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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1562
한자 符籍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집필자 김형준

[정의]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복을 빌고 재액을 물리치기 위하여 주사로 쓴 그림 글씨.

[개설]

부적은 종이에 글씨나 그림 또는 기호 등을 그린 것으로, 재앙을 막아 주고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주술적 도구이다. 전통 사회에서 집집마다 방문 위에 부적을 붙여 놓지 않은 집이 없었다. 한국 문화에서 재액초복(除厄招福)을 위한 민속은 다양하다. 부적은 그 가운데 하나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보이지 않으면서 위험을 느끼는 요인이 사악한 기운이다. 이 사악한 기운을 사귀라 부른다. 사귀가 집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부적을 집안의 대문과 방문에 붙이는 민속이 전승되어 왔다.

부적의 역사는 삼국 시대부터 전승되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적은 대체로 사찰의 스님이 만들어 주기도 하고, 주술사[점쟁이, 당골] 또는 무당이 만들어 주는 게 일반적이다. 주술사와 무당들은 사귀를 쫓는 일을 담당하는 종교적 직능자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부적은 집안에 복을 불러들이는 길상 부적과 사악한 기운을 막는 벽사 부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연원 및 변천]

부적은 벽병부(僻病符)라 할 수 있는 처용(處容)의 화상 부적을 기원으로 삼는다. 처용은 신라 헌강왕 대의 인물로서 역신을 물리치기 위하여 처용부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부적이 본격화한 것은 중국에서 밀교 부적이 전래하면서부터다. 밀교가 성행하던 고려 시대에는 밀교 의례가 호국 불교를 발달시켰다. 사찰에서 다양한 불교 의례를 통해서 국태민안, 재액 소멸, 질병 제거 등 국가적 재난을 방지하는 기원과 함께 부적 만들기가 성행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 시대에 민간에 보편화되었는데, 사대부나 서민에 이르기까지 집집마다 정월 초에 입춘축(立春祝), 문배(門排), 세화(歲畫) 등을 그려서 문에 붙였다. 이러한 풍속은 중국에서 전래되어 지금도 정월에 부적을 대문과 방문에 붙이는 관행이 남아 있다.

[절차]

순창읍 남계리에는 정월 보름맞이 이전 입춘 즈음에 절에서 스님에게 받아온 부적을 방문 위에나 방안 위에 붙여 놓는 관행이 있다. 부적을 붙이는 심리는 집안으로 잡귀가 들어오는 것을 막고, 집안으로 복을 불러들이기 위해서다. 복을 불러들이기 위하여 대문에 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문을 열면 온갖 복이 들어온다]라는 입춘축도 붙여 놓는데, 입춘축도 부적의 일종이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순창읍 남계리의 부적 풍속에 집안의 물건을 옮기거나 흙을 만지면 자주 탈이 났는데, 심지어 쥐구멍에 흙을 발라도 탈이 났다. 6·25 전쟁 이후에 무슨 일을 할 때면 ‘대통령 명령’이라는 부적을 붙여 놓았다고 한다. 대통령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기 때문에 대통령이라고 쓴 주문을 집안에 붙여 놓은 부적까지 생겨났던 것이다. 이와 같은 부적을 붙여 놓으니 생활에 별 탈이 없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부적은 마을 주민들의 심리적 안정을 주기 위한 주술적인 처방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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