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여수문화대전 > 여수향토문화백과 > 삶의 내력(역사) > 근현대 >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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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고종 22) 4월 15일 영국이 동양함대를 파견하여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사건. 19세기 중엽 산업자본이 독점자본으로 성장하면서 해외 시장을 개척하려는 서구 열강들의 각축은 더욱 치열해져 식민지 침략의 손길이 동북아시아까지 뻗치기 시작하였다. 1860년 러시아는 한반도 동해(東海)에 임해 있는 블라디보스토크를 강점하였으나, 이 항구는 겨울철에 얼어붙어 해만(海灣)으로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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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고종 31)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운동. 동학은 심화되고 있던 봉건 체제의 모순과 열강의 침략 위기 속에서 1860년 최제우(崔濟愚)에 의해 창시되었다. 동학은 인내천 사상을 내세웠으며, 유·불·선은 물론 민간 신앙과 천주교를 포용한 당시 사회사상의 합성체로 평민은 물론이고 천민에 이르기까지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동학의 교리에는 개벽과 평등의 반봉건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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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부터 1914년 사이에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지역에 있던 행정구역. 1896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과거 돌산현의 돌산이라는 명칭을 따 나주부 흥양군[고흥]·순천군·광양군·낙안군[보성 벌교읍·순천 낙안면] 등에 속했던 두남면·남면·화개면·옥정면·삼산면·태인면·봉래면·금산면의 8개면으로 구성된 돌산군이 신설되었다. 뱃길 따라 남해안의 중서부를 가다보면 갑자기 큰 산이 나타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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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고려시대인 1350년(충정왕 2)부터 있던 여수현을 1396년(태조 5)에 태조의 정치 보복으로 폐현시켜 순천부에 예속한 후 500년에 걸쳐 순천부와 전라좌수영 두 관청의 부역과 조세를 이중으로 부담하는 폐단을 겪었다. 이후 복현 운동의 결과로 1897년(고종 34) 5월 16일 여수군(麗水郡)을 설군하라는 칙령(勅令) 제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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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될 때까지의 전라남도 여수의 역사. 1895년 전라좌수영이 폐지되고, 1896년 도서 지방에 돌산군이 신설되고, 1897년 육지 지역에 여수군이 신설됨으로써 순천도호부에서 분리 독립되어 여수·율촌·삼일·소라의 4개 면을 관할하였다. 후에 여수면이 현내면과 쌍봉면으로 분리되는 등 7개 면으로 분할되었다. 1914면 돌산군이 폐지되었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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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운동. 1919년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확대될 당시 여수 지역에도 「독립선언서」가 순천을 통해 율촌면과 여수읍 내로 전달되었다. 이후 4월 1일 쌍봉면·소라면·율촌면의 3개 면에서 산발적인 소규모의 만세 운동이 일어났고, 또 그날 밤 돌산면·화정면·남면·삼산면 등 4개 면에서도 일부 어민들이 산발적인 시위 운동을 벌였다고는 하나 본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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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에 일본 어민들을 식민시키기 위해 만든 집단 이주촌. 1900년 전후로 일본에서 조선 이민론이 본격적으로 대두되면서 식민어촌 건설이 주창되었다. 식민어촌은 일제가 러일전쟁을 전후하여 본국 어촌의 과잉 인구를 분산하기 위한 식민지 어업 정책으로서 한국 연안에 이주시킨 일본 어민의 취락이다. 당시 식민어촌 조성 조건으로서 가장 중시한 것은 어장 근처의 적당한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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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여수수산학교 독서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항일운동. 1930년대 여수는 일제의 침탈이 본격화되면서 민중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심화되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지식인들 사이에 유입되던 사회주의 사상이 민중들에게까지 확산되면서 일제에 의한 현실사회의 모순을 사회주의의 시각에서 분석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었다. 여수수산학교의 독서회는 사회주의의 함양과 보급을 통한 항일운동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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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중국 만보산사건을 계기로 전라남도 여수에서 발생한 중국인 추방운동. 1931년 7월 2일 중국 길림성에서 발생한 만보산 사건이 국내의 일부 신문에 의해, 만주의 우리 동포들이 중국인들에게 일방적으로 습격당했다고 전해졌다. 이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 중국인들을 박해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여수에서도 중국인 추방 운동이 벌어졌다. 일제는 1910년 우리나라를 강점한 이후 만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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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여수군청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 여수군청은 간숙당이라는 건물로, 1479년(성종 10)에 전라좌수영성과 같이 지어졌다. 역대 수군절도사들의 시무청인 운주헌으로 불려오다가, 1897년 여수군이 설치되면서 여수군청으로 사용되어온 건물이었다. 위치는 전라좌수영 역내 지금의 군자동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2.314m²의 부지에 결승당과 완경루 등의 두 부속 건물이 있었다. 내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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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 설립되었던 일본인 회사. 한일합병이 되자 일본 정부는 한반도 전역에 걸쳐 본격적인 식민 작업에 들어갔고, 고뢰농장이 여수에 진출한 것도 이 식민 사업의 일환이었다. 이후 고뢰농장은 일본 정부의 식민지 정책을 등에 업고 자본다운 자본이 없던 여수 지방에서 많은 축재를 하였다. 1911년 3월 다카세[高瀨]명명회사(命名會社) 여수지점의 이름으로 여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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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 청년들이 조직하였던 사회 운동 단체. 3·1운동 때에 서울에서 유학하던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학생들은 여수향우회를 만들어 활약하였다. 3·1운동의 후유증으로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거나 자퇴하고 피신한 여수향우회 소속 학생들은 구심점을 잃고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중 여수 지역에 은신하고 있는 몇 사람들이 모여 서로 맞잡고 돕자는 뜻으로 맞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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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에서 고종과 순종의 장례식에 통곡단을 조직하여 참석한 사건. 1864년 16세의 어린 나이로 조선왕조 제26대 왕에 등극한 고종은 헤이그밀사사건으로 1907년 퇴위하기까지 43년 동안 실로 내우외환이 겹치는 국난 가운데서 초의한식(草衣寒食)으로 편할 날이 없다가 1919년 1월 일본인에 의한 독살설이 나도는 가운데 서거하였다. 1919년 3월 3일의 고종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