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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972
한자 權悰
이칭/별칭 희안(希顔)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신채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54년연표보기 - 권종 출생
몰년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권종 사망
활동 시기/일시 1592년 - 권종 금산 군수 제수
추모 시기/일시 1605년 - 권종 금산에 순의비 건립
추모 시기/일시 1605년 - 권종 이조 판서 추증
추모 시기/일시 1710년 - 권종 포천에 충신 정려 건립
추모 시기/일시 1711년 - 권종 충민 시호 받음
출생지 권종 출생지 - 경기도 포천시 소흘면 고모리
묘소|단소 권종 묘소 - 경기도 포천시 소흘면 고모리
사당|배향지 권종 정려각 - 경기도 포천시 소흘면 고모리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안동(安東)
대표 관직 이조 판서

[정의]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희안(希顔). 아버지는 중림 찰방을 지낸 권지(權軹)이고, 어머니는 감역(監役) 박언(朴堰)의 딸인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부인은 임효종(林孝宗)의 딸인 진천 임씨(鎭川林氏)로 슬하에 권현(權睍), 권춘(權春), 권경(權暻), 권준(權晙) 네 아들을 두었다. 권율(權慄)[1537~1599]이 사촌형이다.

[활동 사항]

권종(權悰)[1554~1592]은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소흘면 고모리에서 출생하였다.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돈령부 직장을 거쳐 재령 현감이 되었다. 그 뒤에도 여러 군현의 수령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 3월 금산 군수로 부임하였는데, 4월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였다. 광주 목사로 있던 사촌형 권율과 서로 연락하여 국난에 대처할 것을 기약하고, 먼저 군사를 인솔하여 전주로 갔다. 그러나 관찰사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를 들어 거느린 군사를 빼앗고 군량 관리의 임무만을 맡게 하였다.

6월 20일 왜적이 금산에 이르자 권종은 병졸 수백 명을 모집하고 제원 찰방 이극경(李克絅)과 합세하여 적을 기다리면서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조헌(趙憲)에게 격문을 보내 지원을 요청하였다. 그 달 22일 왜적이 대거 내습하자 전투를 벌였으나 다음 날 전투 끝에 아들 권준과 함께 순절하였다. 군민이 충의에 감복하여 시신을 거두고 포천 선영에 장사지냈다. 후에 선조가 이 사실을 전해 듣고 탄식과 애도를 표하고 정려를 명하였다.

[묘소]

묘는 경기도 포천시 소흘면 고모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경기도 포천시 소흘면 고모리에 정려각이 세워져 있다. 1605년(선조 38) 이조 판서에 추증되었고, 금산에 순의비가 세워졌다. 1710년(숙종 36) 고향 마을에 충신 정려가 내려졌으며, 이듬해 충민(忠愍)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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