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862 |
---|---|
한자 | 大島-堂山- |
영어의미역 | Village Tutelary Exorcise in Daedo Village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도리 대도마을 |
집필자 | 김성채 |
의례 장소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도리 대도마을 |
---|---|
성격 | 마을 신앙|당산굿 |
의례 시기/일시 | 1월 초 |
신당/신체 | 팽나무|포구나무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도리 대도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을 제사를 지낼 때에 치는 굿.
[개설]
대도마을 당산굿은 대도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무탈하게 1년을 보낼 수 있게 마을 지킴이에게 올리는 의례 때에 풍물놀이를 하며 노는 굿이다. 대도마을은 하동군 금남면 대도리에 있는 섬마을로 ‘띠섬’이라 불렸으며, 근래에 와서는 ‘큰섬’이라 불리고 있다. 대도마을은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인 조선조 숙종 때에 처음으로 개촌되었다고 한다. 장수 이씨 집성촌으로, 전라북도 장수에 뿌리를 두고 남해 섬에 살고 있던 어느 가난한 장수 이씨 부부가 바다에서 섬진강 쪽으로 향하며 조업을 하던 중 갑자기 풍랑을 만나 표류하여 대도에 도착하게 되었다. 부부가 처음으로 대도를 발견하여 이곳에서 터를 닦고 살며 개촌하였다고 한다. 현재 58가구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연원 및 변천]
대도마을 당산굿은 언제부터 지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아마도 개촌 이후 마을을 형성하면서 당산굿을 지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공식적으로 당산굿이 없어지고, 혹 정초 집돌랑이나 선창굿을 지낼 때 매구패를 동반하여 당산굿을 곁들여 지내기도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당산굿을 지내는 곳은 마을 위쪽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위치하는 팽나무이다. 10여 년 전에 태풍으로 팽나무가 넘어져 베어 버린 후 당산목의 뿌리에서 새로 가지가 자라났는데, 여기에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세우고 조경을 하여 공원처럼 꾸민 뒤 새로 당산굿을 모시고 있다. 이곳이 윗당산이며, 마을 중앙 고목의 포구나무가 아랫당산이다. 예전에는 아랫당산에도 금줄을 쳐서 신성시하며 당산굿을 지냈으나 지금은 하지 않는다.
[절차]
대도마을 당산굿은 정초 집돌랑을 칠 때 언제나 제일 먼저 당산굿부터 친다. 특별히 당산굿을 지내기 위해 대도 농악을 동반한 의례 형식은 아니다. 다른 지역에서 보이는 것처럼 제사 음식을 마련하여 제사 형식으로 지내는 것도 아니고, 간단한 음식을 차려 지금부터 마을에서 매구를 친다고 알리는 뜻으로 쇳소리만 내고 당산굿을 한다.
당산굿의 순서는 우선 매구패가 마을 회관에 모여서 옷을 챙겨 입고 난 뒤 질굿을 치면서 이동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당산에 도착하면 술 한 잔과 포 등으로 간단하게 음식을 차려 놓고 일렬로 서서 절을 한다. 다음에 당산목 앞에서 춤굿이나 덧보기 등을 치면서 한바탕 놀면서 마친다. 대도마을의 당산굿은 다른 지역에서 보이는 것처럼 규정된 의례를 갖춘 형태가 아니라 간단한 의식으로 치러진다.
[축문]
전승되는 축문은 없으며, 간단하게 1년 한 해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가정마다 행복을 기원하는 형식으로 구두로 축문을 외운다.
[부대 행사]
대도마을 당산굿은 현재 정초에 마을의 매구패가 집돌랑을 하면서 먼저 치르는 의례로 단독 의례 형식은 아니다. 특별히 부대 행사는 없으며, 집집마다 가정의 안녕을 빌어 주는 집돌랑으로 이어진다.
[현황]
대도마을은 하동군내 60㎞ 하동군 해안선에 자리 잡고 있는 20여 개의 섬 가운데 하나이다. 마을 주민들은 주로 어업을 생업으로 삼고 있으며 일반 어업이 50%, 가두리 양식이 30%, 나머지 20%는 개펄에서 바지락 등을 채취하며 생활한다. 대도마을에는 현재 당산굿도 집돌랑에 포함되어서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이외에 대도마을 선창굿도 행해지고 있다. 대도마을 선창굿은 음력 12월 3일 주민들의 뱃일의 무사 안녕을 빌고, 고기가 많이 잡히도록 염원하는 목적에서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