술적인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 위하여 조사된 상태 그대로 성토하여 보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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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신현(申賢)[1298~1377]은 1315년(충숙왕 2) 과거에 급제했으며, 원(元)나라에 가서 여러 명유(名儒)들과 교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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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신호(申灝)[1588~1650]는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진사시에 입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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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효자. 신홍례(申弘禮)[1761~1833]는 효성으로 명성이 높았으며 여러 군직을 역임하였다. 수직(壽職)으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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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무신. 신홍제(申弘濟)[1534~?]는 정유재란 때 의병을 일으켜 화왕산성(火旺山城)을 방어하였으며, 무과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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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신활(申活)[1576~1643]은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이다. 영해에 단산서원(丹山書院)을 건립하였으며, 문집으로 『죽로집(竹老集)』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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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신희(申禧)[1426~1526]는 영덕에 세거하는 평산신씨[영해신씨] 입향조이다. 생원시에 입격했으며, 세덕사(世德祠)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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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오촌리에 살았던 이유원의 조선 후기 문집. 『안릉세전(安陵世典)』은 조선 정조 때 이유원(李猷遠)[1695~1773]이 재령이씨(載寧李氏) 문중의 역대 문집에서 예설(禮說)만을 뽑아 공총자(孔叢子)를 본떠서 엮은 문집이다. 7권 3책의 목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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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940년까지 영덕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 야성군(野城郡)은 본래 야시홀군(也尸忽郡)이었는데, 757년에 경덕왕이 야성군으로 개칭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는 야성군이 고구려의 옛 영토였으나, 신라가 빼앗았다는 기록이 있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5세기 말~6세기 초 신라의 영토로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영현(領縣)으로는 진안현(眞安縣)과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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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 경상도 영덕현에서 편찬된 읍지. 신치달(申致達)의 본관은 평산(平山)[영해(寧海)]이며, 자는 사극(士剋)이다. 김하구(金夏九)의 문인으로 문행(文行)이 있었다고 하나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향촌에서 학문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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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부터 757년까지 영덕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야시홀군(也尸忽郡)은 본래 고구려의 영토였다는 기록이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 보인다. 5세기 후엽에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으며, 삼국 통일 이후 경덕왕이 야시홀군을 야성군(野城郡)으로 개칭하였다. 영현(領縣)으로는 조람현(助欖縣)·청기현(靑己縣)이 있는데, 모두 고구려 때의 지명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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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양성리에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유물산포지. 양성리 유적(洋城里遺蹟)은 한국도로공사가 시행하는 고속국도 제65호선 포항-영덕고속도로 건설공사로 인해 2018~2020년 정밀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양성리 유물산포지 Ⅲ[이하 산포지 Ⅲ]’에서는 청동기시대에서 근현대까지의 유구가, ‘양성리 유물산포지 Ⅱ[이하 산포지 Ⅱ]’에서는 고려시대의 산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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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0년 편찬된 영덕현과 영해도호부의 읍지. 1760년(영조 36)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수록되어 있다. 총 55책에 이르는 『여지도서』는 총 313개 지지[읍지 295개, 영지(營誌) 17개, 진지(鎭誌) 1개]로 구성된 전국 읍지이다. 『여지도서』는 현재 한국교회사연구소에 소장되어 있으며, 1973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영인하였고, 2009년 전주대학교에서 번역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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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 지역의 선사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우리나라 구석기 시대는 약 7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후기 구석기에 이르러서는 사실상 한반도 전역에 인류가 생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덕에서도 오십천(五十川) 유역의 지품면 오천리, 송천(松川) 유역의 창수면 삼계리 일대를 중심으로 구석기 유적이 확인된다. 이 가운데 오천리 유적은 중기 구석기 혹은 그 이전으로 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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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영덕 지역에서 운영되었던 역과 원.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을 구성했던 조선 시대 영덕현(盈德縣)과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에는 관리들을 위한 교통 및 숙박 시설로서 역(驛)과 원(院)이 설치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영덕현과 영해도호부에 4개의 역과 17개의 원이 있었지만, 조선 후기에는 사회·경제적 변화 속에 원은 2개로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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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대소산 정상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영덕 대소산 봉수대(盈德大所山烽燧臺)는 조선 시대 정치·군사적인 목적에서 봉(烽)[연기, 낮]과 수(燧)[횃불, 밤]로 급한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설치된 통신 시설이다. 1982년 8월 4일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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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해군 영해읍에 있는 조선 시대 관아 건물. 영덕 성내리 책방관사(盈德城內里冊房官舍)는 조선 시대 영해부 관아(官衙) 부속 건물 중 하나이다. 관아란 관원들이 정무를 보던 건물로 관서(官署)·공해(公廨)라고도 한다. 영해부 관아에는 동헌(東軒), 객사(客舍), 작청(作廳), 장청(將廳), 군기청(軍器聽), 향청(鄕廳), 대동고(大同庫), 호적고(戶籍庫), 관청고(官廳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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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영덕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 영덕군(盈德郡)은 통일 신라 시대 제정된 야성군(野城郡)이었는데, 고려 조에 영덕군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고려 후기 때 현령(縣令)을 파견하면서 영덕현(盈德縣)이 되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강구면·남정면·달산면·지품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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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남석리에 있는 고려시대·조선시대 읍성터. 영덕읍성(盈德邑城)은 고려시대·조선시대 읍성(邑城)이었다. 조선시대 이후 석성으로 존재하였으나, 1910년 일제의 읍성 철거령에 의해 대부분 고을의 읍성이 철거될 때 영덕읍성도 함께 철거되면서,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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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부터 1895년까지 영덕 지역에 두어졌던 지방 행정 구역. 영덕현(盈德縣)은 고려 초 설치된 영덕군(盈德郡)의 소속이었다가 고려 후기 영덕현이 되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강구면·남정면·달산면·지품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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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영리에 있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매장 유적. 영리 고분군은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영리에 있는 영동교회 북서쪽의 남동으로 뻗어 내린 능선상에 자리한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민묘가 집단적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오랜 기간 영덕 지역 사람들의 묘역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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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영리에 있는 유물산포지와 유적. 영리 유적에서는 고인돌을 비롯해 청동기시대 생활유적과 추정 제의유적, 조선시대 분묘유적과 생활유적 등 총 21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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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에 있는 영해 영양남씨 난고종가 소장 조선 후기 전적 및 고문서 일체. 난고(蘭皐) 남경훈(南慶薰)의 아들 안분당(安分堂) 남길(南佶)이 1624년(인조 2)에 지은 난고종가 정침(正寢)에 소장되어 있는 전적 및 고문서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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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신안주씨 종택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전·후기 고문서. 영해 신안주씨 종택의 고문서는 모두 3종 7점이며, 문서의 종류는 분재기 5점, 교지 1점, 예조입안 1점[5건 연접]으로 구성되어 있다. 16세기 초에서 18세기 초까지의 영해 지역 재지사족의 재산상속과 조상봉사 의식의 변화와 가문의 입후 사례를 살펴보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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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3년부터 1895년까지 경상북도 영덕군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는 1413년(태종 13) 조선 초 지방행정구역 개편의 일환으로 영해부(寧海府)를 개정한 것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을 중심으로 창수면·병곡면·축산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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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0~1413년 경상북도 영덕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영해부(寧海府)는 1310년(충선왕 복위 2) 예주목(禮州牧)을 개편한 지방행정구역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을 중심으로 창수면·병곡면·축산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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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리에 있는 고려시대·조선시대 읍성 터. 영해읍성은 조선시대 영해도호부의 읍성(邑城)이었다. 조선시대 이후 석성으로 존재하였으나, 1910년 일제의 읍성 철거령에 의해 대부분 고을의 읍성이 철거될 때 영해읍성도 함께 철거되면서 터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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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경상북도 영덕군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 예주(禮州)는 고려 초 설치된 지방행정구역이다. 중간에 덕원소도호부(德原小都護府)로 승격되었지만, 1310년(충선왕 2) 읍격 조정이 이루어지면서 영해부(寧海府)로 개칭되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을 중심으로 창수면·병곡면·축산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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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에 거주하였던 영해신씨 인사들의 실기와 사적을 엮어 간행한 조선 후기 문집. 『예주세록(禮州世錄)』은 1855년 신현(申賢)[1298~1377], 신용희(申用羲), 신연(申演)[1534~1595] 등 34인의 영해신씨 인사들의 실기와 사적을 엮어서 만든 문집이다. 책판이 한국국학진흥원에 보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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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에 설치되었던 조선 전기 수군만호진. 조선시대에는 관방요해처(關防要害處) 중에 대형의 전함이 정박하기 쉽고 태풍이나 폭풍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는 지역에 수군만호진(水軍萬戶鎭)을 설치하여 왜적의 침입에 만반의 대비를 하였다. 대개 수군만호진의 설치는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새로이 설치된 것이 아니고 고려시대에 설치되었던 것을 재정비하여 이용한 것이다. 영덕현에는 이러한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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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우곡리 일원에 있는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복합 유적. 우곡리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 거석을 비롯하여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의 각종 유구가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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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부터 757년까지 영덕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 우시군(于尸郡)은 본래 고구려의 영토였다는 기록이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 보인다. 5세기 후엽에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으며, 삼국 통일 이후 경덕왕이 우시군을 유린군(有鄰郡)으로 개칭하였다. 영현으로는 아혜현(阿兮縣)이 있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을 중심으로 창수면·병곡면·축산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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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해도호부에 세거한 대흥백씨 가문 인사의 시문을 모아 엮은 유고문집. 『원고세고(元皐世稿)』는 조선 시대 영해도호부 원구리에 세거한 대흥백씨 가문 7인의 작품을 엮은 것이다. 4권 2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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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940년까지 영덕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 유린군(有隣郡)은 본래 우시군(于尸郡)이었는데, 757년 경덕왕이 유린군으로 개칭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는 우시군이 고구려의 옛 영토였으나, 신라가 빼앗았다는 기록이 있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5세기 말~6세기 초에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영현으로는 해아현(海阿縣)이 있다. 지금의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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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해 지역에 부임한 문신. 윤긍(尹兢)[1432~1493]은 처향인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의 교수(敎授)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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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시인. 윤선도(尹善道)[1587~1671]의 본관은 해남(海南),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해옹(海翁)이다. 생부는 예빈시 부정(禮賓寺副正) 윤유심(尹唯深)이며, 양부는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백부 윤유기(尹唯幾)이다. 부인은 남원윤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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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이곡(李穀)[1298~1351]은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밀직부사(密直副使)·정당문학(政堂文學) 등을 지냈으며, 문집으로 『가정집(稼亭集)』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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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으로 유배 온 문신. 이명준(李命俊)[1572~1630]의 본관은 전의(全義)로 자는 창기(昌期), 호는 잠와(潛窩) 또는 진사재(進思齋)이다. 증조부는 이공달(李公達)[1464~1519]이고, 조부는 경상우도병마절도사(慶尙右道兵馬節度使)를 지낸 이문성(李文誠)[1503~1575]이다. 아버지는 함경북도병마절도사(咸鏡北道兵馬節度使)를 지낸 이제신(李濟臣)[15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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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이상일(李尙逸)[1611~1678]은 1633년(인조 11) 진사시에 입격했으며, 장릉참봉(長陵參奉)에 천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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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고려 후기 문신. 이색(李穡)[1328~1396]은 영덕 출신의 고려 말 충신이다. 공민왕 연간 신진사대부를 양성하였다. 성리학 수용에 앞장섰으며, 왕조 교체기 고려 왕조에 절의(節義)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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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진성이씨 가문의 영덕 입향조. 이선도(李善道)[1544~?]는 진성이씨(眞城李氏) 영덕 입향조로서, 영덕 지역에 퇴계학파(退溪學派)가 확산하는 데 일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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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이숭일(李嵩逸)[1631~1698]은 천거로 출사하여 의령현감(宜寧縣監) 등을 지냈으며, 문집으로 『항재집(恒齋集)』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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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이시명(李時明)[1590~1674]은 장흥효(張興孝)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1612년(광해 4)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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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덕 지역 재령이씨 입향조. 이애(李璦)[1480~1561]는 1515년(중종 10) 무과에 급제했으며, 울진현령(蔚珍縣令) 등을 지냈다. 경상북도 영덕 지역 재령이씨(載寧李氏) 입향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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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이원직(李元直)[1597~1672]은 17세기 무렵 경상도 영해도호부 일대에서 정치·사회 활동을 전개한 재야 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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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학자. 이유원(李猷遠)[1695~1773]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굉보(宏甫), 호는 냉천(冷泉)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휘일(李徽逸)이고, 할아버지는 이의(李檥)이며, 아버지는 이지확(李之𤌍)이다. 이의는 원래 이현일(李玄逸)의 아들인데, 이휘일의 후사(後嗣)가 되었다. 어머니는 안동권씨 권수원(權壽元)의 딸이다. 부인은 여강이씨 이덕정(李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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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이재(李栽)[1657~1730]는 퇴계학파의 학통을 계승한 학자로 문집 『밀암집(密菴集)』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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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천이씨 가문의 영덕 입향조. 이종근(李宗謹)[?~?]은 단종(端宗)[재위 1452~1455]이 폐위되자 관직에서 물러나 영덕으로 이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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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이주원(李周遠)[1714~1796]은 1754년(영조 30) 생원시에 입격했으며, 문집으로 『면운재집(眠雲齋集)』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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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이태환(李台煥)[1697~1744]은 1733년(영조 9) 생원시에 입격하였으며, 안동에서 훈장(訓長)과 서원 원장(院長)을 맡는 등 강학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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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이함(李涵)[1554~1632]은 1609년(광해군 1) 문과에 급제했으며, 의령현감(宜寧縣監)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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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이해(李楷)[1618~1661]는 1657년(효종 8) 문과에 급제했으며, 봉상시봉사(奉常寺奉事)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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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문신. 이현일(李玄逸)[1627~1704]은 숙종 연간 퇴계학파를 이끌었으며, 정치적으로는 남인(南人)의 산림(山林)으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당쟁의 여파 속에 갑술환국 이후 명의죄인(名義罪人)으로 낙인찍히며 정치적 고초를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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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학자. 이화춘(李華春)[1572~1655]의 본관은 영천(永川), 초명은 종인(宗仁), 자는 덕부(悳夫)·회원(晦元), 호는 천재(川齋), 시호는 충절(忠節)이다. 증조부는 부사용(副司勇) 이지형(李枝亨), 조부는 생원(生員) 이학(李鶴), 아버지는 공조 정랑(工曹正郎) 이여우(李如瑀), 어머니는 유원지(兪遠之)의 딸 기계유씨(杞溪俞氏)이며, 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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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이휘일(李徽逸)[1619~1672]은 장흥효(張興孝)의 문인으로 동생 이현일(李玄逸)과 함께 퇴계학파의 학통을 계승하였다. 문집으로 『존재집(存齋集)』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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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이희익(李希榏)[1622~1710]은 1675년(숙종 1) 영양현(英陽縣)이 독립할 때, 이를 반대하는 상소의 소수(疏首)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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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영덕 출신 영양남씨 가문 인사의 유고가 수록된 문집. 『익양연방집(益陽聯芳集)』은 영덕 지역에 거주하였던 영양남씨 24인이 남긴 작품을 엮어 1907년 간행한 시문집이다. 5권 3책의 목판본으로 남태진(南泰鎭)이 편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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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산서원 관련 자료. 『인산록(仁山錄)』은 1696년(숙종 22) 현재의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창건되어 1737년(영조 13) 모지동(茅池i同)으로 이건(移建)되었다가 1741년(영조 17) 훼철된 인산서원에 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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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1598년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비롯해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일본과의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3일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일본은 정명가도(征明假道)[명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길을 빌림]라는 명분으로 조선을 침략함으로써, 1598년(선조 31)까지 7년간 임진왜란이 조선에서 치러졌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을 이루는 조선 시대 영해부(寧海府)와 영덕현(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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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전광옥(田光玉)[1694~1761]은 1747년(영조 23)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유곡도 찰방(幽谷道察訪)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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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무신. 정담(鄭湛)[1548~1592]은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웅치전투(熊峙戰鬪)에서 순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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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문신. 정자영(鄭自英)[?~1474]은 1434년(세종 16)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공조참판(工曹參判)에 이르렀다. 경학(經學)에 정통하고, 사서(史書)도 널리 섭렵하여 40여년간 사유(師儒)로 칭송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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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정종구(鄭宗龜)[1761~1837]는 1795년(정조 19) 응제시(應製詩)를 지어 차상(次上)을 한 영덕 출신의 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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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조덕린(趙德鄰)[1658~1737]은 이현일(李玄逸)의 문인으로 1691년(숙종 17) 문과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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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조덕순(趙德純)[1652~1693]은 1690년(숙종 16) 문과에 급제했으며,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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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부터 757년까지 영덕군 달산면과 지품면 및 청송군 진보면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 조람현(助攬縣)은 본래 고구려의 영토였다는 기록이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 보인다. 5세기 후엽에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으며, 삼국 통일 이후 경덕왕이 진안현(眞安縣)으로 개칭하였다. 조람현은 야시홀군(也尸忽郡)의 영현으로 모두 고구려 때의 지명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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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조선 개창부터 1876년 개항 이전까지 경상북도 영덕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영덕·영해 지역은 해안에 자리하였으므로 해산물과 제염(製鹽)이 성행하여 영남 북부 내륙지방의 어염물(魚鹽物) 공급처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해로(海路)를 통한 함경도, 강원도 지역의 조세 곡물을 운반하는 경유지로 그 경제적인 효과도 컸다. 반면 일찍부터 왜구의 출몰이 잦았기에 동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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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무신. 주건(朱楗)[1556~1637]은 경상북도 영덕군[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출신의 무신이다. 임진왜란 때 치러진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수문장(守門將)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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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무신. 주량(朱樑)[1535~1623]은 조선 전기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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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주식(朱植)[1545~?]의 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경립(景立)이고, 호는 어대(魚臺)이다. 증조부는 장사랑(將仕郎) 주숙경(朱淑慶), 조부는 어모장군(禦侮將軍) 주소종(朱紹宗), 부친은 참봉(參奉)을 지낸 주춘령(朱春齡), 어머니는 김세원(金世元)의 딸 수안김씨(遂安金氏)이며, 부인은 박언룡(朴彦龍)의 딸 함양박씨(咸陽朴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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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중화리에 있는 삼국시대 무덤. 중화리 고분군(中禾里古墳群)은 삼국시대 축조된 돌무지나무덧널무덤[積石木槨墓]이다. 돌무지나무덧널무덤은 4세기 말~6세기 전반까지 신라의 중심지인 경주분지와 주변의 일부 지역만 분포하는 신라의 독특한 무덤 형식으로 경주 외 지역에서는 발견 사례가 드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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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940년까지 영덕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 진안현(眞安縣)은 본래 조람현(助攬縣)이었는데, 757년에 경덕왕이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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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에 정착한 학자. 차응주(車應周)[1524~1585]는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문인(門人)이며, 유고로 『대봉일고(大峯逸稿)』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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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에 설치되었던 조선 전기 수군만호진. 조선에서는 관방요해처(官房要害處) 중에 대형 전함이 정박하기 쉽고, 태풍이나 폭풍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는 지역에 수군만호진(水軍萬戶鎭)을 설치하여 왜적의 침입에 만반의 대비를 하였다. 영해부는 이러한 여건을 갖춘 축산포(丑山浦)에 수군만호진을 설치하고 대규모의 수군을 주둔시켜 해안으로 침입하는 왜적을 막아내는 중요한 전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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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권대림의 시와 산문을 모아 간행한 시문집. 『칠우정문집(七友亭文集)』은 권대림(權大臨)[1659~1723]의 시문집으로 4권 2책의 목판본이다. 1894년 7대손 권진모가 편집, 간행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 한국국학진흥원 등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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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정맥을 계승한 경상북도 영덕군의 학자 이현일의 이야기. 이현일(李玄逸)[1627~1704]은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인량리(仁良里)[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나랏골 본가에서 태어났다. 이현일의 본관은 재령이씨(載寧李氏)로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1590~1674]의 7남 3녀 중 3남이다. 재령이씨 영해파(寧海派)는 이현일의 고조부인 이애(李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