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3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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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赤裳山史庫址遺構 |
이칭/별칭 | 무주 적상산 사고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산성로 960[북창리 산117-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명일 |
건립 시기/일시 | 1614년 - 적상산 사고 실록전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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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641년 - 적상산 사고 선원전 창건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72년 - 적상산 사고 개수[1872]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02년 - 적상산 사고 개수[1902] |
폐지 시기/일시 |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 적상산 사고 폐지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7년 - 적상산 사고지 원광 대학교 마한·백제 문화 연구소에서 발굴 조사 실시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2년 - 적상산 사고지 적상댐 건설로 수몰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2년 - 적상산 사고지 현 위치로 이전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5년 6월 20일 - 적상산사고지유구 전라북도 기념물 제88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적상산사고지유구 전라북도 기념물 재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6년~1998년 - 적상산 사고 건물 복원 시작·완료 |
소재지 | 적상산사고지유구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산성로 960[북창리 산117-5] |
성격 | 사고지 |
지정 면적 | 6,083㎡ |
소유자 | 대한 불교 조계종 안국사 |
관리자 | 전라북도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기념물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고지.
[변천]
사고(史庫)란 고려 말기부터 조선 시대까지 실록 등을 비롯하여 나라의 중요한 서적을 보관하였던 곳이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내사고인 춘추관(春秋館)을 비롯하여 충주 지역과 전주 지역, 성주 지역 등 네 곳의 사고가 운영되었는데, 임진왜란으로 인해 전주 지역을 제외한 모든 사고가 소실되었다. 이에 1603년(선조 36)~1606년(선조 39)에 전주 사고본을 바탕으로 정본 3부와 초본인 교정본 1부 등 5부를 만들어 내사고인 춘추관을 비롯한 강화 지역의 마니산(摩尼山), 태백산(太白山), 오대산(五臺山), 묘향산(妙香山) 등 다섯 곳에 사고를 설치해 보관하였다.
묘향산 사고는 당시 북방에 있던 후금(後金)의 위협이 고조됨에 따라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에 1610년(광해군 2)에 조정에서 관리를 보내 적상산(赤裳山)의 지형을 살피고 산성으로 수축하였으며, 1614년(광해군 6) 산성 내에 실록전을 건립하였다. 이후 묘향산에 있던 실록을 적상산으로 옮겼고, 1641년(인조 19)에 선원전을 건립하고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을 봉안함으로써 완전한 사고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때 봉안된 서책의 수는 모두 5,514책이었다고 한다.
적상산 사고(赤裳山史庫)는 1872년(고종 9)과 1902년(고종 39)에 개수(改修)되어 명맥을 유지하다가, 1910년(순종 4) 국권 피탈 이후 봉안되었던 실록이 규장각(奎章閣)으로 옮겨지면서 폐지되었다. 이후 안국사(安國寺)의 불구(佛具)를 옮겨 와 법당으로 사용하다가 선원전은 안국사 경내로 이전되었고, 실록전을 비롯한 건물들은 모두 유실되었다. 1992년에 적상산 사고지 일대가 적상댐 건설로 인해 수몰됨에 따라 그 터가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으며, 1996년부터 1998년에 걸쳐 건물이 복원되었다.
[위치]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초리 마을에서 괴목로를 따라 북쪽으로 800m가량 가면, 무주 불교 대학을 못미쳐 적상산성(赤裳山城)과 안국사 등으로 진입할 수 있는 도로와 만나는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적산산성 방면으로 9.5㎞가량 오르면 적상호의 서변을 지나 곧바로 적상산 사고지(赤裳山史庫址)에 다다른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87년에 한국 전력 공사에서 시행한 적상댐 건설 공사의 일환으로 원광 대학교 마한 백제 문화 연구소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실록전과 선원전을 비롯한 4동의 건물 터가 확인되었으며, 17세기~20세기 초의 암막새를 비롯하여 다량의 백자와 평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현황]
현재 정면 3칸, 측면 3칸의 선원전과 실록전 건물 2동이 복원되어 있으며, 그 주변은 담장이 둘러져 있다. 면적은 6,083㎡이다. 1995년 6월 20일에 전라북도 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되면서 체계적인 보존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적상산 사고는 비록 본래의 위치에서 이전 복원되기는 하였지만,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 하나로서 그 역사적 가치가 대단히 크다. 또한 정식 발굴 조사를 통해 건물 터의 구조 및 현황이 어느 정도 밝혀졌기 때문에 조선 시대 건축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적상산의 빼어난 경관을 바탕으로 안국사와 적상산성의 유서 깊은 문화 유적과 인접해 있어 무주군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