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7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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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花開縣舊莊圖 |
영어의미역 | Painting of Old Manor in Hwagae-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용국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0년 9월 20일 - 화개현구장도 보물 제1046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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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화개현구장도 보물 재지정 |
제작 시기/일시 | 1643년 |
현 소장처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동 137 |
성격 | 회화 |
작가 | 이징(李澄) |
서체/기법 | 수묵 담채(水墨淡彩)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국립중앙박물관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
[정의]
조선 후기 하동 화개현에 있던 정여창의 별장을 그린 그림.
[개설]
화개현구장도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이 한동안 머물던 별장과 주변 형승(形勝)을 그린 그림이다. 정여창은 조선 전기 문신이자 성리학의 대가로서 1490년(성종 21) 별시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 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設書), 안음현감(安陰縣監)을 지냈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로 종성(鍾城)에 유배되었으며, 1504년(연산군 10)에 사망한 뒤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부관참시(剖棺斬屍)되었다. 중종 때 우의정에 추증되었고, 광해군 때 문묘에 배향되었다.
과암(果庵) 이무(李茂)[1599~1683]는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李山海)의 손자이며, 형조판서를 지낸 이경전(李慶全)의 아들이다. 1643년(인조 21) 남계서원(藍溪書院) 유생이 기록한 구장(舊莊) 및 임계(林溪) 유호인(兪好仁)[1445~1494]의 「악양정시서(岳陽亭詩序)」를 가지고 동양위(東陽尉) 신익성(申翊聖)에게 찾아와 “일두 선생이 평소 구장의 형승(形勝)을 그림으로 그려 간직하고자 한 뜻을 이룩하고, 남계서원 유생들의 추모하는 성의를 도모하는 게 어떠하냐”라고 하였다. 신익성은 이무의 이야기를 듣고서 유명한 산수화가 허주(虛舟) 이징(李澄)[1581~?]을 시켜 그리게 하였다. 1990년 9월 20일 보물 제104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존하고 있다.
[형태 및 구성]
명주 바탕에 수묵 담채(水墨淡彩)로 그린 화개현구장도는 가로 56㎝, 세로 89㎝의 크기로,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위에 ‘화개현 구장도(花開縣舊莊圖)’라는 화제(畵題)가 전서체로 쓰여 있고, 가운데 부분에 화개현에 있는 정여창 별장과 주변의 풍경이 수묵 담채로 그려져 있다. 아래 부분에 정여창의 시 「악양」 1수와 유호인의 시 「악양정」, 신익성의 발문(跋文)이 있다. 또한 조식(曺植)의 「유두류산록(遊頭流山錄)」, 정구(鄭逑)의 「유가야산록(遊伽倻山錄)」에 수록된 정여창의 구거 유적(舊居遺跡)에 관한 기사를 발췌하여 써놓았다.
[특징]
계회축(契會軸) 형식을 따르고, 근경(近景)·중경·후경의 편파삼단(偏頗三段) 구도를 지니고 있다. 조선 중기의 화가로 안견 화풍의 산수화와 절파계의 산수화 등을 많이 그린 허주 이징이 63세 때 그린 우수한 작품으로 작자와 연대가 확실하고, 당대의 문장가이자 명필인 동양위 신익성이 제목 등의 글씨와 발문을 써서 화개현구장도의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의의와 평가]
화개현구장도는 이징이 1643년(인조 21) 관련 기록을 참고한 후 화개의 형승을 상상하여 그린 것이므로 일종의 기록화이며, 관념 산수화로 분류될 수 있다. 17세기의 안견 화풍을 잘 보여주고, 제작 연대가 확실하여 안견 화풍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조선 시대의 유교 문화 연구에서도 귀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