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7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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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秉鎬 |
영어공식명칭 | Kim Byungho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정민 |
출생 시기/일시 | 1865년 1월 13일 - 김병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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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8일 - 김병호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4월형 언도 |
추모 시기/일시 | 2013년 - 김병호 대통령표창 수훈 |
출생지 | 조정리 - 충청남도 공주군 목룡면 조정리 |
거주|이주지 | 호암리 -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호암리 |
활동지 | 익산 - 전라북도 익산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병호(金秉鎬)[1865~?]는 1865년 1월 13일 충청남도 공주군 목룡면 조정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익산으로 이주해 낭산면 호암리에 거주하고 있던 김병호는 1919년 3월 2일에 천도교 이리교구장 이중열(李仲悅), 정대원(丁大元)·이유상(李有祥) 등의 천도교인들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에 대해 논의하고 여산읍의 연락과 동원 책임을 맡았다. 이후 이중열로부터 건네받은 「독립선언서」를 익산군 여산읍에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김병호는 1919년 3월 28일에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4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13년 대한민국 정부는 김병호의 공적을 기려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