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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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行儼 |
영어음역 | Yun Haengeom |
이칭/별칭 | 경보,수묵당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청덕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안장리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개설]
윤행엄(尹行儼)[1728~1799]은 음서 출신이었으나 실무에 밝았고 북벌의 뜻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어머니의 죽음에 슬픔이 극에 달하여 이듬해 세상을 떠났을 정도로 효자였다.
[가계]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경보(敬甫), 호는 수묵당(守黙堂). 조부는 용안군(龍安君) 윤종주(尹宗柱)이며, 아버지는 익찬(翊贊) 윤염(尹琰), 부인은 달성서씨(達成徐氏)이다. 아우로 윤행임(尹行恁)이 있다.
[활동사항]
유생이던 1754년(영조 30) 송준길(宋浚吉)과 송시열(宋時烈)의 문묘종사를 청하였으며, 평소 산수 유람을 좋아하고 중국이 우리나라를 오랑캐라고 하는 것을 한탄하였다. 음서로 섭기거주(攝起居注)를 지냈고, 1762년(영조 38) 사마시에 합격한 뒤 벼슬을 두루 거쳐 청주목사(淸州牧使)에 이르렀다. 영조가 곡식 매매에 관련된 조적책(糶糴策)에 대해 물었을 때 훌륭하게 답하여 상을 받았다. 황단(皇壇)에 제사지낼 때 제관을 맡았으며, 1775년(영조 51) 정5품 벼슬이 내려졌다. 영조는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게 하려고 하였으나, 신하들이 문과 급제자가 아니라고 반대하여 무산되었다.
[묘소]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청덕동에 있으며, 아우 윤행임이 쓴 묘표(墓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