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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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世奎 |
영어음역 | Gim Segyu |
이칭/별칭 | 선민(善敏),창정(滄亭)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길찬 |
출생 시기/일시 | 186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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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954년 |
출생지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
비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 원박마을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경주 |
[정의]
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선민(善敏). 호는 창정(滄亭). 문민공(文敏公)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다.
[활동 사항]
김세규(金世奎)[1862~?]는 1862년(철종 13)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순수하고 타고난 자질이 똑똑하여 문리를 일찍 깨쳤다. 부모를 모심에 효를 다하였는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병이 나면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손수 탕약을 지어 올리고 속옷을 직접 빨아 깨끗이 해 드렸다. 6년 상(喪)을 치르는 동안 수질(首絰)[상복을 입을 때 머리에 두르는 둥근 테]과 요질(腰絰)[상복을 입을 때 허리에 띠는 띠]을 한 번도 풀지 않았고, 아침저녁으로 하는 성묘는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더우나 추우나 한 번도 빠뜨리지 않았다. 고을 사람들이 그의 효성에 감복하여 그가 성묘하러 가는 길을 닦아 편하게 해 주었다.
[상훈과 추모]
1954년에 후손들이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 원박마을 앞 산록에 비를 세웠다. 비에는 성적도중간소(聖蹟圖重刊所)에서 지은 완의문(完議文)이 새겨져 있는데, 완의문은 정은채(鄭殷采)가 지었고, 글은 정원세(鄭源世)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