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088 |
---|---|
한자 | 智異山手帖 |
영어의미역 | Jirisan Notebook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영욱,하아무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984년 |
---|---|
성격 | 시집 |
작가 | 정규화 |
[정의]
1984년 경상남도 하동군 출신의 정규화 시인이 지리산을 소재로 발간한 시집.
[개설]
『지리산 수첩』은 하동군 옥종면에서 태어나고 자란 정규화 시인이 자신의 시적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지리산에 대해 쓴 작품을 엮은 시집이다. 정규화 시인은 하동군 옥종면 위태리[당시 청암면 위태리]에서 태어났다. 1981년 당시 신군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때, 폐간되었던 『창작과비평』의 신작 시집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황지우, 채광석, 김사인, 김정환 등과 『시와 경제』 동인 활동을 벌이면서 1980년대 민중 문학 운동을 활발히 하였다.
1984년 첫 시집 『농민의 아들』을 비롯해 『스스로 떠나는 길』[청사], 그리고 『지리산 수첩』[눈]을 발간하였다. 이어 『풀잎』[불휘], 『지리산과 인공신장실과 시』[경남], 『다시 부르는 그리운 노래』[경남], 『오늘 밤은 이렇게 축복을 받는다』[불휘], 『나무와 바람과 세월』[두엄], 『슬픔의 내력』[신생], 『고향의 찔레꽃』[불휘], 『오래된 변명』[신생], 『머슴새가 울었다』[계간문예] 등 2007년 6월 11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모두 12권의 시집을 펴냈다. 경남작가회의 초대 회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를 역임하였고, 경남도 문화상과 경남 문학상, 그리고 제1회 근로자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내용]
지리산은 정규화 시인이 태어난 고향이면서 동시에 시적 고향이라 할 만하다. 그러하기에 이전에도 고향과 지리산을 노래한 시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지리산 수첩」이란 연작시를 모아 시집 『지리산 수첩』을 펴냈다. 정규화 시인은 지리산을 늘 양면성을 지닌 것으로 그렸다. “한번 웃으면/ 청학이 와서 놀았고/ 한번 성을 내면/ 산비탈마다 즐비하게 해골이 뒹굴었다”[「지리산가.1」 일부]는 표현처럼 이상 세계로서의 지리산도 있고 비극적 현대사의 현실 세계로서의 지리산도 있다. 이 시집에서는 주로 해방 공간에서부터 종전 이후까지 벌어졌던 분단 이데올로기의 충돌로써 비극적인 우리 현대사를 그리고 있다.
[특징]
등단 때부터 세 번째 시집 『지리산 수첩』에 이르기까지 정규화 시인은 줄곧 억압받는 민중의 삶과 저항, 그리고 조국과 민족, 통일을 노래해 왔다. 보도연맹과 “자수 차 간” 아버지의 부재, 그리고 연좌제, 지독한 가난, 허리 잘린 산하, 포악한 독재 정권의 탄압 등과 같은 1970년대의 광포성이 그를 민중 시인의 길로 이끌었을 것이다. 정규화 시인은 농민과 철거민, 지리산을 노래하면서도 시대나 역사를 총체적으로 보는 눈을 부단히 닦아 왔다. 그가 “가난에 군살이 박히면/ 마음에/ 눈이 생긴다.”며 “으악새 몇 포기가 내 대신 흔들렸다”[「지리산 수첩.2」 일부]라고 노래한 것은 절창이다.
[의의와 평가]
지리산 밑 오지에서 태어나 민족이 만든 생채기로 집안의 기둥을 잃고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화전을 일구듯 정규화 시인은 자신의 상처 위에 민족의 서사와 서정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시의 세계를 구축하였다. 문학 평론가 김경복은 “그에게 시는 치명적 진실의 증언이자 자신의 불안을 달래고 죽음의 표지인 어둠을 물리칠 수 있는 단 하나의 무기가 되는 것”이라며 “이제 시는 그에게 불이 되고, 칼이 되고, 약이 된다.”라고 말했다. 시인이자 문학 평론가인 강희근은 “시는 언제나 내포와 형식이 한가로울 때는 논의의 초점이 되지만 다급할 때는 논의의 표적에서 벗어나 있게 됨을, 정규화 시인은 몸으로 쓰는 시로 분명히 말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