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4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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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登佛日庵前峯俯窺龍湫鶴湫-李楨- |
영어의미역 | Climbing up the front Hill of Buriram Temple and Overlooking Yongchu and Hakchu by Yi Jeong |
이칭/별칭 | 「불일암 앞 봉우리에 올라 용추와 학추를 내려다봄」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강정화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1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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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571년 |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558년 |
배경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
성격 | 한시|유람시 |
작가 | 이정(李楨)[1512~1571] |
[정의]
1558년경 구암 이정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불일암을 유람하고 지은 한시.
[개설]
「등불일암전봉 부규용추학추(登佛日庵前峯 俯窺龍湫鶴湫)」는 이정(李楨)[1512~1571]의 『구암집(龜巖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제목을 풀이하면 「불일암 앞 봉우리에 올라 용추와 학추를 내려다봄」이다. 『구암집』 속집에는 같은 제목의 오언 율시 1수가 실려 있다.
이정은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 등과 함께 1558년(명종 13) 4월 10일부터 4월 26일까지 하동→악양→화개→쌍계사(雙磎寺)→불일암(佛日庵)→신응사 일대를 유람하였다. 이때의 유람을 기록한 것이 조식의 「유두류록(遊頭流錄)」이다. 이들 일행은 4월 19일 불일암에 도착하였는데, 「등불일암전봉 부규용추학추」는 이때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불일암 앞의 봉우리에 올라 불일폭포 밑의 웅덩이인 용추와 학추를 구경하고서 지었다. 이외에도 신응사 등에서 지은 유람시가 문집에 전한다.
이정의 자는 강이(剛而), 호는 구암(龜巖), 본관은 사천(泗川)이다. 23살 때 사천에 귀양 와 있던 규암(圭菴) 송인수(宋麟壽)에게 나아가 배웠으며, 후에는 이황(李滉)[1501~1570]에게 수학하였다. 1536년(중종 31) 문과에 급제하여 선산부사·청주목사·경주부윤 등을 역임하였다. 저술로 『구암집』, 『성리유편(性理遺編)』, 『경현록(景賢錄)』 등이 있다.
[구성]
오언 절구의 구성법에 맞게 지은 한시이다. 용추와 학추는 불일폭포 밑에 고인 웅덩이에 붙여진 이름으로 청학이 깃들어 산다고 일컬어졌는데, 제1구와 제2구에서는 수천 길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의 운무가 걷히자,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용추와 학추의 수면이 고요하고 맑다고 하였다. 제3구와 제4구에서는 온종일 불일암 주변에서 머물다 해질녘 돌아올 때의 마음속 고요, 즉 가슴속의 티끌을 말끔히 씻어 낸 안온한 상태를 읊고 있다.
[내용]
곡정산용숙(谷靜山容肅)[골짝이 고요하니 산 모양도 엄숙하고]
운수수면공(雲收水面空)[운무가 걷히니 수면 위가 맑아지네]
귀래일욕모(歸來日欲暮)[돌아오는 길에 해가 저물려 하고]
천지우추풍(天地又秋風)[천지간엔 온통 가을바람 불어오네]
[특징]
제2구와 제4구에 각각 ‘공(空)’, ‘풍(風)’의 운자를 썼다.
[의의와 평가]
하동 청학동 불일암 일대는 조선 시대 선비들의 이상향의 대표적인 장소로 인식되었다. 「등불일암전봉 부규용추학추」는 이상향으로의 유람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찾아가는 모습을 잘 표현해 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쌍계사 뒤편을 따라 불일암으로 오르는 길은 조선 시대 선비들의 청학동 유람에서 가장 험난한 코스 중 하나였다. 호랑이가 출몰할 정도로 숲이 깊었으며, 불일암과 불일폭포에 오를 때의 고생스러움을 토로한 유람 기록이 여럿 보인다. 조식의 「유두류록」에 의하면, 이정 일행 또한 험난한 길을 고생스럽게 간신히 올라 불일암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1727년(영조 3) 9월 하동군의 청학동을 유람하였던 춘주(春洲) 김도수(金道洙)[1699~1733]는 ‘불일암의 경관은 뼈에 사무치도록 쓸쓸하여 돌부처가 아니면 살 수 없는 곳’이라 하였는데, 「등불일암전봉 부규용추학추」는 이정이 불일암에 도착한 후 청아한 주변 경관을 담담하게 읊어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