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03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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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佳東孝子碑 |
영어의미역 | Monument for the Filial Piety of Yi Gadong |
이칭/별칭 | 효자이가동지려(孝子李佳東之閭)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신흥리 1567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인표 |
성격 | 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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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818년 11월 28일 |
관련인물 | 이가동 |
재질 | 화강암 |
높이 | 118㎝ |
너비 | 38㎝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신흥리 1567 |
소유자 | 경주이씨 종중 |
[정의]
조선 후기에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신흥리에 건립된 조선 중기 이가동의 효행을 기념하는 비.
[개설]
이가동의 자는 후립(厚立)이며, 경주인으로 이제현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군수 이대인(李大仁)으로 통덕랑에 증직되었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병들었을 때는 빙어와 설순을 어렵게 구하여 약으로 사용하였고, 한겨울에 산딸기를 구하여 부모에게 올려 효험을 보았다. 또한,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는 묘 옆에 여막을 짓고 3년간 피눈물을 흘리면서 묘를 지켰다.
[건립경위]
이런 이가동의 효성이 알려져 1666년(현종 7) 8월에 정려되었으며, 1748년(영조 24)에 울진현 남쪽 30리에 비석을 건립하였다. 그 후 이가동의 후손들이 미미하여 사적이 전해지지 못하고, 비석이 길 옆에 기울어지자 1818년 11월 28일 후손인 이봉남(李逢南)·이석대(李碩大)·이응동(李應東)·이맹필(李孟弼)·이탈삼(李脫三) 등이 이가동 효자비를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위치]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신흥리 1567번지 북수동 효자편마을 동쪽에 있다. 울진읍에서 국도 7호선을 타고 남쪽으로 오다가 매화교차로에서 매화리로 나온다. 매화리에서 신흥리 방향인 남쪽으로 약 4㎞ 정도를 오면 신흥리 효자편마을에 도착한다.
[형태]
이가동 효자비는 목조 단칸 우진각지붕을 한 비각 내에 있으며, 화강암으로 제작된 2단의 비좌 위에 월두형 비신을 고정한 형태이다. 비각의 외부는 흙으로 둔덕을 만들었고, 둔덕의 안쪽은 시멘트와 석재로 담장을 만들고 기와를 얹어 마감하였다. 비각은 사방을 판자로 막고 앞쪽의 윗부분은 살대로 마감하고, 그 아래는 문살을 내고 있어 비각 안으로의 출입은 불가능하고, 비석의 뒷부분을 볼만한 공간도 없다.
비각의 정면에는 가로 129㎝, 31㎝의 현판에 “효자증통덕랑이가동지려(孝子贈通德郞李佳東之閭)”라 하였다. 비석은 2단으로 된 비좌 위에 비신이 고정되어 있고, 비신은 높이 70㎝, 너비 38㎝, 두께 11㎝이다. 비좌는 2단으로 되어 있는데 전체 높이 48㎝, 아랫단 가로 55㎝, 세로 50㎝이다.
[금석문]
비신의 전면에는 글자크기 가로 7㎝, 세로 8㎝로 “효자학생이가동지려(孝子學生李佳東之閭)”를 새겼다. 뒷면에는 대략 가로 3㎝, 세로 3㎝ 정도 글자 크기의 비문이 있다.
[현황]
최근 담장을 보수하고 목재 부분에 칠을 새롭게 하는 등 비각을 잘 정비하였다. 그러나 뒷면 비문의 제일 아래 글자들은 비좌에 일부 묻히게 되어 판독하기 매우 곤란하다.
[의의와 평가]
이가동의 빼어난 효성은 울진 지역에 거주하는 경주이씨 뿐만 아니라 울진 지역 주민들 역시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이 점은 효자비가 있는 마을을 효자편이라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