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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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燕岐縣 |
영어공식명칭 | Yeongihyun |
이칭/별칭 | 두잉지현,연기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근대/개항기 |
집필자 | 안경희 |
[정의]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일대의 옛 행정 구역.
[개설]
연기현(燕岐縣)은 조선 건국 이후 1413년(태종 13) 전국적인 지방제도 개편 때 제정되어 조선 말까지 유지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현(縣)을 군(郡)으로 일괄 개칭할 때 연기군으로 개칭되어 유지되다가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세종특별자치시에 흡수·폐지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1413년(태종 13)의 전국적인 지방제도 개혁, 즉 군현제 개혁은 고려 후기 이래 무질서하게 승격된 지방 행정구역의 읍격(邑格)을 각 군현의 호구(戶口) 및 전결수(田結數)에 따라 합리적으로 재조정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대몽전쟁(對蒙戰爭) 이후 감무제(監務制) 발달과 민중 성장을 발전적으로 수렴하여 속현이나 향·소·부곡 등 차별적인 대우를 받던 행정 단위를 해소하고, 전국적으로 8도관찰사제(八道觀察使制)에 입각한 일원적인 군현 조직을 창출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지방 통치체계의 측면에서 농업 생산에 바탕을 둔 유교적인 중앙집권 국가의 하부적 기반을 완비해 나가기 위한 제도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여도비지(輿圖備志)』, 『대동지지(大東地志)』, 『호서읍지(湖西邑誌)』, 『대전회통(大典會通)』 등 각종 지리지와 읍지 등에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충청도 연기현(燕岐縣) 조에는 “본래 백제의 두잉지현(豆仍只縣)인데, 신라 때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연산군(燕山郡)의 영현(領縣)을 삼았고, 고려 현종(顯宗) 9년 무오에 청주(淸州) 임내에 붙였다가, 명종(明宗) 임진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다. 그 뒤에 목천 감무(木川監務)로 연기를 겸임하게 하다가, 본조 태조(太祖) 정축에 다시 두 현을 갈라서 각기 감무를 두고, 태종(太宗) 갑오에 전의(全義)에 병합하여 전기(全岐)로 고쳤다가, 병신에 다시 연기 현감을 두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청도 연기현(燕歧縣) 조에는 건치 연혁으로 “본래 백제의 두잉지현(豆仍只縣)이었는데, 신라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서 연산군(燕山郡)의 속현으로 삼았고, 고려 현종(顯宗) 때에 청주에 예속시켰으며, 명종(明宗)이 감무를 두었다가 뒤에 다시 목주 감무(木州監務)로 겸임하게 하였다. 본조 태종 6년에 다시 나누어 감무를 두었다가 14년에 전의와 합쳐서 전기(全歧)라 고쳐 불렀고, 16년에 다시 나누어 현감으로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건치 연혁을 비롯하여 관원, 군명, 성씨, 픙속, 산천, 토산, 누정, 학교, 역원, 불우, 사묘, 고적, 명환, 인물, 제영 등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내용]
백제 초부터 백제 강역에 속하여 376년(근구수왕 2)에는 적현성(赤峴城)이었고, 그 뒤 두잉지현(豆仍只縣)이었다. 백제 말에는 주류성(周留城)이었다는 설도 있다.
삼국통일 후인 757년(경덕왕 16)에 연기현(燕岐縣)으로 고치고 연산군(燕山郡)의 영현으로 삼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동쪽으로 청주(淸州) 경계까지 15리와 문의현(文義縣) 경계까지 15리, 남쪽으로는 공주 경계까지 13리, 서쪽으로는 같은 주 경계까지 13리, 북쪽으로는 전의현(全義縣) 경계까지 26리 그리고 서울과의 거리는 2백 87리인 지역으로 소개하고 있다.
[변천]
고려 1018년(현종 9) 청주목(淸州牧)의 속현(屬縣)이 되었고, 고려 1172년(명종 2)에는 감무(監務)를 두어 다스리게 하였으나 뒤에 목주(木州)[현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면] 감무가 와서 겸임하도록 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후 1397년(태조 6)에 다시 목주와 나누어 각각 감무를 두었고, 1414년(태종 14) 전의(全義)[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병합시켜 전기(全岐)라 하였다가 1416년(태종 16) 다시 나누어 현감(縣監)을 두었다.
1680년(숙종 6) 연기현은 문의(文義)에 병합되었으나 1685년(숙종 11)에 다시 분리, 복구되었다. 1895년(고종 32) 공주부 연기군으로 개편되었고, 1896년(고종 33)에는 충청남도 연기군이 되었다. 1909년 연기군은 전의면 일원과 공주군 일부를 편입하여 7개 면을 두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전의는 연기군에 병합되었다.
[의의와 평가]
연기현의 변천 과정과 행정 구역 변동을 통하여 세종특별자치시 역사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