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1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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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瀯秀 |
영어음역 | Gim Yeongsu |
이칭/별칭 | 성국(聲國),죽교(竹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전병철 |
[정의]
개항기 하동 출신의 의사(義士).
[개설]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성국(聲國), 호는 죽교(竹橋). 안경공(安敬公) 김영정(金永貞)의 후손이다.
[활동 사항]
김영수(金瀯秀)의 생년이 『하동군지』와 『하동지속수(河東誌續修)』에는 헌종 갑신년(甲申年)[1824]으로 나와 있으나, 헌종 때에는 갑신년이 없고 갑진년(甲辰年)[1844]이 있다. 또한 고종 경진년(庚辰年)[1880] 증광시(增廣試)에서 1등으로 생원에 뽑힌 사실과 갑오 동학 농민 운동에 대항하여 의병을 일으킨 일 등을 미루어 생각해 본다면, 생년을 1844년(헌종 10)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판단된다.
1894년(고종 31) 갑오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자 김영수는 의병을 일으켜 성을 지키다가, 아들 김현룡(金顯龍)과 조카 김현구(金顯龜)와 함께 순의(殉義)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부인 황씨(黃氏)도 즉시 자결하여 그 뒤를 따르면서 그 절의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