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포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488
한자 烏蒲營
영어공식명칭 Opo-Y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병곡리 산6-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재지 오포영 -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병곡리 산6-1 지도보기
성격 수군진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에 설치되었던 조선 전기 수군만호진.

[개설]

조선시대에는 관방요해처(關防要害處) 중에 대형의 전함이 정박하기 쉽고 태풍이나 폭풍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는 지역에 수군만호진(水軍萬戶鎭)을 설치하여 왜적의 침입에 만반의 대비를 하였다. 대개 수군만호진의 설치는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새로이 설치된 것이 아니고 고려시대에 설치되었던 것을 재정비하여 이용한 것이다. 영덕현에는 이러한 여건을 갖춘 강구의 오포에 수군만호진을 설치하여, 대규모의 수군을 주둔시켜 해안으로 침입하는 왜적을 막아내는 중요한 전초기지로 삼았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전통시대 영덕·영해 지역은 지리적 조건에 의해 외적, 특히 왜구의 침입을 경계하는 중요한 관방요충지로 인식이 되고 있었다. 이에 대형의 전함이 정박하기 쉽고 태풍 등의 자연재해에 보호될 수 있는 지역에 수군만호진을 설치하여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관련 기록]

오포영은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의 관방(關防) 및 관액(關阨)조에 관련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

조선 전기의 경상도 지역 군선(軍船)의 규모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병선이 285척이 배치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 병전에 의하면 경상도에는 대맹선(大猛船) 20척과 중맹선 66척, 그리고 소맹선 105척, 무군(無軍) 소맹선 75척을 수군의 각 진과 포에 배치하였다. 오포영에 설치된 수군만호진의 규모를 살펴보면, 1469년(예종 1) 『경상도속찬지리지』에는 병선 4척, 소기군인 240명, 무군병선 3척이 있다. 오포영에 배치된 병선은 주로 소맹선(小猛船)이었다. 소맹선은 30명의 수군이 승선하여 운영되는 전함으로 규모가 작은 병선이며, 무군병선이란 유사시를 대비하여 포구 내에 그대로 정박시켜 둔 예비선이다.

강구 오포영의 수군은 청하 월포 이북에서 창포 이남에 이르는 해안과 바다의 전 지역을 순찰 또는 왜적을 방비하며 연안 방어에 임하였다. 이들은 오포영의 수군만호 1인이 관장하였다. 중종대 순변사 고형산(高荊山)이 영덕현 남쪽 17리[6.8㎞]리로 오포영을 옮겨 석성(石城)을 쌓았는데, 둘레는 1,490척[451m]이며, 높이는 9척[2.7m]이었다.

[변천]

오포영이 설치된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순변사 고형산이 해로(海路)가 보이지 않는다고 현의 남쪽 17리[6.8㎞]로 옮겨 돌로 오포성(烏浦城)을 쌓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조선 전기에는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사라져서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위치]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오포리에 있었다. 현재 원통사(圓通寺) 앞쪽 부근으로 추정되는 위치에 석성을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현의 남쪽 14리[5.6㎞]에 있었는데, 바닷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고형산이 옮겨 세웠다. 원래의 위치는 현재 소월리(素月里) 선병들 일대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관방요해처는 오늘날에도 작은 어항이나 방파제가 설치되어 있어 지역 어민들의 중요한 생활 근거지가 되고 있다. 즉, 바다에 접해 있어 바다로 나가기가 수월할 뿐만 아니라 바다에서 들어오기도 수월한 지역이다. 조선은 고려 말 왜구들의 침입을 경험 삼아 전국 해안에 많은 관방요해처를 설치하여 바다로 들어오는 외적의 침입을 경계하는 한편, 이들 관방요해처의 중심 지역에 수군의 진을 설치하여 실제로 방어진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경상도는 전체 해안에 69개처의 관방요해처를 두었는데, 그중에 오늘날의 경상북도 지역에는 27개소를 두었다. 이 중에도 영덕과 영해 지역의 해안 지역에는 15개처의 관방요해처를 두었다. 이를 보더라도 당시 영덕·영해 지역은 외적, 특히 왜구의 침입을 경계하는 중요한 관방요충지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영덕 방어의 중심이 오포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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