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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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學秀 |
영어음역 | Hwang Haksu |
이칭/별칭 | 필옥(弼玉),몽호(夢乎)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구완회 |
[정의]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필옥(弼玉), 호는 몽호(夢乎).
[활동 사항]
황학수(黃學秀)[1879~1953]는 대한제국 무관학교를 졸업한 후 육군 부위로 근무하던 중 1907년(순종 1)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귀향하여 동명학교를 설립하는 등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3·1 운동 이후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참여한 후 국내 조사원에 임명되어 제천 지방의 조사를 담당하였으며, 1920년 1월에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 입법 기관인 임시 의정원 충청도 의원에 선출되었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 정부군무부 비서국장에 임명됨과 동시에 임시 의정원 군무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다가 외교 중심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 노선에 회의를 품고 사직한 후 베이징으로 옮겨 갔다. 베이징에서 신숙(申肅)·박용만(朴容萬) 등 무장 투쟁론자들과 함께 군사 통일 회의를 열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공박하기도 하였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진로를 둘러싸고 국민 대표 회의가 열렸을 때는 국민위원회 후보 위원에 선출되기도 하였다.
1927년 만주로 건너간 후에는 신민부(新民府)에 참여하여 참모부위원장으로서 중앙집행위원장인 김좌진과 함께 항일 무장 투쟁을 주도하였다. 만주 지방의 독립운동 단체를 통일하기 위한 삼부(三府) 통합회의에 김좌진과 신민부 대표로 참가하였고, 혁신의회(革新議會)가 새로 구성되자 군사위원장에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30년 만주에서 창당된 한국독립당 주요 회원으로 활약하였고, 당군(黨軍)으로 한국독립군이 조직되고 난 후 부사령관으로 활약하였다. 일제의 만주 침략이 본격화한 후로는 중국 본토로 이동하여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과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 등 정당에 관여하였으며, 1938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군사위원에 임명되었다.
특히 1940년 광복군이 창설되었을 때는 광복군 총사령부 부관장(副官長)에 임명되었고, 시안[西安]에서 총사령대리로 활약하였다. 1942년 이후에는 군사위원회 위원, 생계부장 등 요직을 역임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여 귀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