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B020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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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능말 |
시대 | 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김덕묵 |
금천강씨 선산은 애기능저수지에서 영회원 가는 길로 가다가 중간 지점에서 왼편 산 쪽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있다.
이곳은 금천강씨가 민회빈 강씨의 일로 멸족을 당하기 전부터 누대에 걸쳐 형성된 곳으로, 강양(姜揚)[한성판윤], 강비웅(姜非熊)[산음현감], 강희(姜曦)[이조정랑], 강숙돌(姜叔突)[대사간], 강뢰(姜賚)[소격서참봉], 강유경(姜惟慶)[삼등현령], 강찬(姜燦)[여주목사], 강석기(姜碩期)[우의정], 강문성(姜文星)[횡성현감], 강후망(姜後望)[승릉참봉], 양천수(梁千洙)[절충장군겸순초], 양주학(梁柱學)[첨지중추부사겸오위장] 등 조선전기부터 민회빈 강씨의 아버지인 강석기의 시대, 즉 인조 대까지 16세부터 25세의 조상들이 묻혀 있다.
이들의 관직만 보더라도 당시 금천강씨가 번성했던 집안이었음을 알 수 있으나 민회빈 강씨의 일로 멸문지화를 당한 후 집안은 쇠락했다. 한 가문의 운명도 역사의 회오리바람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강빈옥사(姜嬪獄事) 후 숙종 때 신원이 복원될 때까지 이곳 선산은 후손들의 출입이 금지되고 묘지를 돌보거나 시제를 지내는 등의 일체 행위가 금지되자 나무와 풀들이 무덤을 가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잘 보존되고 후손들이 정성을 다해 관리하니 보는 이도 흐뭇하다. 선산 앞에는 1998년에 금천강씨 종친회에서 선영도를 설치 해 놓아 선산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방리 뿌리 금천강씨의 선산이 갖는 의미]
국민의 상당수가 화장을 하고 납골묘에 안치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정도로 장례 풍속이 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젊은 세대들 중에는 선산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앞으로는 ‘선산’이란 용어조차 일반인들에게 생소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기존에 있던 선산들도 무덤의 관리를 보다 편리하게 하기 위해 납골묘로 옮기거나 도로나 주택 건설 등으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수도권에서 이런 일이 훨씬 심하다. 유명 인물이나 왕릉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선산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조상들은 효도와 자손의 번성 등을 위해 무덤 자리에도 많은 정성을 쏟았다. 또한 장례 문화가 발달하고 사후 무덤 관리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개토, 벌초 등 수시로 선산을 관리하고 명절에는 성묘를 하고 추수 후에는 시제를 지냈다. 선산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시대지만 선산에서 파생되는 우리의 전통 문화는 늘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시대 풍속에도 구름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금천강씨의 선산이 조선전기 이후 오늘날까지 잘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또한 아방리를 이해하는 데 금천강씨와 민회빈 강씨를 빼놓을 수 없다는 점에서 금천강씨의 선산이 주는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금천강씨는 아방리[능말]의 뿌리이다. 민회빈 강씨가 사사될 무렵 금천강씨 문중의 문서들은 전부 소실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천강씨의 선산은 중요한 역사적 기록물이기도 하다. 영회원과 아방리[능말]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잠시 금천강씨 선산으로 눈을 돌려 보자. 그것을 통해 영회원과 아방리[능말], 그리고 금천강씨를 함께 생각해 보자. 우리 조상들에게 선산이 가지는 의미는 어떤 것인가도. 자신이 풍수가가 된 것처럼 풍수도 한 번 살펴보자. 이모저모를 살피고 난 후 산을 내려오자. 아방리[능말]가 새롭게 보인다.
[정보제공]