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9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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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蔡燦 |
영어음역 | Chae Chan |
이칭/별칭 | 백광운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완회 |
[정의]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의병장이자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채찬(蔡燦)[?~1924]은 일명 백광운(白狂雲)이라 불렸다.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는 일이 이어지자 의병대장 이강년(李康秊)을 좇아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켜 여러 해 동안 소백산 일대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1910년 국권 피탈 후에는 만주로 망명하여 퉁화현[通化縣]에 있는 신흥학교(新興學校)를 졸업한 뒤 동창생 신용관(申容寬) 등과 합니하(哈泥河) 산골에 백서농장(白西農場)을 경영하면서 둔전제(屯田制)를 시행하여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3·1 운동 후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입한 뒤 그 산하에 의용군 제1 중대를 편성하여 국내외에서 일제의 행정 기관을 파괴하고 친일파를 숙청하였다.
1920년 5월 강계(江界)에 출동하여 문옥면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이해 7월 이창덕(李昌德)을 시켜 후창(厚昌)에 출동하여 친일파 악질 군수 계응규(桂膺奎)를 사살하는 등 많은 전과를 거두었으며, 1921년 관전현(寬甸縣) 일대에서 침입하는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계속하여 관전·퉁화·임강(臨江)·유하(柳河) 등 각 현(縣)에 출동하여 일제의 앞잡이 단체인 일민단(日民團)·보민회(保民會)·강립단(强立團) 등을 습격하여 소탕함으로써 독립운동의 장애물을 제거하였다.
1922년 6월 김창환(金昌煥)과 남만통일회(南滿統一會)를 조직한 뒤 제1 중대장에 취임하여 강계에 있는 주재소를 습격하였고, 8월 남만주 여러 곳에 분산된 단체를 합쳐 통의부(統義府)가 설치되자 제1 중대장으로 활약하였다. 얼마 후 전덕원(全德元) 등이 이탈하여 의군부(義軍府)를 조직하는 등 내분이 일었으나,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직할하는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義府)를 조직하여 참의장이 되어 더욱 활발한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결사대를 파견하여 국경 순시 중인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를 저격하기도 하였다. 1924년 통의부 문학빈(文學彬)의 부하 백병준(白炳俊)·백세우(白世雨) 등에게 피살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