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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613
한자 白蓮寺
영어음역 Baengnyeonsa
영어의미역 Baengnyeonsa Templ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명암로5길 414[명암리 325]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김인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수|중창 시기/일시 1577년연표보기
중수|중창 시기/일시 1587년연표보기
중수|중창 시기/일시 1798년연표보기
중수|중창 시기/일시 1910년연표보기
개칭 시기/일시 1916년연표보기
중수|중창 시기/일시 1916년연표보기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16년연표보기
중수|중창 시기/일시 1947년연표보기
중수|중창 시기/일시 1957년연표보기
중수|중창 시기/일시 1959년연표보기
중수|중창 시기/일시 1962년연표보기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79년연표보기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4년연표보기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5년연표보기
현 소재지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 325 지도보기
성격 사찰
창건자 의상
전화 043-653-4996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 소속 사찰.

[개설]

백련사는 전하는 말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 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증명할 만한 유물이나 문헌 기록은 없다. 사찰 내에서 수습되는 유물로 보아 조선 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여겨진다.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 감악산에 위치한다. 가파른 자락에 높은 석축을 쌓아 사역을 조성하였는데, 경내에는 대웅전, 삼성각, 요사채의 건물과 현대에 새로 조성한 5층석탑, 석등 2기, 보제문이 있다.

[건립 경위 및 변천]

백련사감악산 정상부 가까이에 있는 사찰로, 전하는 바에 의하면 662년(문무왕 2)에 의상조사(義湘祖師)가 백련지(白蓮地) 동쪽에 소암자(小庵子)를 창건하고 백련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 후 692년(효소왕 원년)에 큰 비로 인하여 산사태가 발생하여 연지와 사찰이 매몰되었고, 이것을 819년(헌덕왕 1)에 무착조사가 중창하였다.

1358년(공민왕 원년)에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중수하였으며, 1570년대 초반 벽운(碧雲)과 조당(祖唐)이 윤한필(尹漢弼)·김유량(金有亮)과 함께 중창하고, 1577년(선조 10)에 자운(慈雲)이, 1587년(선조 20)에는 벽운이 각각 중수하였다. 1798년(정조 22) 해련(海蓮) 처봉선사(處峰禪師)가 중수하였다. 그 후 산 이름이 감악산이라 하여 감악사(紺岳寺)라 개칭하였다.

1910년(순종 4)에 응파(應波) 욱일대사(旭日大師)가 중수하고 1916년 화재로 전부 불에 타 버렸고, 같은 해 10월 주지 윤인선(尹仁善)이 현 위치에 중창하고 백련사라 개칭하였다. 1947년 태순이 중수하였고, 1950년 6·25 전쟁으로 파손된 것을 1957년에 중건하였다. 1959년과 1962년에 또 한 차례 중수되었으며, 1976년에 현재 주지 일운(一耘) 담월(潭月)이 주석하면서 지금의 가람을 이루었다.

이후 1977년 돌축대를 쌓고 1979년 법당을 지었으며, 1981년에 무염당을, 1983년에는 보응문을 신축하여 가람을 중창하였다. 근래에는 축대는 물론 비림을 조성하고, 2004년에 보응문을, 2005년에 무염당을 새로 신축하였으며, 극락전의 아미타여래좌상을 문화재로 지정하여 전통 사찰로서 면모를 갖추었다.

그러나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에 따르면, 상부연간(祥符年間)[1008~1016]에 신승(神僧) 자언(自言)이 초당(草堂)을 지어 연화암(蓮花庵)이라 하였고, 1116년에는 하의(荷衣)라는 도인이 서북쪽에서 와서 암자에 기거하였다고 한다.

또한 1552년 여름에는 계림(鷄林) 신승(神僧) 학륜(學輪)이 연화(蓮花)라고 이름 지었고, 만력 연간(萬曆年間)[1573~1620]에 장로 벽운(碧雲)과 윤한필(尹漢弼)이 중창하였다는 것이다. 이 중창기는 1588년에 사명대사(四溟大師)가 짓고, 대수(大樹)가 썼으며, 1854년에 찬홍(讚弘)이 다시 썼다. 이를 토대로 할 때 전해지는 이야기는 사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찰 주변에서 수습되는 유물과 부도 또한 조선 시대에 조성된 것이므로 『조선사찰사료』의 내용과 어느 정도 부합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사찰의 동남쪽에 있는 부도를 무착조사의 것이라고 하나 부도의 조성 연대가 조선 시대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사실은 정확한 근거가 없다고 하겠다. 따라서 사찰 측이 전하는 말과 『조선사찰사료』의 조선 시대 이전에 해당하는 기록은 위작된 내용을 재인용하면서 생긴 오류라고 할 수 있다.

[현황(조직, 시설 현황 포함)]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 사지 앞길에 나 있는 길을 따라 감악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도로가 사찰로 진입하는 길이다. 감악산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과 충청북도 제천시를 경계 짓는 산이다. 사역(寺域)은 남향이며 동서 77.5m, 높이 5m의 석축 위에 조성하였다. 사역의 뒤로는 감악산이 솟아 있는데 정상부에는 감악산성이 있다.

일주문이자 요사채인 보응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극락전을 중심으로 중정을 만나게 된다. 중정에는 오층석탑과 석등을 중심으로 대웅전이 남향하고 있으며, 좌우로 주지의 거처인 무염당과 보응문이 ㄷ자형의 구조로 배치되어 있다. 이외 보응문 외곽으로 삼성각이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무염당 뒤쪽으로 거사들의 요사채와 공양간이 있다. 사역 내에는 1960~1970년대에 건립한 대웅전과 강당, 삼성각, 요사채가 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979년 중건되었다.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1962년에 세워졌다. 축대 남쪽으로는 넓은 계곡이 있는데 이곳이 연지(蓮池)였다고 하는데, 한 길이 넘는 갈대가 숲을 이루고 있는 습지대가 전개되고 있다.

사역 내에서는 조선 시대의 기와류와 토기편, 백자편이 수습되었다. 가람은 오솔길을 따라 축대를 지나 청정 약수가 있는 수곽과 만나게 되며, 이곳을 지나 천연 암벽을 치석한 아치형의 석문을 통과하면 가람의 입구에 들어서게 된다. 현재 주지 1명, 신도 수는 대략 80명이며, 별도의 신도 조직은 없다.

[관련 문화재]

관련 문화재로는 충청북도 유형 문화재 제217호로 지정된 제천 백련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堤川白蓮寺木造阿彌陀如來坐像), 대웅전 불좌상, 대웅전 신중탱(神衆幀), 삼성각(三聖閣) 독성탱(獨聖幀)·산신탱(山神幀) 등이 있으며, 사찰 동남쪽에 백련사 부도가 있다.

[의의와 평가]

 백련사는 감악산성과 인접해 있고, 강원도 원주시와의 경계에 위치하는 입지 조건 등을 고려하면, 사찰의 지정학적, 군사적 역할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조선 후기 불상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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