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4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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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佛日庵遊山記-丁錫龜- |
영어의미역 | Record of Sightseeing at Bulilam Rock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정화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77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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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833년 |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810년 |
배경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
성격 | 한문학|유람록 |
작가 | 정석구(丁錫龜)[1772~1833] |
[정의]
1810년 4월 허재 정석구가 경상남도 하동군의 불일암을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개설]
「불일암유산기(佛日庵遊山記)」는 정석구(丁錫龜)[1772~1833]의 『허재유고(虛齋遺稿)』 상편에 수록되어 있다. 정석구는 1810년(순조 10) 4월 기이관(奇而貫) 등과 함께 불일암(佛日庵)을 유람하고 그 감상을 「불일암유산기」로 남겼다. 정석구는 지리산[1,915m]을 여러 차례 유람하였지만, 지리산 명승의 하나인 불일암 유람은 이번이 처음이라 하였다. 정석구의 지리산 유람록으로는 이외에도 같은 해 10월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우리나라 국토 전체를 조망하고서 지은 「두류산기(頭流山記)」가 전한다.
정석구의 자는 우서(禹瑞), 호는 허재(虛齋),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났으며, 만헌(晩軒) 정염(丁焰)의 후손이다. 1790년(정조 14) 성암(省嵒) 이석하(李錫夏)에게 수학하였고, 1800년(정조 24)에는 심재(心齋) 송환기(宋煥箕)를 사사하였다. 일생 동안 출사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저술로 『허재유고』가 있다.
[구성]
4월 어느 봄날 연호(燕湖)를 출발하여 하동군의 화개(花開)→쌍계사(雙磎寺)→환학대(喚鶴臺)→불일암 순으로 유람한 기록이다. 정확한 일자는 없으나 1박 2일의 일정이다. 불일암에서 숙박하였고, 밤에 내리기 시작한 비가 이튿날까지 그치지 않아 하산하였다. 하동군의 불일암을 목적지로 한 유람이었기에 불일암 주변 경관에 대한 세세한 설명과 작자의 감회를 중심으로 기록하였다.
[내용]
정석구는 유람록 첫머리에서, 하동군의 화개동과 청학동 일대는 빼어난 자연 경관과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의 수많은 일화로 인해 지리산의 명승이 되었고, 이 때문에 역대 시인 묵객들이 이 일대를 찾아든다고 하며 자신이 불일암을 찾은 이유를 밝히고 있다.
불일암에 이른 정석구는 주변 경관을 둘러본 후, “깊숙한 골짜기와 울창한 숲은 쌍계사만 못하고, 맑고 깨끗한 시내와 암석 및 크고 화려한 도량은 신흥사(新興寺)보다 못하며, 편안한 형세와 안온한 언덕은 칠불암(七佛庵)보다 못하다. 그러나 우뚝한 듯하면서 편안하고, 좁은 듯하면서도 널찍하며, 작은 듯하면서도 크고, 완만한 듯하면서도 높아 비할 데 없이 빼어나고 기묘하여 잡념이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는 앞의 세 곳이 이 불일암만 못하다”는 감회를 읊었는데, 불일암 일대의 전경을 잘 표현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징]
지리산 유람록은 주로 지리산 천왕봉과 하동군의 청학동을 중심에 두고서 몇 가지 코스에 준하여 유람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두 코스를 아우르는 장기 일정의 유람도 자주 보인다. 「불일암유산기」는 짧은 시일 내에 특정 지역을 유람하고서 단일 작품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적이다. 이처럼 특정 지역에 대한 유람 기록으로는 지리산 권역 중 불일암 외에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의 유적지로 유명한 산청 덕산(德山)이 대표적이다.
[의의와 평가]
발굴된 지리산 유람록 현황을 살펴보면, 정석구가 살았던 18~19세기에는 주로 남명학파(南冥學派)의 본산인 경상우도(慶尙右道) 학자에게서 나타나는데, 「불일암유산기」는 호남 지역 유학자의 지리산 인식을 살필 수 있는 기록이라 주목해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