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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E010202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정현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의 덕양 시내에는 네 개의 마을이 있는데 이 중 상세동하세동이 가장 먼저 형성되었다. 국도 17호선을 따라 여수공항을 거쳐 오른쪽 방향 지방도로로 진입하게 되면 덕양거리가 나온다. 덕양거리 양쪽에 상가가 연이어 있는데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를 경계로 오른쪽, 즉 지도상으로 보면 서쪽에 해당되는 곳이 상세동이고 건너편 마을이 하세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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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동

상세동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덕양1구이다. 2008년 3월 현재 187세대에 498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1998년 12월 31일 기준 인구와 대비하면 69명이 감소하였다. 상세동은 관할이 1897년 여수군이 설치될 때 덕안면이었는데 나중에 구산면으로 바뀌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소라면으로 바뀌었다. 하세동과 세동천을 경계로 하면서 서쪽으로 길게 뻗은 마을이다.

마을 앞뒤는 완만하게 산으로 둘러싸였고 아래 화양면 화동리 방면으로 길게 뻗어 있어 ‘세동’이란 지명이 붙어진 것이다. 당초에는 상세동하세동이 모두 덕양1구에 속했으나 상세동하세동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덕양1구와 덕양2구로 분리되었다. 1895년경 동학농민전쟁 당시 안덕양에 살던 임경문이 난을 피하여 산골짜기 오지였던 이곳에 입주한 뒤로 밀양박씨·경주이씨 등 여러 성씨가 계속 이주해 와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1910년 여수-순천간 신작로가 개통되었고, 1921년에는 소라공립보통학교가 개교하였으며, 1925년에 대포간척지가 조성되고, 1932년에 화동 방면의 도로 개설되었다. 1933년에는 소라면사무소가 세동마을로 옮겨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하세동마을과 함께 이 일대의 중심지로 부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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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공립보통학교 오늘날 모습

세동마을은 다른 오지 마을보다 수십 년이 빠른 1930년도에 전기가 들어왔다. 예전에는 무명씨 등을 짜서 만든 기름으로 등불을 밝혔으나 개화 문물이 들어오면서부터 석유로 바뀌었다. 그런데 석유등보다 훨씬 밝은 전기불이 들어오게 된 것은 세동마을로서는 대단한 발전이었다. 즉, 세동마을은 이전에는 인적이 드문 오지였다가 갑자기 개화된 마을로 성장한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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