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3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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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亭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산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곽현옥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산정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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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리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산정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2.57㎢ |
가구수 | 25가구 |
인구[남/여] | 41명[남 20명/여 21명]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산정리(山亭里)의 ‘정’은 ‘정자 정(亭)’ 자이다. 그러나 ‘정(亭) 자는 화(化)야’라 하였으니 ‘산’으로 화한다는 말이 된다. 이곳이 대명당 자리이기에 그 지기를 희석시키고자 일본인들이 만든 지명으로, 전래의 지명과는 거리가 멀다.
[형성 및 변천]
전하는 말에 따르면 산정리는 660여 년 전 광산 김씨(光山金氏)가 들어와 번성하였던 마을이라고 하며, 조선 후기까지도 번창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안외양실, 밭외양실을 병합하고 산정리라 개칭하였다. 안외양실은 일명 서정리(西亭里)라고도 한다. 그런데 도선 국사(道詵國師)의 「답산가(踏山歌)」에 ‘백방 산하에 양마입구(良馬入廐)’라고 하는 대명당이 있다고 나오는데, 그 상대성 지명으로 마구간, 즉 외양실이라 하는 마을이 오랜 옛날부터 형성되어 번창하였다.
안외양실의 뒷산은 장대산이다. 옛날 나라에서 국방을 대비하여 쌍치면 보들과 내장면 삼바실, 그리고 복흥면 외양실을 성지(城地)로 선정하려고 하였다. 이들 3곳에서 포를 동시에 발사하면 유사시 포 소리가 멀리까지 잘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흥 주민들이 생각하니 만약 이곳이 성지로 선정되면 전쟁이 잦아 지역 주민의 인명과 재산 피해가 많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폭탄물을 낙덕소에 투기하였다. 그래서 이곳이 성지로 선정이 되지 않아 큰 참변을 피할 수 있게 되어 후세 사람들이 그 결정을 씩씩하고 크고 훌륭한 치적으로 삼아 이 산을 장대봉(仗臺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유래가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후 1971년 행정리를 내오리(內午里), 외오리(外午里)로 분리하였다가 1980년 다시 산정리로 환원하였다
[자연 환경]
산정리는 복흥면 북동쪽에 위치한다. 뒤편으로 구릉이 형성되어 있으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마을이 아늑하고, 마을 주변으로 그리 넓지 않은 완만한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안외양실은 소백방산(小栢芳山)[508.7m]이 솟아 서남쪽으로 뻗어 내려 골짜기를 이루고 취락이 형성되어 있으며, 밭외양실은 동남쪽으로 뻗어 가다가 좌우로 갈라지며, 추령천으로 머무르는 곳 이른바 좌청룡 우백호에 둘러싸여 있는 곳이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산정리의 면적은 2.57㎢이고, 인구는 25가구, 41명으로 남자가 20명, 여자가 21명이다. 1개 행정리와 2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내오 마을에 울산 김씨(蔚山金氏)의 재실이 있다.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이던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가 수학하던 곳이기도 하다. 산정리 주민들의 주된 소득원은 벼농사이며, 다수의 농가에서 복분자, 오미자 등의 특용 작물을 재배하기도 하며, 밭작물로는 고추, 배추, 콩 등을 주로 경작한다. 차도에서 1㎞ 정도 떨어진 외양실에서 구릉을 지나 고개 능선을 ‘말잔등’이라고 한다. 이 고개 너머 2㎞ 정도 더 들어가면 ‘안외양실’이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