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1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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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海岸第一-溫泉休養地-德邱溫泉-白巖溫泉 |
영어의미역 | The Best of Hot Springs on the East Coast, Deokgu and Baekam Hot Springs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노윤구 |
[개설]
울진군은 동해안 제일의 온천 휴양지이다. 인구가 6만여 명이 되지 않는데도 오랜 역사를 이어온 온천단지가 덕구온천·백암온천 등 2곳이나 된다. 덕구온천은 응봉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덕구계곡에서 솟아나는 자연 용출온천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곳이다. 울진 사람들은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으로 백암산을 자랑한다. 백암산 중턱에는 예로부터 뛰어난 효험을 자랑하는 천년 세월의 백암온천이 있다.
얼키설키 실타래 마냥 뒤엉킨 한 해의 묵은 갈등들이 마음을 어지럽힐 때는 뜨거운 온천 물에 뻐근한 몸을 담그는 것만으로도 날듯이 가벼울 것이다. 찬바람이 몸과 마음을 움츠리게 하는 겨울에 울진으로 온천 여행을 떠나보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온천수에 몸을 담그면 어느새 나긋나긋 추위와 피로가 녹아내릴 것이다.
[자연 용출온천 덕구온천]
태백산맥이 만들어낸 깊은 협곡과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수풀이 손짓하는 울진에는 마르지 않는 온천 샘인 덕구온천이 있다. 덕구온천의 역사는 고려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창과 활을 잘 쓰기로 유명한 사냥꾼이 상처를 입고 도망가는 멧돼지 뒤를 쫓아 응봉산 깊숙이 들어왔다가 멧돼지를 발견하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계곡 물에 몸을 담그고 있던 멧돼지는 갑자기 쌩쌩해져서 달아나 버렸다. 그 뒤로 이 온천수가 외상과 피부 질환에 특별한 효험이 있음을 알게 된 주민들은 자연석을 주위에 쌓아 노천 온천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덕구온천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1979년 이전까지도 주민들은 계곡의 노천탕을 줄곧 이용해 왔다고 한다. 약알칼리성 온천수인 덕구온천은 칼륨·칼슘·철·염소·중탄산나트륨·마그네슘·라듐·황산염·탄산·규산 등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그래서 신경통·류마티스성 질환·근육통·피부 질환·여성의 피부 미용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잠수나 격렬한 운동, 등산 등으로 인한 근육신경 마비에는 특별한 효험이 있다고 하여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관절염에 시달리는 병약한 노인이나 아토피성 피부로 고생하는 아이들에게 좋다.
노천 온천 옆에 사는 주민이 증언하기를 “초등학교 때 소풍 가잖아예. 그카믄 꼭 온천 하러 갔어예. 저쪽에 돌로 쌓은 담 보이지예? 거가 목욕탕이 있던 자린 기라예. 계곡 저쪽에 철광이 있었는데, 그래서 광부들도 많이 왔다 캅니더. 어쨌든 겨울에 여기 올라오믄 저쪽부터 연기가 보였어예.”라 하였다. 현재 덕구계곡의 노천탕은 여러 차례 태풍과 홍수로 벽과 물을 대는 파이프 등 흔적만 남은 상태다. 그 대신 세족장이 마련되어 족욕을 할 수 있다.
온천 시설이 미비했던 시절에는 천막 하나만 두르고 남녀 탕을 나누어 몸을 담갔다고 하는데, 요즘은 그때의 추억을 되살리려는 듯 원천이 솟는 덕구계곡 트레킹 코스가 있어 온천 관광객들이 몰린다. 온천욕은 원래 2일에서 3일 정도 꾸준히 해야 효력을 제대로 체득할 수 있지만, 덕구온천에서는 단 한 번만으로도 매끈해진 피부를 느낄 수 있다.
1991년 2층 건물에서 영업을 시작한 덕구온천은 현재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의 관광호텔과 대온천탕·스파월드·한식당 등의 다양한 편의 시설을 갖춘 종합 온천휴양지로 발전했다. 그중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테라쿠아·액션스파·어린이 슬라이더·노천 온천·야외 선탠장·가족 온천실 등을 갖춘 스파월드이다. 특히 응봉산 자락의 울창한 숲과 첩첩한 산줄기를 바라보며 노천 온천탕의 히노끼탕·레몬탕·쟈스민탕 등 여러 이벤트탕을 섭렵하다보면 그야말로 신선이 따로 없다.
온천수는 파이프를 타고 응봉산 아래 자리한 덕구온천호텔의 온천장으로 흘러간다. 대온천장의 수온과 수질은 원탕과 별 차이가 없다. 온천수가 끊임없이 흐르기 때문이다. 특히 이중 구조로 된 파이프는 이물질의 침투나 광물질의 이탈을 막아준다. 물을 데울 필요도 없고 다른 광물질을 첨가할 필요도 없다. 단, 열탕은 물을 데웠다는 설명을 해두었다. 관광객들은 열탕·온탕·냉탕·폭포탕과 자수정·맥반석 사우나를 차례로 들락거린다. 온천장 위의 스파월드의 물도 바로 이 온천수다. 스파월드는 기포욕·보디마사지·침탕 등의 시설을 갖춘 대규모 종합 스파 공간이다.
연인이나 가족이 눈에 많이 띈다. 각 시설이 있는 곳에 몸을 담근다. 강력한 물살이 뭉친 근육을 풀어준다. 야외 노천탕은 단연 인기다. 특히 해질 무렵 자스민탕이나 레몬탕에 앉아 있으면 서정적인 분위기에 젖게 된다. 겹겹이 자리한 능선 위로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광경은 스파 못지않은 편안함을 선사한다. 코끝에 퍼지는 은은한 향기도 마음에 든다. 그리고 히노키탕[원목탕]으로 자리를 옮긴다. 반신욕을 하기에 딱 알맞은 깊이다.
나무가 주는 편안함이 새롭다. 약 10m 길이의 야외 산책로를 걷는다. 온천의 열기와 숲의 냉기가 만들어내는 기온 차이가 근육을 자극한다. 시원하고 짜릿하다. 폭포탕에서 힘차게 떨어지는 폭포를 맞으면 기분 전환이 된다. 폭포처럼 강한 활기가 솟구친다. 스파월드와 연결된 노천 온천은 덕구온천이 자랑하는 백미 중 백미이며, 맑은 연두빛을 띤 쟈시민탕과 레몬탕은 물론이고, 100년 된 원목으로 만든 히노끼탕도 꼭 한 번 들어가 봄직하다.
코끝을 스쳐 지나가는 찬바람과 온몸 가득히 전해져 오는 따스함이 전율이 느껴질 만큼 기분을 좋게 한다. 여름이라면 원목데크 위 선텐베드에서 삼림욕까지 만끽할 수 있을 것이고, 겨울에는 노천탕에서 따뜻한 온천과 찬바람을 느끼는 행복에 젖을 것이다. 노천 온천은 낮에도 좋지만 야경이 곁들어진 밤에는 운치가 한층 더해진다.
응봉산 중턱에 자리잡은 원탕과 덕구온천 사이의 덕구계곡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프랑스의 노르망디교, 호주 시드니의 하버브릿지, 서울의 서강대교, 경주 불국사의 청운교·백운교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량 12개의 축소형이 놓여 있다. 영화나 사진으로 본 세계적 명소를 하나씩 지나면서 형제폭포·옥류대·선녀탕·용소폭포 등의 절경을 감상하는 기분이 독특하고도 상쾌하다.
응봉산 중턱의 원탕에서 하루에 4000톤 가량 솟는다는 원수는 4㎞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덕구온천에 공급된다. 덕구온천은 41.3℃의 원수를 데우거나 식히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다. 또한 이 원수는 2~3개월 동안 가두어 놓아도 침전물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수질이 좋다. 또한 덕구온천 지구에서 가장 시설 좋은 덕구온천 스파월드가 있어 남녀노소 모두가 이용한다. 덕구온천호텔의 부속 시설이라서 가격이 비싸지 않을까 하는 선입관도 있는데 입장료는 여타 온천과 별 차이가 없다.
요즘에는 울진 사람들도 백암온천 대신 덕구온천을 찾곤 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탕을 사용하는 곳보다는 24시간 깨끗한 물이 쏟아지는 덕구온천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수질 좋은 온천이라도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다 보면 탕이 오염되기 마련인데, 덕구온천 온천탕은 파이프를 이용해 하루 종일 깨끗한 온천수를 공급하니 수질이 한결같다.
온천 시설은 두 가지다. 목욕을 할 수 있는 평범한 온천탕과 수영복을 착용하고 들어가는 첨단 스파가 있다. 요즘 대단위로 들어서는 화려한 시설은 아니어도 갖출 것은 다 갖추었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폭포탕과 월풀 욕조 기능들이 덧붙여진 액션스파와 여러 가지 향이 감도는 노천탕이 매력적이다. 호텔 숙박객들은 스파를 제외한 온천탕에 1일 2회에 한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호텔에는 한실과 양실이 있어서 부부가 투숙을 하면 트윈베드의 양실, 가족이 투숙하면 한실에서 편안한 하룻밤을 즐길 수 있다. 숙박료는 성수기와 비수기 가격으로 나뉘는데 비용은 요즘 잘나가는 펜션 비용과 비슷하다. 아름다운 불영사와 불영계곡, 시리도록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 멋진 죽변항과 망양정, 그리고 성류굴도 둘러보고 간단한 트레킹도 즐길 수 있어 여행이 더욱 즐겁다.
[천년 세월의 백암온천]
울진군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온천인 백암온천은 1979년에는 국민관광지, 1997년에는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백암온천의 역사는 덕구온천보다도 더 오래되었다. 백암온천에 대해 주민들의 입을 통해 전해오는 세 가지 전설은 덕구온천과 아주 흡사하다.
‘신라 엽부(獵夫)설’에 의하면, 신라시대에 한 사냥꾼이 지금의 백암산[1004m] 자락에서 창에 맞은 사슴을 쫓다가 날이 저물어 철수했다. 사냥꾼은 이튿날 다시 사슴을 찾아 여기저기를 헤매다가 사슴을 발견했는데, 따뜻한 샘물이 솟아나는 곳에 사슴에 누워 있었다는 것이다. 그 후 한 스님이 온천탕을 꾸며서 피부병 환자들을 치료했고, 고려시대에는 수령이 주민들을 동원해 커다란 욕탕을 만들었다고 한다.
‘신라 경영왕설’에 의하면, 신라시대 경성왕이 쏜 화살에 상처를 입은 사슴이 도망가다가 숨어 버리고 경성왕은 부근 절벽에서 떨어져서 중상을 입었다. 근처 농가의 처녀가 경성왕을 치료하여 낫게 하였는데 그 처녀가 계곡에서 떠온 물이 바로 이 온천수였고, 사슴도 이 계곡의 물에 몸을 적셔서 치료를 하고 제 갈 길로 갔다고 한다. 그 후 백암사(白岩寺) 승려 신미가 주먹돌 욕탕을 설치한 이래 목조 욕탕으로 발전하여 고려 명종(明宗)[1170~1197] 때 현령이 지방민을 동원하여 화강암 석조(石糟)와 가옥을 개수하고 온천을 일반에게 공개했다.
‘정량일설(鄭良一說)’이다. 신라시대 때 정량일(鄭良一)이란 사냥꾼이 쏜 창에 상처를 입은 사슴이 도망가다가 어느 곳에 숨어 버리고 사냥꾼은 부근 절벽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게 되었는데 근처 농가의 한 처녀가 계곡에서 떠온 온천수를 가져와 치료하여 낫게 하였다던 데서 유래한다.
현재 ‘백암(白岩)’이란 명칭은 1913년 일본인 지기무부(知奇武夫)가 건축한 여관의 상호가 평해백암온천관(平海白岩溫泉館)이었고, 국내 유일의 라듐 유황 온천으로 그 향내가 독특하다. 이런 백암온천이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한 시기는 일제강점기인 1917년부터였다고 한다.
백암온천에 관한 기록은 1610년 『광해군일기』의 기자헌 상소문에도 나오고 있다. 기자헌은 당시 좌의정으로 대간의 탄핵을 받고 삭직출송(削職黜送)되어 여러 해 동안 호남과 영남을 왕래하였다. 복직된 이후에 차자를 올려 대옥(大獄)을 일으키기를 도모하였다. 왕이 그 뜻을 알고 받아들이지 않자 기자헌은 병을 핑계로 평해 땅 온천에서 휴가차 목욕하기를 청하였다.
왕이 겨울 날씨가 춥다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자, “신의 풍질(風疾)이 이미 심하여 왼쪽 수족이 마비되어 항상 물에 들어가 있는 듯합니다. 비록 겨울이기는 하지만 온천욕은 얼음물에 목욕하는 것과는 다르니, 오래도록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면 반드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보다는 차라리 가서 목욕하면서 차도를 바라는 것이 낫겠기에 부득이 가서 목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상의 자비로운 마음으로 빨리 휴가를 주도록 허락하여 몇 달 간 다녀오도록 해주신다면 다행스럽겠습니다.”하였다.
왕은 “차자를 보니 경의 심정을 알 수 있겠다. 잘 다녀오도록 하라.”고 답하고 휴가를 주고 말을 지급하도록 명한 것이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이전인 조선시대에도 온천은 병을 낫게 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믿어졌고, 백암온천을 찾는 이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암온천은 pH9.35의 강알카리성 온천이다. 유황 리듐 성분이 풍부해 만성 관절염·만성 변비·위염·피부병 등 치료에 뛰어난 효험이 있다. 대부분 국내 온천이 수량이 고갈되거나 수온이 낮아 물을 데워 쓰고 있는데 비해 백암온천은 수온이 48℃까지 올라가 식혀서 온천탕으로 보낸다
백암온천을 소재로 한 시들도 전해진다. 대표적으로 서거정(徐居正)의 「탕목정(湯沐井)」, 성현(成俔)의 「탕목정(湯沐井)」, 이산해(李山海)의 「온탕정(溫湯井)」 등이 있다.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서거정은 『동인시화』, 『동문선』, 『필원잡기』, 『골계전』 등 많은 작품을 썼던 인물로 당시 유림들 사이에서도 명망이 높았던 학자였다. 그가 쓴 「탕목정」은 다음과 같다.
여섯자라 힘도 세어 신을 높이 들었는데/ 아홉 용이 우물을 보호하며 신령한 수원 통해서라/ 더운 샘물 따스하여 훈훈하기 봄같은데/ 귀신이 호위하는 듯 티끌 기운 없구나/ 듣는 말엔 한 줌으로 오랜 병이 낫고/두 겨드랑이로 풍기면 뼈도 신선이 된다네/ 이내몸 지금 시와 술이 고질되었으니/ 한번 가서 쾌히 씻으려네.
조선 전기의 명신이자 학자인 성현은 『허백당집』, 『풍아록』 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정치, 문학 분야에서 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가 쓴 「탕목정」은 다음과 같다.
옥 구멍의 음화(陰火)가 불 때는 것 같은데/ 아홉용이 엄하게 지키며 신령한 수원 열어 놓았네/ 뭉게뭉게 연기 연기가 굽이에 퍼지는데/ 한 줄기 샘물 푸른 산 밑에서 끓어오르네/ 훈훈한 더운 기운, 술에 취하는 것 같은데/ 가마솥에 섶으로 불 땔 일 필요없네/ 몸을 씻는데 기이한 공 있으니/ 탕반(湯盤)에서만 티끌 때를 벗는 것이 아니라네.
조선 중기의 문신 아계 이산해는 『아계유고』, 『조정암광조묘비』 등을 남긴 학자로 그가 쓴 「온탕정」은 다음과 같다.
백암산 아래에 온천이 있어/ 한 표주박 물로도 온갖 병이 낫는다네./ 이제부터 자주 가서 몸을 씻어서/ 이 늙은이 묵은 시벽(詩廦)을 치료해 봐야지
현재 세 곳의 수원지에서 솟아나는 백암온천의 원수는 온정면 온정리, 소태리 일대의 8개 업소에 공급되고 있다. 국내에 흔치 않은 유황 온천으로 수온은 53℃에 이르고, 신경통·만성 관절염·동맥경화증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백암한화콘도에는 뜨거운 원수를 직접 시음해보고 족욕까지 즐길 수 있는 야외온천학습관도 꾸며져 있다.
백암온천에는 백암한화콘도, 카스펠로 그랜드 백암관광호텔, 성류파크관광호텔, 백암고려호텔, 태백온천모텔 등 모두 700여 실의 풍부한 숙박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혹 백암온천에 와서 어떤 곳에 숙박을 해야할지 모를 경우에는 백암온천번영회나 백암온천협회로 문의하면 숙박 시설을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백암산 정상까지는 2시간 쯤 걸린다. 산책로를 따라 약 3㎞ 올라가면 40m 높이의 백암폭포가 있다. 주변에는 80~100년생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하게 하늘을 덮고 있다. 정상까지는 나뭇잎을 떨군 활엽수림이 이어져 조용한 겨울 산의 정취를 음미할 만하다.
만약 8월경에 백암온천 관광지를 올 경우에는 울진의 즐거움을 즐길 수 있는 백암온천축제에 참여하면 좋다. 백암온천축제는 백암온천을 널리 홍보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로서 2008년 현재 제13회를 맞이해 ‘온천’이라는 주제와 어울리는 다양한 행사 및 체험과 휴식이라는 차별화된 축제가 열렸다.
관광객과 군민이 함께하는 노래 자랑과 장기 자랑을 볼 수 있는 전야제와 온천수신 행렬 재연, 백암온천수신제, 개막식 등을 축제 첫날 볼 수 있다. 축제의 마지막 날인 8월 31일에는 ‘2008 울진백일홍꽃길마라톤대회’가 진행되어 볼거리가 다양하다. 축제 기간 중에는 백암온천 지구 내 온천탕을 이용하는 모든 관광객들에게 온천 목욕 요금의 50%를 할인해 주는 혜택이 준비되어 있어 저렴하게 온천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