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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158
한자 馬正鳳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위경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지 마정봉 활동지 - 전라북도 군산시
성격 변사
성별
대표 경력 군산 극장 변사|남도 극장 변사|제일 극장 지배인

[정의]

1940~1950년대 전라북도 군산 지역 극장에서 활동한 변사.

[개설]

마정봉은 1940~1950년대 군산시 개복동 극장가를 기반으로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변사(辯士)로 활동하였고, 1963년 군산 지역에 제일 극장이 개관하자 지배인으로 일하였다. 전라남도 광주에서 활동한 변사 이양춘(李陽春)의 제자로 전해진다.

[활동 사항]

마정봉은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이후 1950년대까지 군산 지역의 군산 극장과 남도 극장의 변사로 활동하였다. 한국 영화는 일제 강점기 「춘향전」[이명우, 1935] 제작으로 발성 영화 시대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해방 정국 영화 제작 부진으로 인해 일제 강점기 무성 영화가 상영되는 한편으로 미군정 지배와 함께 할리우드 영화가 넘쳐나면서 극장에 다시금 변사(辯士)가 등장하였다. 한글 자막이 없는 외화를 설명하고 신문물을 소개할 안내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변사는 영화 흥행을 좌우하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였다. 군산 지역을 대표하는 변사는 마정봉이었다. 마정봉은 1948년 무성 영화 「밝아가는 인생」[이규환, 1933]과 「무지개」[이규환, 1936]를 군산에서 연기했다.

변사의 인기는 극장을 벗어나서도 이어졌으며 대중의 선망이 되었다. 변사는 근대 도시 경험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것이다. 다음과 같은 묘사를 통해 근대 도시 산책자[flaneur]에 비유될 수 있는 1950년대 초반 변사의 풍모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시인 고은(高銀)에 따르면, ‘마정봉은 여름도 아닌데 멋진 반바지에 스타킹을 신고 칠피구두 아니면 백단화(白短靴)를 신고 머리에는 작은 비둘기 깃이 꽂힌 운두 높은 중절모를 쓰고 개복동 거리에 나타났다. 그럴 때 개복동 술집의 기생이나 작부들이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쏟아져 나와 변사님, 변사님’ 환호를 받는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마정봉의 인기로 인해, ‘개복동 거리를 불란서파리로 알고, 마음속에서 파리의 라텡 거리를 거니는’ 환상에 빠져있던 젊은 문학인 고은 역시 변사를 꿈꾸게 하였다. 고은은 변사 연행(演行)을 시도한 첫 날, 실수로 연행을 망치자 ‘처음으로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였다. 다시 말해, 변사는 1950년대 초중반까지 지방 도시 상설 극장 흥행의 중심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