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7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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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堤川博約齋 |
영어음역 | Jecheon Bagyakjae |
영어의미역 | Bagyakjae Shrine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두학동 23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형래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3년 11월 5일 - 제천 박약재 충청북도 기념물 제87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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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제천 박약재 충청북도 기념물 재지정 |
현 소재지 | 충청북도 제천시 두학동 231 |
성격 | 강당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진주 강씨 종중 |
관리자 | 강성웅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북도 기념물 |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두학동에 있는 진주 강씨 문중에서 세운 조선 후기의 강당.
[위치]
제천 시내에서 지방도 522호선을 타고 어상천 방면으로 가다 보면 두학초등학교 지나 검은돌[玄岩]마을이 나온다. 검은돌마을 앞을 흐르는 장평천을 건너 마을길을 따라 가면 상풍마을이다. 마을 초입에 ‘제천 박약재’ 안내판과 진주 강씨 유허비가 있고, 이곳으로부터 좌측으로 난 산길을 따라 약 50m 올라가면 제천 박약재(博約齋)가 위치하고 있다.
[변천]
제천 박약재는 진주 강씨 문중에서 자녀 교육을 목적으로 조선 중기에 처음 세웠다고 전한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강유(姜瑜)가 수학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으며, 1910년경 중건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1993년 11월 5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8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형태]
제천 박약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집이다. 평면 구성은 중앙의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온돌방을 두었다. 반 칸의 앞퇴를 두었는데, 서쪽 방 앞의 툇마루는 1자 정도 높게 설치하고 밑에는 함실아궁이를 두었다. 각 방의 창호는 모두 띠살문으로 하였는데, 대청마루 전면에는 궁판이 있는 4분합 띠살문을 설치하였다.
어칸 문인방 상부에 ‘제천 박약재(博約齋)’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조선 말기의 유학자이며 의병장인 유인석(柳麟錫)의 친필이다. 건물 구조는 1단의 낮은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그 위에 방형 기둥을 세웠다. 가구 형식은 1고주 5량가의 납도리집이다.
[현황]
제천 박약재는 낮은 야산 중턱에 북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전면에 일각문을 세우고 주위로 막돌 담장을 둘렀다. 제천 박약재 앞에는 가운데 섬을 둔 원지(圓池)를 조성하였다. 마을 초입에는 2004년에 세운 진주 강씨 유허비가 있다. 진주 강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어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나, 제천 박약재 뒤에서 동북쪽으로 태백선 제천~쌍용 간 복선 전철 공사 구간으로 송학터널 공사가 진행 중에 있어 교육 공간인 강당으로서의 입지는 많이 훼손되었다.
[의의와 평가]
정묘호란 때 척화를 상소한 강유가 이곳에서 수학하였으며, 한말의 의병장 운강 이강년(李康秊)의 전투 기록을 정리한 「창의사실기」를 박정수(朴貞洙), 강순희 등이 편찬한 역사적인 장소이다. 또한 진주 강씨가 이곳에서 문중 자녀들을 교육하여 제천 지역의 유력 사족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이 되는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