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12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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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民俗- |
영어공식명칭 | Folk Game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영수 |
[정의]
세종 지역에 전하여 내려오는 민속놀이.
[개설]
세종 지역 사람들이 놀고 있는 민속놀이 중에는 일본 놀이가 우리 놀이로 잘못 알려진 것이 많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전통 놀이를 놀지 못하게 하고 일본 놀이만 놀게 한 정책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 놀이로 윷놀이·팽이치기·연날리기 등이 보편적이지만 조선 후기까지 세종 지역 사람들의 놀이에는 승경도·쌍육·저포·고누·장치기·시패 등도 있었다.
일본이 우리 말과 글을 못 쓰게 한 1940년대에 세종 지역의 놀이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1940년대에 일본이 아이들에게 놀게 한 일본 놀이는 고무줄 놀이, 딱지 치기,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우리 집에 왜 왔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땅따먹기, 비석치기, 사방치기, 오재미 던지기, 박 터뜨리기, 시소, 대문놀이, 꼬리 따기 등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래 놀이가 거의 여기에 해당한다.
[놀이의 유래와 평가]
세종 지역에 전하여 내려오는 민속놀이는 사라진 것과 현재까지 놀고 있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현재 놀고 있는 것은 전통 놀이와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 말살 정책으로 일본이 강제로 놀게 한 일본 놀이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사라진 우리 전통놀이 중 대표적인 놀이로 승경도, 쌍육, 장치기, 시패, 저포를 들 수 있다.
승경도는 조선 시대 벼슬을 가지고 노는 놀이로, 일명 양반 윷놀이라 칭한다. 조선 전기 하륜(河崙)[1347~1416]이 고려시대 관제를 조선 시대 관제로 재정비하였다. 승경도는 새로 만든 많은 벼슬 이름을 백성들이 쉽게 익히게 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놀이이다.
쌍육은 백제시대에 중국을 통하여 들어와 조선시대 세종 때에는 정소공주가 병이 났는데 부마가 내시와 하루 종일 쌍육놀이만 벌을 받았다 하고, 북쪽의 여진족과의 싸움도 쌍육판으로 해결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또 성종 때에는 입직 당직자가 쌍육놀이를 하다가 난로를 발로 차 불을 내자 방화한 자들을 국문하고 궁궐에서는 쌍육 놀이를 금하였다는 기록도 전한다.
장치기는 긴 나무 막대로 공을 치는 놀이로, 축구처럼 양 진영이 11명씩 대문에 나무공을 넣는 것이다. 현대의 골프와 하키 모습이 들어 있는 야외 놀이이다. 세종은 세자 시절에 아버지 태종의 권유로 ‘타구’ 놀이를 하였는데 오늘날 골프와 유사한 놀이이다.
일본 놀이에는 여자를 잡아가는 일명 인신매매놀이로 우리집에왜왔니·대문열기·꼬리따기 등 비교육적인 놀이가 있고, 땅따먹기·사방치기·진놀이·가위바위보·오재미·박터뜨리기 등 전쟁 관련 놀이가 있다. 일본 풍습이 들어가 있는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여우야여우야뭐하니 등이 있으며, 우리 문화를 말살시키는 비석치기 등이 있다. 그나마 일본이 허락한 우리 전통 놀이 대부분은 조선시대 신분 사회에서 평민이나 천민들이 놀았던 놀이, 즉 팽이치기·윷놀이·그네타기·연날리기 등이었는데 해방 후 우리나라 전통 놀이의 주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