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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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守浩妻晉陽鄭氏 |
영어의미역 | Munsuho's Wife Jinyang Jeong Clan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난희 |
몰년 시기/일시 | 194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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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958년 8월 |
거주|이주지 |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 |
비 |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 |
성격 | 효부|열녀 |
성별 | 여 |
본관 | 진양 |
[정의]
개항기 하동의 효부이자 열녀.
[가계]
본관은 진양(晉陽). 아버지는 정해종(鄭海鍾)이다. 남편은 문수호(文守浩)로, 본관은 강성(江城)이다.
[활동 사항]
문수호 처 진양 정씨는 어려서는 부모에게 효성스러웠으며,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로 시집을 와서도 시부모 봉양과 남편 내조를 잘했다. 남편이 광견(狂犬)에게 물려 병이 나자 지성으로 간호하고, 병세가 심해지자 손가락에서 피를 내어 남편 입에 흘려 넣어 며칠간 수명을 연장시켰다. 남편이 죽자 따라 죽으려 했으나 시부모의 만류도 그렇거니와, 후사가 없는데다 가세도 한빈한 것을 생각하고는 뜻을 접었다. 이후 보다 더 시부모를 공경히 봉양하였으며, 시부모가 돌아가시자 묏자리를 가려서 극진히 상을 치렀다. 또한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여 가계를 일으켰고, 시동생 문재호(文在浩)의 아들 문인식(文仁植)을 양자로 삼아 가문을 이었다.
[상훈과 추모]
마을 사람들이 관청에 알려 효열의 공적을 길이 전하고자 하였으나 법제가 개편되면서 일이 성사되지 않았다. 1958년 8월 진양 정씨 집안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에 열녀비를 세웠는데, 이 비의 전면에는 ‘열녀 진양 정씨지비(烈女晉陽鄭氏之碑)’라고 쓰여 있다. 비문은 하우(河寓)가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