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4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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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山洞寒洲宗宅 |
이칭/별칭 | 동곽댁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한개2길 43[대산리 40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도영 |
건립 시기/일시 | 1767년 - 대산동 한주 종택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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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866년 - 대산동 한주 종택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10년 - 대산동 한주 종택 증축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3년 6월 20일 - 대산동 한주 종택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 지정 |
현 소재지 | 대산동 한주 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한개2길 43[대산리 408] |
성격 | 종택|전통 가옥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4칸 반[사랑채]|7칸[중문간채]|3칸[아래채]|3칸[사당] |
측면 칸수 | 2칸 반[사랑채]|1칸[중문간채]|1칸[아래채]|2칸 반[사당]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종택.
[개설]
대산동 한주 종택(大山洞寒洲宗宅)은 성주군의 전통 살림집으로 동곽댁이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 이승희(李承熙)[1847~1916]를 비롯하여 여러 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유서 깊은 저택이다. 대산동 한주 종택에서 태어나 성장한 성리학자 한주 이진상(李震相)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유학자이다. 이진상의 아들로 제자인 대계(大溪) 이승희와 손자 삼주(三洲) 이기원(李基元)[1885~1982], 백계(白溪) 이기인(李基仁)[1894~1981] 등은 일제의 국권 침탈에 저항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부자가 모두 그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 훈장을 수훈하였다.
[위치]
대산동 한주 종택은 성주군 월항면 한개2길 43[대산리 408번지]에 있다. 성주 한개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정자와 넓은 정원을 두고 있다.
[변천]
대산동 한주 종택은 1767년(영조 43)에 이민검이 건립하였다. 이후 1866년(고종 3)에 한주 이진상이 고쳐 지었고 1910년(순종 4)에 증축하는 등 여러 차례 중건을 거치면서 일제 강점기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형태]
사랑채와 안채, 사당, 정사, 대문채, 중문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담장과 출입문을 설치하여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마을의 가장 깊고 막다른 위치에 있으며, 경사진 비탈 끝에 동향한 평삼문형 대문이 있다. 대산동 한주 종택을 출입하는 대문은 사랑채 앞마당을 옆에서 출입할 수 있게 하였다. 대문채에는 작은 문간방과 외양간으로 보이는 공간이 있다.
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남쪽을 향한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의 지붕은 맞배지붕이며 정면 4칸 반, 측면 2칸 반 규모의 ‘一’ 자형 건물이다. 마당 안쪽에는 안채를 출입하는 중문채가 있다. 살림집이 있는 안채는 담장과 중문채로 공간이 분리되어 있으며, 내부 안마당은 비교적 넓다. 사랑채 동쪽으로는 정자인 ‘한주 정사’와 넓은 정원이 있으며, 별도의 대문을 두고 있다. 정자 건물인 한주 정사는 안채와 사랑채로 나뉜다. 한주 정사와 안채 사이에는 협문(夾門)과 일각문(一角門)을 두어 출입할 수 있게 하였다. 안채는 정침과 광채, 아래채, 대문채 등이 튼 ‘口’ 자형을 이루며 안마당을 감싸는 듯한 배치이다. 사랑채는 독립채로 배치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로 누마루를 두는 등 구한말 이후 유행한 건축 양식으로 되어 있다.
중문간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구조로 사랑채 서편에 나란히 자리 잡고 있으며, 바깥마당과 안채 안마당을 구획하였다. 아래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로 2칸의 방과 곳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방채는 3칸으로 찬광과 광, 마루로 구성되었다. 사당은 안채 뒤편에 있으며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 반으로 보통 가묘(家廟)보다 넓다. 방과 대문, 마구간 순으로 평면 구조인데, 마구간 위에 다락이 있어 층계로 오를 수 있는 점이 특색 있다.
[현황]
대산동 한주 종택은 1983년 6월 20일에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산동 한주 종택은 전통 가옥으로서의 가치와 함께 성주군 지방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는 집으로, 원형이 잘 남아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특히 정원의 정자 옆에 네모반듯한 연못을 파고 나무를 심어 정원을 꾸며 놓았는데, 한국식 정원의 자연스러움을 잘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