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4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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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在玉 |
영어음역 | Jeong Jaeu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양판석 |
출생 시기/일시 | 1893년 2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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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8일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5월 16일 |
몰년 시기/일시 | 1944년 9월 20일 |
추모 시기/일시 | 1992년 |
출생지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338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정재옥(鄭在玉)[1893~1944]은 1893년 2월 21일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338번지에서 태어났다. 부인이 최선이이며, 그 사이에 4남 2녀를 두었다. 어려서 한학(漢學)을 통해 충의(忠義) 사상을 갖춘 데다, 일본의 만행을 직접 보며 자라 항일 의식이 투철하였다.
1919년 4월 7일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정신교(鄭信敎)의 집에서 김기범(金淇範)[1885~1951] 등과 함께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태극기를 만들고 독립선언서를 옮겨 쓰며 마을 사람들을 규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날 밤 태극기를 같은 동네에 사는 김종을의 집 마당에 세운 뒤, 그곳에 모인 30여 명의 사람들에게 다음 날 조선 독립 만세를 부르는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여 군중이 모일 수 있게 하였다.
4월 8일 오후 8시경 정재옥 등 50~60명이 김기범의 선창으로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청암면장 화창조(化昌兆)에게 독립 만세 부르기를 강요하는 등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광장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6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죄목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대구복심법원에 공소하였으나 기각되고, 6월 24일 징역 8개월 형이 확정되었다. 출옥 후에도 일제의 감시와 탄압이 계속되어 1924년 진주로 이주하였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불편한 몸으로 여생을 보냈다. 1944년 9월 20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2년 정부로부터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묘소는 진주시 이현동 공동묘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