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하동문화대전 > 하동향토문화백과 > 삶의 내력(역사) > 전통 시대 > 조선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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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경상남도 하동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도 아직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규모가 작은 속읍(屬邑)이 적지 않게 존재하였다. 태종 대에는 이런 고을들을 두세 개씩 통합하여 수령을 파견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동현과 남해현은 이미 수령이 파견되어 있는 고을이었지만, 1414년(태종 14) 8월 두 고을을 합쳐 하남현(河南縣)으로 개칭하였다가 이듬해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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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년부터 1895년까지 경상남도 하동군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조선 시대에 들어 하동의 읍치는 자주 변경되었으나, 읍격(邑格)에는 큰 변화가 없이 이어져 오다가 18세기 접어들어 읍의 규모와 읍격에 변화를 겪었다. 1702년(숙종 28) 하동 읍민들이 섬진강 일대를 관문으로 삼을 것을 호소하자, 진주목의 악양·화개·진답·적량의 4개 면을 임금의 윤허를 받아 하동으로 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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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부터 1704년까지 경상남도 하동군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하동현은 태종조에 현감을 둔 이래 숙종조에 하동도호부로 승격되기 이전까지 지금의 하동 지역 일부의 행정상 구역이다. 고려 시대 이래 현은 현령이 다스리는 고을로 행정상 편제되어 있었으나, 실제로 현령이 파견된 고을은 많지 않았고 대부분 이웃한 주읍(主邑)의 속현으로 존재하였다. 고려 후기 이래 점차 속현에도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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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4~1415년 경상남도 하동군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고려 말 왜구의 침입으로 남해나 거제 같은 곳은 주민이 살 수가 없어 본거지를 떠나 살게 되면서 고을로서의 면모를 유지할 수 없었다. 당시 남해 주민들은 진주의 대야천부곡(大也川部曲)에 깃들어 살게 되었는데, 이로 말미암아 남해가 피폐해지자 태종 대에 일시적으로 하동과 남해를 하나의 현으로 통합하여 고을 이름을 하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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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정감록(鄭鑑錄)』을 사상적 틀로 이용하여 역모를 도모한 사건. 17세기 이후 양반 지배층 사이의 권력 다툼이 더욱 심해지자 숙종 때에는 붕당 간의 대립이 격화되어 정국(政局)이 자주 바뀌었다. 1728년(영조 4) 무신란(戊申亂)이 실패하자 그 가담 세력들 중 많은 이가 지리산으로 몸을 피하였으며, 정조의 친정 체제 확립 과정에서 홍국영(洪國榮)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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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인좌(李麟佐) 등의 소론을 중심으로 일어난 정권 탈취 사건. 경상남도 하동군의 여러 관리가 진압 공신으로 등재되었다. 조선 경종(景宗) 연간에 소론은 왕위 계승을 둘러싼 노론과의 대립에서 일단 승리하였으나, 노론이 지지한 영조(英祖)가 즉위하자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소론의 과격파들은 영조가 숙종(肅宗)의 아들이 아니며 경종의 죽음에 관계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영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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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하동군 두치장(斗峙場)에 괘서가 내걸린 사건. 조선 후기 사회 변화 속에서 사회를 개변시키거나 조정을 뒤엎으려는 세력들에 의해 여러 가지 비기(秘記)·도참설(圖讖說)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런 설을 퍼뜨리면서 세력을 규합하여 변란을 일으키려는 세력들도 등장하였다. 예부터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 지리산은 종종 이에 이용되었는데, 하동은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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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경상남도 하동군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 4월 왜적이 수십만이라는 많은 군사력으로 부산에 침입하여 이후 7년간 벌어진 전쟁으로, 여기에는 조선군 이외에 명나라 군대도 동원되어 동아시아의 국제적인 전쟁으로 전개되었다. 1. 진주성 싸움 1592년 4월 왜적은 수십만이라는 많은 군사력으로 부산에 침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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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지역에서 고려 시대부터 1894년까지 운영되었던 교통·통신 및 숙박 시설. 역원(驛院)은 역관(驛館), 역참(驛站), 우역(郵驛)이라고도 한다. 역은 역마(驛馬)와 역로(驛路)를 관리하고, 공무로 지방을 다니는 관리에게 역마와 숙식 등을 제공하는 곳을 말한다. 우리 역사에서 역원제의 시초는 487년(소지왕 9) 신라 소지왕(炤知王) 대 우역(郵驛)의 설치에서 찾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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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역(驛)은 중국의 수·당 제도를 모방하여 487년(소지왕 9) 3월에 시작되었다고 하며, 조선 시대 조창(漕倉)과 운조(運漕)를 담당한 대표적 교통 기관이다. 고려 시대의 참역제(站驛制)는 전국의 역로의 계통을 22도로 나누었다. 그중 하동은 산남도(山南道)에 속하였고, 산남도에는 28참역(站驛)이 있었다. 당시 마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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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양포리에 설치된 역참. 양포역(良浦驛)은 1462년(세조 8) 역로 정비 때 소촌도(召村道) 역승이 관할하는 16곳의 역 가운데 하나였다. 양포역은 곤양군에서 남해현까지 효율적인 교통과 통신망의 구축을 목적으로 지금의 하동군 진교면 양포리에 설치된 역참이었다. 『세조실록(世祖實錄)』에 따르면 1462년 8월 5일 병조의 건의로 각 도의 역참을 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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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을 모아 두던 창고. 조창(漕倉)은 조운창(漕運倉)의 줄인 말로 조선 시대 지방의 각 고을에서 국가에 바쳐야 할 세금으로 징수한 곡식 등 세곡을 서울로 운송하기 위하여 해안이나 강변에 설치한 창고이다. 전국에 열 개의 조창이 있었다. 1894년[동학 농민 운동] 이후 조창이 폐지될 때까지 매년 음력 3월 25일부터 5월 15일까지 세곡을 모아 상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