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8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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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百中 |
영어음역 | Bakjung |
영어의미역 | Buddhist All Souls' Day |
이칭/별칭 | 백종,중원,망혼일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집필자 | 남성진 |
의례 장소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상평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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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세시 풍속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7월 15일 |
[정의]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음력 7월 보름에 전해 내려오는 풍습.
[개설]
백중(百中)은 망자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제를 올리고 머슴을 쉬게 하는 날이다. 이를 백종(百種), 중원(中元), 망혼일(亡魂日) 등이라고도 한다. 이 무렵이 되면 여러 가지 과실과 채소가 많이 나와 ‘백 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 놓았다고 하여 유래된 말이다. 하동 지역에서는 마을 단위로 날을 정하여 하루를 먹고 노는 세시 풍속으로서 ‘백중 놀기’가 전승되고 있다.
[연원 및 변천]
음력 7월 15일을 백중이라 부르며 백종, 백종(魄縱), 백종(白踵), 백중(白衆) 등으로 쓴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백종절이라고 하여, 중원일에 백종의 꽃과 과일을 부처님께 공양하며 복을 빌었으므로 그날의 이름을 백종이라 붙였다고 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를 그대로 인용하여 백종일이라 불렀다. 백중을 불가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 이날 부처님께 재를 올리고 불공을 드리며, 분(盆)을 만들어 이것을 바치면서 큰 명절로 여긴다는 것이다. 사찰에서 행하는 우란분회(盂蘭盆會)와 달리 민간에서는 망혼일이라 하여 보름 달밤에 채소, 과일, 술, 밥을 갖추어 죽은 어버이 혼을 부른다고 하였다.
『조선상식(朝鮮常識)』에 의하면 백중은 농사 진행상의 어느 단계에 있는 고유의 한 행사와 불교, 도교의 요소 등이 뒤섞여 특수한 형태를 구성한 절일(節日)로 보고 있으며, 우리의 백중은 이러한 여러 가지 유파를 골고루 받아들인 것이라 하였다.
민간에서 백중은 한 마디로 먹고 마시고 놀면서 하루를 보내는 날이다. 백중은 두벌이나 세벌 논매기가 끝날 무렵이라 마을 단위의 공동 노동 또는 개별 농가 단위로 하루 쉬는 날이다. 논매기 작업을 종료한 후에 마을 단위의 공동 협업 노동을 매듭을 짓는다는 차원에서 농민들이 함께 모여 하루를 쉬는 형태로 지속되었다. 1965년대에서 1970년대 사이까지만 해도 백중을 쉬면서 놀았는데 그 이후 기계화 영농이 되면서 사라져 지금은 백중을 명절로 치지 않는다.
[절차]
백중에는 여러 풍속이 전해 오는데 예전 각 가정에서는 익은 과일을 따서 사당에 천신(薦新)을 올렸다. 그리고 농가에서는 백중날 머슴들과 일꾼들에게 돈과 휴가를 주어 즐겁게 놀도록 하였다. 특히 이날 일꾼들은 부잣집 마당이나 너른 공터에 모여서 집집이 해온 음식과 담은 술을 먹고 마시며 농악도 울리고 씨름도 하면서 놀았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의 경우는 다음과 같다.
1. 쇠풀뜯기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상평마을에서는 백중을 일꾼들이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하루 재미있게 노는 날로 인식하고 있다. 보통 백중 때까지 논은 두벌을 매거나 철이 이르면 세벌까지 매는데, 세벌은 ‘자부락뜰’이라 한다. 상평마을에서는 두벌 정도 논을 맨 뒤에 백중날을 맞아 그때부터 사흘이나 나흘씩 놀았다. 백중날 아침 남의 집에서 일하는 머슴이나 일꾼들은 쇠풀을 뜯어다 놓고 그때부터 놀기 시작한다.
2. 백중돈타기
제법 형편이 되는 집의 주인은 머슴에게 돈을 좀 주고 휴가를 내어 구경하고 오라고 한다. 하지만 형편이 못 되는 주인은 휴가를 주지 못하니 같은 머슴이라고 해도 고통스럽게 지내기도 한다. 한편 주인집에서 여름살이라고 새 옷을 한 벌 주는 경우가 있다. 이는 덕석을 한 벌 짜야 제공받는다고 한다. 더운 여름 날 ‘덕석 사발뙈기 한 벌’을 만들어 받치는 대가로 받는 여름살이 ‘삼베등지개’ 하나는 너무 초라한 편이다. 삼베등지개를 지게 밑에 받쳐 입으면 지게에 닿아 땀이 나서 이내 떨어져 버리기 때문에 “덕석은 십 년도 더 가는데 삼베등지개는 근년에 다 떨어져 버린다.”는 말을 하며 일꾼들은 불공평함을 표출하기도 한다.
3. 백중놀기
백중날이 되면 일꾼들은 개별적으로 섬진강 백사장에서 펼쳐지는 씨름을 구경하러 가서 씨름이 끝날 때까지 묵으며 논다. 돈 몇 푼 받은 것으로 씨름판에서 남들과 어울려 술도 받아먹고 놀다 보면 엿샛날, 이렛날이 지나고 여드렛날이 된다. 여드렛날에는 일을 해야 하지만 씨름판이 벌어지는 곳에 있다 보면 돌아오는 날이 늦기 일쑤다. 이때 주인 입장에서 보면 반동가리 일을 하게 되니까 일꾼을 나무라게 되고, 그러면 일꾼은 삐쳐서 그 집을 나가는 수도 있다.
4. 백중놀이
마을에 있는 일꾼들은 백중날 하루 농악을 치고 춤을 추며 자유롭게 술을 마시고 논다. 당시 부잣집에는 머슴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 집 마당에 술이며 음식을 푸짐하게 내어 놓고 하루 위안을 하였다. 술도 한상 차려주고 매구도 두드리고 논다. 동네 부자 어른들이 다른 놀이는 못하게 해서 안 한다. 만일 백중날 씨름을 하려고 하면 유월 대동회나 시월 대동회 때 결정을 해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다니며 부탁을 하게 되면 마을의 유지들이 앉아서 결정을 하기 때문에 사정을 한다. 그러면 유지들이 해준다고 승낙을 하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못한다. 예전에는 남의 집에 사는 사람이 많다 보니 백중날만큼은 하루 손 씻고 놀게 하였는데, 그런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부잣집 마당에서 술 마시고 노는 것이 전부였다. 그만큼 백성들이 고초를 받았다.
백중날은 철이 일러 나락이 잘 지어졌는가 안 지어졌는가 하는 것이 감별이 안 되기 때문에 농사를 잘 지은 사람을 뽑거나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단지 일꾼들은 백중날에 손을 씻고 하루 노는 것 정도이다. 당시의 일꾼들은 돈이 없어서 부잣집 마당에서 술 마시고 노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놀다가 저녁이 되면 아무 상품은 없지만 제각기 마당에서 씨름도 하고 힘자랑을 한다. 이때 술을 먹고 놀다 보면 밤늦게 주막에 가서 보채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백중날이 되어도 없는 사람은 밥도 못 먹는다. 노는 날이라서 딴 사람들이 일 하러 안 가니까 갈 수도 없고, 양식이 없어서 밥도 못해 먹고 지내게 된다.
5. 백중 휴식
근래에 와서는 백중날이 되면 특이한 행사가 별도로 없고 하루 쉬면서 휴식을 취한다. 백중날 농민들은 마을 내에서 지짐이 종류나 새 쌀밥을 짓거나 하여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고 푹 쉬며 지낸다고 한다. 밭작물에서 나오는 고구마, 감, 옥수수, 부침 종류를 집집마다 부치고 볶으며 술은 따로 담지 않고 도가에서 나오는 막걸리를 사다가 마신다. 특별하게 노는 놀이는 없지만 이날만큼은 마음 푹 놓고 편히 쉬고 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하동 지역에서는 ‘백중’이 되면 농사일을 멈추고,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잔치와 놀이판을 벌였다. 이날이 되면 일꾼들은 힘든 노동에서 벗어나 읍내에 나가서 물건을 사거나 놀이를 즐기기도 하였다. 풍물판과 씨름판이 조성되거나 갖가지 구경거리가 있어서 농사에 시달렸던 일꾼들은 마냥 즐길 수 있었다. 또한 백중은 마을의 축제이자 마을의 화합을 다지는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다양한 생업 여건으로 인하여 본래의 기능이 많이 약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