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376
영어공식명칭 Kiln Site
이칭/별칭 도요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석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경상남도 함안군

[정의]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토기·자기·기와 등을 굽는 가마가 있던 터.

[개설]

가마터란 각종 토기(土器)와 도기(陶器), 자기(瓷器) 등을 넣고 고온에서 소성하였던 구조물인 가마가 있었던 터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가마는 한뎃가마[노천요(露天窯)]와 굴가마[등요(登窯)]로 구분된다. 한뎃가마는 야외에서 연료와 토기 등을 함께 야적해 놓고 불을 지피는 원시적인 형태의 가마이며,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인 토기를 제작하는 데 주로 이용되었다.

[토기 가마터]

토기는 신석기 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렵, 채집 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 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 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초기에는 한뎃가마를 이용하여 토기를 제작하였으며, 삼국 시대에는 중국의 도기 제작 방식의 영향을 받아 굴가마를 이용하여 1,200℃ 이상의 고온에서 토기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토기는 보통 500~1,000℃ 이하에서 구워지지만 일반적으로 통일 신라 시대 이후에 출현하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고 부른다.

함안군의 토기 가마터는 지표 조사와 발굴 조사로 확인되었는데 모두 삼국 시대의 가마터이다. 현재까지 함안군 가야읍에서 2개소, 범수면에서 8개소, 군북면에서 2개소, 대산면에서 3개소 등 15개소가 확인되었으며, 가야읍 묘사리 토기 가마터법수면 윤내리 토기 가마터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역은 천제산에서 북으로 완만하게 뻗어 내린 능선이 함안군 가야읍 묘사리법수면 윤내리 일대를 감싸고 있어 토기 생산에 최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

[자기 가마터]

도자기란 일반적으로 흙으로 빚어 높은 온도의 불에서 구워 낸 그릇이나 장식물을 지칭한다. 1,300℃ 이하의 온도에서 구운 도기와 1,300~1,500℃에서 구운 자기로 나눌 수 있으며 도기와 자기를 통틀어 도자기라고 한다. 1454년(단종 2)에 완성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함안군 편에 대산리에 자기소(瓷器所)가 1개소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는 확인되지 않는다. 지표 조사 등을 통해 확인된 자기 가마터는 함안군 대산면에 8개소, 칠북면에 2개소, 군북면칠원읍에 각각 1개소로 총 12개소가 있다. 대부분 조선 시대의 가마터로 추정된다.

[기타]

토기와 자기 가마터 외에 함안 지역에는 기와 가마터와 옹기 가마터가 분포하고 있다. 기와는 지붕을 덮는 데 쓰이는 건축 부재로 점토를 재료로 하여 모양을 만든 뒤 800~1,000℃의 가마에서 구워 낸 것이다. 함안 지역에서 확인된 기와 가마터는 가야읍에 2개소, 함안면에 1개소, 군북면에 3개소, 대산면에 1개소, 칠서면에 1개소, 칠북면에 1개소, 칠원읍에 2개소, 산인면에 2개소로 거의 전역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옹기는 일상생활에서 실제 사용된 생활 도구로서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말한다. 함안군에서 확인된 옹기 가마터는 11개소로 대부분 조선 시대에 운영되던 것이고 3개소가 일제 강점기의 가마터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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