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7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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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福淳 |
영어공식명칭 | Park Bokso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성미 |
출생 시기/일시 | 1888년 - 박복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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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박복순 여산 순사분파소 습격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6월 18일 - 박복순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10년형 언도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박복순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
출생지 | 익산 - 전라북도 익산시 |
활동지 | 여산 -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활동 사항]
박복순(朴福淳)[1888~?]은 전라북도 익산군 두남면 장정리 출신으로 도기를 제조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었다. 1907년 일제가 정미조약(丁未條約)을 체결하고 군대를 해산시키는 등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구체화하자 국권 회복을 위해 삼남의병대장 유지명(柳志明) 부대에 합류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박복순은 유지명의 의진 소속 동료들과 함께 1907년 여산[현 익산시 여산면] 순사분파소(巡査分派所)를 습격하여 총기를 탈취하였고, 여산군 공촌면 봉동의 민가에서도 화승총 등 무기를 취합하였다. 이후 의병 활동을 이어 가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09년 6월 1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10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대한민국 정부는 박복순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